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인디아
밤새 달린 버스는 잠이 덜 깬 여행자들을 화려한 거리에 내려놓는다. 여행자 거리인 꼴라바로 가는 사람이 넷이라 함께 택시를 탄다. 확실히 뭄바이는 대도시다. 시골로만 다니다가 대도시에 오니 또 마음이 어수선하다. 게다가 내일 새벽 비행기로 떠나야 해서 이곳에서 하룻밤도 묵지 못한다. 인도에 더 머무를 동행의 숙소를 구하려고 가는 것이다. 동행이 숙소를 정하면 거기에 오늘 하루 내 배낭을 맡겨두었다가 오후에 떠나게 될 것이다.
택시에서 내린 여행자들 모두 밤 버스의 피곤함에 지친데다 시골마을 함피에서 온 사람들이라 대도시가 낯설다. 뭄바이 물가는 최악이라서 남인도에서 쾌적하게 묵을 수 있는 돈으로 벽에 합판을 댄 쪽방 같은 작은 방에나 들어갈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마다 동물농장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다니며 길을 묻다가 깜리쉬라는 인도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직업이 호텔 보이라는 그는 마침 오늘이 일요일이라 쉬는 날이라며 흔쾌히 우리를 도와주겠단다.
깜리쉬의 도움으로 숙소를 정하고 나서 그가 알려준 현지인 식당에서 허기를 채운다. 뭄바이를 소개해주고 싶다는 현지인을 만났으니 횡재한 기분이다. 몸이 피곤하니 동행의 숙소에서 좀 쉬고 오후에 그를 만나기로 한다. 이미 6년 전 뭄바이에 왔었던 터라 그때 대략의 명소는 가봐서 뭄바이는 그냥 공항을 통해 아웃하는 도시로만 정했다. 그래서 최대한 함피에서 오래 머물렀고 뭄바이에서는 일박도 안 하고 공항으로 갈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깜리쉬를 만나서 꼴라바 거리 근처라도 잠시나마 돌아다닐 수 있다.
뭄바이 풍경은 여느 인도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마치 유럽의 어느 도시인 듯, 영국 식민지의 잔재를 가진 유럽풍의 건물들이 많다. 인도 최고의 무역항인 뭄바이는 제일의 상업도시이기도 하다. 예정에 없이 마주한 뭄바이 풍경에 피로도 잊게 된다.
인도 제일의 타지마할 호텔도 지나간다. 2008년 3월에 뭄바이를 여행했는데 그 해 11월에 여기 타지마할 호텔에서 사상자가 500명이 넘는 대형 폭탄테러가 일어났었다. 이제는 다시 평온한 일상으로 돌아와 있지만 이 도시의 사람들은 얼마나 경악했을까 싶다.
마침 일요일이라서인지 거리에는 인파가 가득하다. 인디아 게이트 앞에는 군악대가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가족, 연인, 친구로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와 있다. 나에게 2008년의 인디아 게이트는 아침의 고요함으로 기억되는데 지금은 일요일의 혼잡함으로 각인된다. 단면을 보게 되는 게 어쩔 수 없는 여행이다. 두 번 오니 한 조각의 기억이 더 보태진다.
군것질 거리를 파는 손바닥만 한 노점과 행인들이 그걸 사는 모습만 봐도 괜히 즐거워 보인다. 함피에 머물다 와서 그런지 이런 장면만 봐도 축제의 장에 온 것 같다.
바다 위의 작은 배들에 하나 둘 불이 켜지고 뭄바이의 하루가 저무는 것을 보며 저녁의 시장 거리를 돌아다닌다. 이 여행에서의 인도 여정은 오늘의 태양과 더불어 저물어 간다. 인도에서의 마지막 저녁은 아이러니하게도 맥도널드에서 먹는다. 사람 많은 일요일 저녁의 번화가 맥도널드에서 줄을 기다리다가 땀에 젖어 간신히 햄버거를 주문한다. 오늘 뭄바이에 도착한 우리를 위해 하루를 써 준 깜리쉬에게 고마워하며 햄버거를 입에 문다. 그런데 그가 자꾸 이상한 표정을 짓는다. 왜 그러냐고 물으니 사실 자기가 심장병이 있다고 한다. 비싼 약을 매일 먹어야 하지만 그래도 호텔보이까지 하는 자신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그래도 모든 게 신의 뜻이니 노플라블럼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안타까운 사연의 주인공과 대면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지만 의외로 그는 담담하다.
