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빌, 세계와 다른 세상

영성공동체 오로빌에서의 한나절

by Girliver

요즘 뿌두체리는 "파이 이야기"라는 소설과 영화에서 폰디체리라는 지명으로 소개되어 유명하지만 수십 년 전부터 명성이 자자한 도시다. 1968년 건설된 "오로빌(auroville)"이라는 영성공동체가 있는 곳으로 전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이다. 인도의 사상가 스리 오로빈도의 이상향을 구현하기 위해 세워진 공동체 마을이 오로빌이다. 이곳에는 40개국에서 온 2천여 명의 사람들이 지금도 공동체의 삶을 나누고 있다. 오로지 오로빌만을 방문하기 위해 이 도시에 오는 사람도 있다.


오로빌에 가기 위해 오토릭샤 한 대를 전세 낼 생각이다. 오로빌에 갔다가 관람하는 동안 기다려서 다시 숙소까지 데려다주는 조건이다. 해변의 지나가는 릭샤를 세운다. 선한 인상의 나이 든 릭샤왈라와는 영어가 통하지 않는다. 그런대로 흥정해도 될 것 같은데 본인이 답답한 듯 지나가는 다른 릭샤를 세운다.

튜닝(?) 제대로 한 멋진 오토릭샤가 멈춘다. 젊은 릭샤 주인은 영어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흥정까지 일사천리다. 처음 세웠던 릭샤왈라는 마지못해 입맛만 다시고 있다. 괜히 죄송스러운 생각이 들지만 이 멋쟁이 릭샤를 타고 오로빌로 가기로 한다. 세상에, 릭샤 안에 비디오 플레이어가 설치되어 있다. 젊은 릭샤왈라는 음악을 좋아한다며 싸이의 "젠틀맨" 뮤직비디오를 틀어준다. 인도 여행 다니면서 이런 럭셔리(?)한 릭샤는 처음 타 본다. 별 호강을 다한다.

오로빌은 시내에서 멀다. 그래서 릭샤를 하루 동안 전세 내는 것이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해변을 지나 시내를 거쳐 시골길로 들어선다. 개별 투어가 힘들다는 이유를 알 것 같다. 가는 길에 오로빌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한참을 시골길을 달려 도착한다. 나오는 시간을 정해 릭샤왈라는 주차장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이미 다른 릭샤들도 많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 릭샤왈라가 우릴 기다리면서 심심하진 않을 듯하다.

오로빌은 맘대로 관람할 수가 없다. 먼저 투어리스트 리셉션 센터에 가서 통행증을 발급받는다. 이 센터 안에서는 오로빌에 관한 비디오가 상영되고 있다. 일단 비디오를 시청한 후 오로빌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뿌두체리 시내의 북적임, 투어리스트 리셉션 센터 같은 현대적 건물이 한 순간 사라지고 다른 세상인 듯, 고요한 숲이 손님을 반긴다. 마치 마법의 숲에 온 듯 그림 같은 풍경들이 펼쳐진다. 물론 이들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날마다 사람의 손길이 필요할 것이다.

여기저기 뻗어나간 반얀트리 그늘 아래 벤치에 앉는다. 서양인 여행자, 인도인 순례자들이 사진을 찍고 지나간다. 가지가 다시 뿌리를 내려 성장하는 반얀트리는 멀리서 보면 나무 한 그루가 아니라 작은 숲 같다. 오로빌 안에서는 서두를 이유가 하나도 없다. 문 밖 세계와는 다른 평화가 깃들어 있다.


아쉬람의 숙소 벽에 걸려 있던 스리 오로빈도의 사진이 떠오른다. 오로빈도는 영혼이 진화함으로써 갈등의 고리가 끊어진다는 깨달음을 전파했다고 한다. 아쉬람, 공동체, 오로빌, 깨달음...이 모든 것들이 쉽게 이해되지는 않는다. 다만 그 구조가 비슷해지고 있는 현대 지구촌에도 독특한 삶을 추구하고 실제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이 존재한다는 게 신기하다. 오로빌은 현존하는 공동체로서 큰 의미를 갖는다니 말이다.

오늘, 여기서 내가 살던 세계와는 다른 세상을 바라본다. 우물 안 개구리가 우물을 바꿔보는 것이 여행이라면, 다른 우물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과연 같은 하늘일까 다른 하늘일까? 같은 하늘을 바라보는 방식의 다름을 알게 되는 것이 여행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고요 속에서 자급자족하는 공동체를 이루어 자연과 조화롭게 살려 노력하는 삶이 존재한다는 것이 아득하기만 하다. 다른 세상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 오늘의 수확이라면 수확이다.


오로빌은 대단히 넓고 지금 방문하는 구역은 심지어 사람들이 거주하는 지역도 아니다. 오로빌을 안내하기 위한 루트이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와 숲과 경치를 돌아보며 걷는 길이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이 부럽다.

이곳에서 일하는 인도 여성들이 쉬고 있다. 옆에 가서 앉으니 반갑게 맞아준다. 웃으며 다가와서 어깨에 손을 두르고 사진을 찍으라고 채근한다. 관광객이나 순례자에게 늘 그러는 건지는 몰라도 그들의 친근한 몸짓 때문에 유쾌해진다.

오로빌의 핵심이라는 마뜨리 만디르(Mantri mandir). 이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걸어왔다. 전 세계 124개국의 흙이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물론, 한국의 흙도 있다고 한다. 오로빌은 마뜨리 만디르를 중심으로 은하계처럼 마을이 뻗어있다. 이 마뜨리 만디르만 보아도 우리의 세계와는 다른 세상임은 확실하다.

여행자는 내부 입장이 안된다. 전망이 잘 보이는 곳에서 바라볼 수는 있다. 걸어오면서는 몰랐는데 꽤나 많은 사람들이 앞에 앉아 마뜨리 만디드의 조형물을 바라보고 있다. 오로빌 안의 모든 것들이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는데다 차분한 관람객들과 함께 바라보는 광경은 마음도 정화해 준다.


공동체에 특별한 관심이 있는 것도 아닌 여행자의 발길이라 그에 얽힌 소상한 이야기를 아는 것은 아니지만 소설에나 나올 법한 다른 세상, 오로빌에서는 몸과 마음 모두 산림욕을 하는 기분이다.

아침에 전세낸 릭샤와 약속한 시간이 되어 오로빌을 나선다. 대기하던 릭샤에 오르는 순간 오로빌의 세계는 마법인듯 사라지고 릭샤에 부착된 첨단(?) 뮤직비디오가 현실로 돌아왔음을 알린다. 현란한 춤이 일렁이는 인도 음악의 비디오 영상과 뿌두체리 거리를 번갈아 쳐다보며 시내를 향한다.


부랴부랴 문닫기 직전의 우체국에 들러 엽서를 보내고 인도식 화덕 피자로 저녁을 먹고는 어둑해진 거리를 더듬어 밤의 해변을 산책한다. 바닷바람과 파도소리, 불빛들이 어울려 아름다운 밤 풍경을 연출한다. 이 풍경도 이방인에게는 다른 세상의 밤인데, 오로빌의 밤은 대체 어떤 모습일까?

바닷가를 등지고 모래 위에서 마지막 손님을 기다리는 노점상과 눈이 마주친다. 시간이 늦다. 엄격한 아쉬람 숙소의 프런트 할머니한테 혼나지 않으려면 빨리 숙소로 들어가야 한다. 걸음이 바빠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