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피 사원군, 반강제(?) 무료 투어

폐허가 된 왕국의 자취

by Girli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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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피를 떠나는 날이다. 오후에 출발하는 버스로 뭄바이로 갈 예정이다. 그래서, 오롯이 남은 한나절은 어제 선셋포인트에서 만난 김선생님의 제안으로 사원투어를 하러간다. 흩어져 있는 사원을 원활하게 다니기 위해 거리의 오토릭샤와 흥정을 한다. 김선생님은 대절한 릭샤비까지 손수 부담해주신다. 게으르게 함피를 즐기다 떠나려 했던 동행과 나는, 덕분에 반강제(?) 무료투어에 참여하게 된다.


오토릭샤는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사원 근처로 달려간다. 릭샤왈라는 우리가 사원을 방문하고 나올 때까지 기다려서 다음 목적지로 우리를 데려갈 것이다. 들르는 사원마다 단체로 온 학생들이나 개별적인 인도인 관광객도 많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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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 왕궁과 사원을 들른다. 하도 여기 저기 다녀서 어디가 어딘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대체 어떤 힘이 쪼개 놓은 바위인지 날카롭게 찢어진 바위면이 시선을 끌기도 한다. 신전이나 왕궁 말고 자연이 빚어놓은 볼거리도 널려있다.


왕궁 돌기둥에는 역시나 섬세한 석공예 부조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감탄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반면 야외 고고학 박물관의 석공예 유적들은 투박한 모습이다. 왕궁의 섬세함과는 거리가 먼 우스꽝스런 모습도 재미있다. 하지만 번성했다던 왕국의 영광은 이제는 폐허위의 신전터로만 남았다. 이런 역사의 현장을 접하며 삶의 유한함, 권력의 덧없음을 한탄하다가도 돌아서면 금방 제 삶으로 돌아가 휙 잊어버리는 게 다반사다. 역사에서 배운다고 하지만 알면서도 그대로 답습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이곳저곳 많은 왕궁과 신전들을 들러서 정신이 없지만, 그 중에서 로터스마할(lotus Mahal)은 기억에 남는다. 왕비들을 위한 휴식공간이었다는 이 건축물의 용도와 인도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결합된 건축양식 때문이다. 1층은 이슬람 양식으로 지었고 2층은 힌두사원의 모습을 하고 있는 독특한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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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덥고 건조하기만 한 날씨인데, 유적 중에 한가운데 물이 고여 있는 곳이 있다. 근처에 있던 인도인에게 들은 얘기로는 우기에 물을 저장하는 곳이라는데, 이 더운 날에도 물이 고여 있는 게 신기하다.


또하나 기억에 남는 사원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빗딸라 사원(Vitthala temple)이다. 오늘 본 유적지 중에서 단연 으뜸이다. 입장한 후 사원으로 이동하기 위해 타는 셔틀을 운전하는 사람은 특이하게도 여자들이다. 인도에서 젊은 여자가 일하는 모습을 많이 못 봐서 새롭게 보인다. 유명한 사원인 만큼 입장료도 비싸고 기다리는 줄도 길고 또한 기다리는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그늘도 설치해 놓았다. 여태 돌아다닌 폐허 같은 사원들에 비하면 역시 세계문화유산은 관리하는 차원이 다르다.


사원 안의 돌로 만든 전차는 차축과 바퀴까지 그대로 재현한 것이어서 굴러갈 수 있을 만큼 정교한 석공예라고 한다. 멀고 가까운 산에 나무나 풀이 아닌 돌과 바위만 가득한 함피에는 돌을 쪼아서 만든 신전과 조각품들이 현란할 만큼 많고 믿을수 없을만치 정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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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태양을 피해 그늘에 앉으면 사원을 방문한 인도 사람들이 활짝 웃는 얼굴로 말을 걸기도 한다. 그들도 다른 지역에서 이곳으로 여행 온 인도인들이다. 예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자꾸 앞에 와서 쳐다보기에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액정을 보여준다. 대부분 개구쟁이 남자아이들이지만, 수줍게 웃으면서도 다가와 포즈를 취하는 소녀의 눈망울이 천진하면서도 야무져 보인다. 아이들의 재잘 거리는 소리가 떠나질 않다가 뒤늦게 따라온 선생님의 한 마디에 진정이 되는 것은 우리나라나 다를 바 없는 모습이기도 하다.


동행과 내가 여자라서 그렇게 인도남자들이 말을 시키고 사진을 찍나 싶었는데 김선생님을 보니 그것도 아니다. 인도남자들은 외국인 남자들에게는 "마이 프렌드"를 연발하며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대화 나누는 것을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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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 만나도 반갑게 웃어주는 인도 사람들과의 시끌벅적한 만남도 뒤로하고 함피 바자르로 되돌아온다. 김선생님 덕분에 폐허가 된 왕국의 옛터를 둘러본 사원 투어를 끝으로 함피에서의 일정은 마침표를 찍는다. 배경지식도, 예정에도 없던 투어였지만 함피에서 떠나는 날이 그 때문에 의미를 더하게 되었다. 함피의 역사와 문화를 어렴풋이나마 둘러볼 수 있었고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할 수 있었으니 말이다.


오토릭샤에서 내려 뒤늦은 점심까지 먹고나니, 떠나야 할 시간이 성큼 다가와 있다. 함피에 남는 김선생님은 이제부터 딱히 할 일도 없다하시며 숙소까지 배웅을 해주신다. 배낭을 찾아 메고 작별인사를 나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여운은 길다. 정중하게 그리고 진심을 담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서는 김선생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함피를 떠난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심장이 두방망이질하기 시작한다. 이별이 늘 서투른 나는 어쩌면 여행길 위에서 이별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