다시 오고 싶었던 그곳 바라나시
바라나시(Varanasi)는 바로 인도다. 우리가 '인도'라고 말할 때 일반적으로 기대하는 어떤 인도의 분위기, 문화, 풍경이 바라나시 안에 있다. 사람이 살고 있는 가장 오래된 도시가 바라나시라고 한다. 4천년 넘는 시간 동안 사람이 살아온 도시, 그 시간의 숨결이 지금도 느껴진다.
전에 여행했던 인도의 여러 도시 중에서 유독 바라나시에는 다시 한 번 와 보고 싶었다. 한 해의 끝과 시작을 여기서 맞이하려고 바라나시에 와 있다. 갠지스강에 떠오르는 새로운 태양을 바라보고 싶다.
일어나자마자 강가의 메인 가트로 나간다. 이곳의 이름은 다사스와메드(Dasaswamed) 가트, 강가의 가트 중 가장 많이 오가게 되는 곳이다. 숙소와 가트는 가까운 거리이다. 바라나시의 좋은 호텔들은 갠지스강에서 먼 시내 쪽에 있다. 강가 근처의 미로 같은 골목의 숙소들은 상대적으로 싸기 때문에 여기는 가난한 배낭여행자의 보금자리이다. 그래도 나는 여기가 좋다. 가트의 아침 풍경을 마음대로 볼 수 있어서 더욱 좋다. 바라나시에 머무는 동안은 아침에 깨어나면 바로 강가로 나온다. 어수선하면서도 활기찬 갠지스의 아침이 나를 깨운다. 피곤해도 늦게 까지 잘 수 없게 하는 곳이 바라나시다.
가트에 앉아 신성한 강물에 목욕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이 좋다. 하루를 신과 함께 시작하는 사람들의 웃음이 좋다. 가트는 강과 이어지는 돌계단이다. 아래쪽으로는 강과 이어지고 반대쪽으로는 건물, 골목과 이어진다. 인도인들은 목욕하러 강가에 접근하기 편리하고 여행자는 산책하다가 아무 계단이나 앉아 풍경을 감상할 수도 있다.
날마다 신에게 바칠 꽃을 준비하는 사람, 정성스레 그 꽃을 사는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갠지스에서의 삶은 아름답게 느껴진다. 꽃잎을 뿌리고 꽃불을 띄우는 손길이 너무도 정성스럽다. 소가 어슬렁거리는 가트 풍경은 여전히 재미있다. 인도의 다른 어느 도시보다 소가 대접을 받는 곳이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다. 추운 아침에도 가트의 노점 아주머니는 꽁꽁 싸매고 촘촘히 좌판을 벌인다. 아침부터 팔찌며 목걸이를 살 사람이 얼마나 될까 싶지만 성수로 축복받고 죄를 사하러 온 순례자는 많기도 하다.
12월 말이라 추운데도 성스런 강에서의 목욕은 계속된다. 힌두교인들은 바라나시로 성지순례 와서 갠지스강에 몸을 담그고 지은 죄를 모두 씻는 것이 평생의 과업이다. 바라나시는 종교인이 아니어도 삶과 죽음을 생각하게 하고 되돌아보게 만드는 묘한 도시다. 나는 패딩과 바람막이를 껴입은 아침, 인도 사람들은 입은 옷을 벗고 떨면서도 물로 들어간다. 추위가 무슨 대수일까? 신성한 강물로 목욕을 하고 있는 지금이 일생일대의 소원이 이뤄지는 순간일 것이다.
오전 6시쯤 배를 타고 한 시간 정도 강에 떠 있으면 일출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조금 늦게 일어난 오늘은 일출 보트를 타지 못했으니 내일 새벽에는 꼭 나와야겠다. 가트를 돌아다니다 '람'이라는 뱃사공 할아버지를 만난다. 그의 보트를 타고 일출을 보기로 한다. 내일 아침 6시에 여기 하누만이 그려진 기둥 앞에서 만나기로 하고 헤어진다. 벌써부터 내일 아침이 기다려진다.
고돌리아(Godaulia)를 지나 시내 쪽으로 방향을 잡아본다. 사실, 할 일이 많다. 식사도 해야 하고 인도 옷도 사고 싶고 바라나시 정션 역으로 가서 기차표 예매도 해야 한다. 바라나시에는 일주일 정도 느긋하게 있을 예정이니 전과 같은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은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지리도 익히고 동선도 짜 보려고 한다.
고돌리아에서 바라나시 정션 역으로 가는 길, 이 건물들은 바라나시가 아닌 듯, 너무 정갈하다. 예전보다 오토바이도 늘었다. 인도도 변화의 물결이 굽이치는 중이다. 역에서 기차표 예매를 끝내고 다사스와메드 가트로 돌아와 미로 같은 골목으로 들어가 본다.
골목을 돌아다니다 짜이 한 잔을 마신다. 초벌구이 잔에 따라주는 짜이, 이게 바로 인도의 맛이다. 뉴델리의 종이컵 짜이는 이런 맛이 안 난다. 추운 아침 따끈한 짜이 한 잔을 마시고 잔을 던져 깨뜨리는 소소한 즐거움이 좋다. 골목에는 순례객인 듯한 노인들이 가트로 향하는 중이다. 대부분 벵갈리토라의 골목은 옷, 장신구, 생필품을 파는 작은 가게들이 대부분인데 비해 화장터가 있는 북쪽 마니까르니까 가트가 가까워질수록 제수용품을 파는 가게가 늘어난다. 관광객 대상의 가게들은 이른 아침이라 여는 곳이 없는데도 북쪽 가트 부근의 가게들은 이미 문을 열고 있다.