드디어 떠날 시간이다. 동행의 호텔에 들어가 배낭을 챙긴다. 밖에서는 깜리쉬가 기다리고 있다. 내가 공항으로 간다니까 그의 친구 택시를 불러줄 테니 안전하게 타고 가라며 나를 기다리는 것이다. 택시를 예약하려고 선금으로 500루피를 냈으니 택시가 오면 돈을 달라고 한다. 공항까지 전철을 타려면 좀 복잡하고 일찍 공항에 가야 하는데 그를 만나 뭄바이도 돌아다니고 그동안 정든 동행과도 시간을 더 가질 수 있어서 너무 고맙다.
드디어 택시가 온다. 깜리쉬는 기사와 몇 마디를 나누더니 나한테 택시비로 500루피를 기사에게 주고 자기한테도 미리 내준 500루피를 달라고 한다. 천 루피짜리 지폐를 꺼내는데 이 사람 안색이 안 좋다. 오백 루피짜리가 없느냐며 거리의 가게에 가서 돈을 바꿔와서는 자기와 기사가 나눠 가진다. 이 장면이 이 좀 어색한 거 같기는 한데 어쨌든 이제 이별이라 정신이 없다.
인도 땅에서 보름이 넘도록 함께 지낸 동행과 포옹을 나눈다. 서로의 여행길에 축복을 빌어주고 돌아서서 뭉클해진 마음으로 택시에 오른다. 첸나이에서 만나 여기까지 남인도 삼면의 바다를 함께 돌아온 인연이 새삼 고맙다.
꼴라바 거리에서 공항은 멀다. 택시를 탔으니 늦은 밤 뭄바이 풍경을 덤으로 바라보면서 간다. 여태 한 번도 보지 못한, 매우 현대적인 뭄바이 도심을 지난다. 공항으로 가는 길은 거의 8차선 도로다. 신호등이 반짝이고 수많은 차들이 지나간다. 우리나라와 다를 바 없는 풍경이라 여길 무렵, 인도 여행에서 처음으로 교통사고를 목격한다. 잘 정비되지 못한 인도의 다른 도로를 지날 때마다, 중앙선 없고 신호등이 없어도 서로 경적을 시끄럽게 울리며 무사히 갈 길을 가는 차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길이 넓어지고 차가 많아지는 대용량(?) 교통 시스템에선 투박한 인도식 경적으로는 무리인 게 당연하다. 인도라기보다는 여느 대도시 풍경일 뿐이다.
그런데, 택시 안에서 이동하는 긴 시간 동안 곰곰이 생각해보니 앞만 보고 가는 무표정한 이 택시 기사는 깜리쉬의 친구가 아니다. 그리고 깜리쉬는 아픈 사람도 아니다. 친절을 베풀고 자기 음식은 자기가 사 먹길래 마음을 놓았는데... 공항까지의 택시비는 오백 루피면 충분하다. 깜리쉬는 그의 하루를 우리에게 썼지만 일당 오백 루피를 번 것이다. 그것도 내 주머니의 돈으로. 심장병 어쩌고 했던 건 돈을 뜯어내기 위한 연기였음이 확실하다. 그는 그렇게 돈을 버는 사기꾼이었다.
인도 도착하자마자 뉴델리역에서 사기당할 뻔했다가 정신 차린 일화가 있어서 초창기에는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는데, 마지막 여행지인 뭄바이에서 너무 방심을 한 것이다. 모든 게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내 탓이고 다음 여행지에서 조심하라는 경고다. 찝찝한 마음이 들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일어난 일이고 크게 손해 본 것도 아니니 이쯤에서 마음을 접는다. 어쨌건 심심하지 않게 뭄바이 꼴라바의 일요일을 즐겼으니 그나마 새옹지마라고 위안한다. 어차피 인도 루피도 얼마 남지 않았다.
공항에 내려 택시를 보낸다. 인도 공항은 건물에 들어가는 것도 큰 일이 된다. 소지하고 있는 항공권을 경찰에게 보여줘야 비로소 건물에 들어갈 수 있다. 열한 시가 넘은 한밤중에 웬 사람이 그리 많은지 정신이 없다. 무엇엔가 취한 서양인은 경찰과 계속 몸싸움을 해대고, 덕분에 공항 입구는 구경꾼이 모여들어 난장판이다.
인도와의 이별은 요란하기도 하다. 떠나는 그 시각까지 여행자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 곳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걷잡을 수 없는 웃음이 터진다. 만남도 작별도 순탄하지 않은 인도 여행이지만 생각해보면 그 안에서의 한 달은 평화로웠고 소소한 즐거움이었다.
주머니를 뒤져 남은 잔돈을 초콜릿과 물 사는데 다 써버리고 간신히 공항으로 들어간다. 새벽 4시 비행기라 영락없이 밤을 새워야 한다. 몇 시간이라도 엉덩이를 붙일 빈 의자 하나라도 구할 수 있기를 기대하며 배낭끈을 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