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 속의 프랑스풍 도시
남인도의 폰디체리(Pondicherry), 참 예쁜 이름의 도시다. 그러나 이 이름에는 뜻밖의 역사가 숨어 있다. 인도의 거의 모든 영토가 영국령이던 식민지 시절, 이곳은 유일한 프랑스 식민지였다고 한다. 그 영향으로 지금도 프랑스풍의 건물이나 거리를 간직하고 있어 인도의 여느 도시와는 다른 풍경을 보여주는 도시다. 폰디체리라는 이름은 지금 뿌두체리(Puducherry)라는 현지 발음으로 불린다. 봄베이가 뭄바이(Mumbai)가 되고 캘커타가 콜카타(Kolkata)가 되었듯이.
버스터미널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 오토릭샤를 잡아타는 일이 고생스럽다. 북인도와는 달리 릭샤비 흥정이 잘 안 된다. 비싸든 싸든 그저 릭샤왈라 배짱이다. 북인도에 비하면 릭샤비가 비싸기도 하고 여행자에게 바가지 씌우는 게 역력하다. 몇 번의 흥정 끝에 간신히 올라탄 릭샤는 프렌치 쿼터라고 하는 시내에 여행자를 내려놓고 떠나버린다.
더운 날 릭샤왈라들과의 실랑이가 짜증스러웠는데 눈 앞의 광경은 인도 여행에서 보지 못한 장면들이라 금세 기분이 바뀐다. 예쁘게 단장한 건물들과 멋들어진 간판들, 인도스럽지 않은 깨끗하고 질서 정연한 거리가 펼쳐져 있는 것이다. 이번 인도여행에서 처음 보는 대형 슈퍼마켓도 있다. 프랑스인이 많을 거라고 짐작되지만 여하튼 서양인 여행자들도 꽤 많다.
피자헛, 도미노피자 등 국제적 브랜드의 피자가게들도 즐비하고, 화덕에서 구워내는 탄두리 피자를 파는 곳도 있다. 덥고 배고픈 김에, 눈에 들어온 도미노 피자로 얼른 들어간다. 인도 물가로는 비싸지만 시원하고 현대적인 매장에서 여독을 달랜다. 역시 이곳에는 부유해 보이는 인도인들이 들어와 있다. 매장안이야 우리나라나 다를바 없지만 창밖 풍경이 여기가 인도임을 인증해준다.
깨끗한 거리엔 여기가 인도인지 프랑스인지를 의심하게 하는 유럽식 저택들이 즐비하다. '르 카페'니 '르 클럽'이니 하는 프랑스식 이름을 가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한다. 인도인데 인도 같지 않은 곳이 바로 이곳이다.
릭샤들이 다니는 걸 제외한다면 인도의 거리 풍경이 아닌 듯한 거리를 걷다보면, 아쉬람이나 오로빌 같은 영성 공동체에서 직접 생산한 물건들을 파는 매장을 만나게 된다. 아쉬람은 수행자들이 모이는 공동체를 의미하는 말이다. 뿌두체리는 스리 오로빈도 아쉬람과 오로빌이라는 영성공동체가 있어서 세계적으로 유명하다. 오리엔탈 풍의 옷이나 가방, 액세서리까지 고급스러운 물건들을 디스플레이도 잘 해놓고 싸지 않은 가격으로 팔고 있다. 오랜만에 좋은 아이쇼핑 거리를 찾았으니 정신없이 구경하며 돌아다닌다.
좋은 호텔들은 당연히 비싸지만, 숙소는 바닷가 바로 앞 아쉬람에서 운영하는 '파크 게스트하우스'로 정했다. 아쉬람에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들은 가격이 비싸지 않은 대신 룰이 엄격하다. 술이나 흡연 금지는 물론 통금시간도 정해져 있다. 안내 데스크에서 일하시는 분도 아쉬람의 일원이다. 다른 숙소와는 달리 숙박부도 꼼꼼하고 자세히 기입해야 한다. 나이 드신 할머니가 프런트에서 일하시는데 엄격하면서도 깔끔해 보이는 인상이 너무 좋다. 껄렁껄렁 여행자들에게 농담 거는 여느 숙소의 프런트와는 차원이 다르다. 괜히 수행자가 된 기분이 들고 떠들면 쫓겨 날 것 같아 눈치가 보인다. 이 숙소에선 여행자가 아니라 수도자가 된 기분이랄까?
여기가 뿌두체리인 만큼, 저녁은 '돈 지오반니'라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찾아간다. 음식을 기다리며 전망 좋은 식당에서 도시의 야경을 바라본다. 이탈리아 사람이 주인인 이곳은 여행자에게 무척이나 친절하다. 세계 어딜 가도 빠지지 않는 음식이 빅맥과 피자이긴 하지만, 여기 프랑스령이던 인도 뿌두체리에서 맛보는 화덕 피자와 파스타는 맛이 진짜 다르다.
바다와 가까워서인지 호텔 루프탑인 이 레스토랑은 바람이 세차다. 바람을 맞으며 식사를 하면서 동행과 이야기를 나눈다. '폰디체리'와 '뿌두체리'라는 지명 사이에는, '식민지'라는 단어가 있다. 세련되고 예쁜 서구 문명에 길들여진 우리는 '폰디체리'라는 이름이 맘에 든다. 인디언 쿼터와 프렌치 쿼터로 나뉘는 이곳에서 여행자는 프렌치 쿼터에 머물게 된다. 하지만 이곳은 지금 엄연히 인도땅이고 그들의 이름 '뿌두체리'라는 걸 인식한다. 과거를 지우거나 부정할 수는 없다. 다만, 과거를 거울삼아 현재를 잘 살아가야 한다는 것, 그것이 도시든, 사람이든 누구에게나 중요한 일이라는 걸 상기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