좁은 골목에서 덩치 큰 소와 소똥을 피해 다니는 것은 기본이다. 가끔 원숭이가 나타나고 염소도 돌아다닌다. 제일 귀여운 애들은 강아지들이다. 전에 4월에 왔을 땐 몰랐는데, 겨울에는 강아지들이 진짜 많다. 다리를 붙들고 장난치는 강아지가 너무 귀여워서 한참 놀아준다. 바라나시에서는 자기 앞의 생을 살아내는 것이 그저 사람뿐만이 아니다. 골목을 빠져나와 대로에 접어드니 큰 가게들이 즐비하다. 여행자의 눈에는 힌두교의 도시 바라나시에서 마네킹들이 빨간 산타모자를 쓰고 있는 모습이 이질적이다.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에서도 성탄절을 즐기는 걸까?
펀자비 드레스를 맞추기 위해 옷가게들을 들락거린다. 사리나 펀자비는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잘 차려입은 인도 여자들이 많은 가게는 대부분 가격도 많이 비싸고 옷의 품질도 좋다. 대로에 늘어선 가게 중에서 점찍어 둔 곳으로 다시 간다. 일층에서 상담하고 맘에 드는 옷감과 디자인이 정해지면 이 층으로 올라가서 물건을 고른다. 기성복은 사이즈에 맞게 즉석에서 수선도 해준다. 물론 수선비는 별도다.
상담하던 사람이 올라와 옷을 수선해 준다. 아까 상담했을 때 융통성이 없던 이유를 알 것 같다. 그는 판매사원이라기보다는 재봉사다. 워낙 인기가 높은 가게인지 가격 흥정도 안 해주는 정찰제다. 시스템이 원래 그런 곳이다. 그래도 옷은 너무 맘에 든다. 돈을 지불하니 카운터 있던 사람이 콧수염을 휘날리며 반갑게 말을 건다. 말없이 돈만 세던 사람이 사장이었다.
가트의 벽에는 여행자들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그들의 능력이 부럽기만 하다. 벽화도, 화가도 바라나시의 한 풍경이 된다. 누군가는 한 달이고 두 달이고 이곳에 머물며 음악을 배우고 그림을 그리고 요가를 하기도 하는 곳이 바라나시다. 가트 풍경 중의 또 하나는, 계단에 앉아 즉석에서 이발하는 사람이다. 삭발하는 저 분은 아마 상주일 것이다. 이발사는 웃어도 아저씨는 웃지 않는다. 한 사람의의 생을 떠나보내는 소리 없는 슬픔들이 알게 모르게 가트 곳곳에 존재한다.
지난 여행에서의 바라나시를 떠올려본다. 그때 나는 두 번 바라나시에 왔었다. 여기서 네팔로 떠났고 네팔에서 다질링(Darjeeling)을 지나 콜카타(Kolkata)에서 다시 바라나시에 들렀다. 그 기억들이 바라나시 여기저기에서 툭툭 튀어나온다. 그만큼의 시간 동안 가트도 뭔가 달라졌고 인도의 변화도 느껴진다. 인도 사람들 손에는 작은 핸드폰이 쥐어져 있다. 전에는 카메라 자체가 귀했는데 지금은 핸드폰이나 작은 카메라가 일반적이다. 테러 위험이 있는 듯 경찰이 상주하는 가트도 낯설다. 지나간 시간들이 아쉽고 마주하는 현실에 서먹함을 느끼는 게 자연스러운 것 일수도 있다. 지난 일은 고단한 일보다 아름다운 일들만 기억되기도 하니까 말이다.
오후 6시면 가트에는 힌두 의식인 뿌자가 열린다. 가트에서 뿌자를 보려면 미리 자리를 잡는 게 좋다. 나는 뿌자 관람 전에, 가트의 뱃사공과 흥정을 시작한다. 오늘은 배를 타고 갠지스에 떠서 뿌자를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배는 어렵지 않게 흥정이 된다. 드디어 작은 나룻배에 오른다. 사공은 배를 저어 뿌자 의식 앞에 띄운다. 힌두신들에게 바치는 의식을 강물 위에서 바라본다. 두번째 방문이기에 처음처럼 신비로운 느낌은 덜했으나 데자뷔처럼 느껴지는 장면이다. 바라나시가 일반적으로 인도라는 나라의 강렬한 이미지를 연상하게 하는 도시라면 이곳 갠지스의 가트와 뿌자는 힌두교의 성지 바라나시의 모든 것이다.
디아(Dia : 꽃불)에 불을 붙여 강 위로 띄운다. 바람이 세서 디아가 물결을 따라 휙 사라져 버린다. 다른 사람들이 띄운 디아도 그렇게 다른 배에서 내 옆으로 왔다가 흘러간다. 디아가 꽃잎처럼 바람에 사라져버린 갠지스강 위에서 뿌자의 불빛과 종소리와 기도 소리는 그 많은 신들을 부르고 있다.
매일 보았을 뿌자보다 외국인 여자 여행객에게 말 걸기가 더 즐거운 것 같은 뱃사공이 맘에 들지는 않아도 6년만에 다시 보는 갠지스강 야경은 그대로 아름답다. 그토록 다시 오고 싶던 바라나시에 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