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레] 아따까마 사막의 간헐천과 달의 계곡
새벽 4시, 간헐천으로 가는 투어버스가 호스텔로 온다. 고지대의 사막에서 뒹굴던 건조하고 피곤한 몸을 온천에 담그러 간다. 온천욕 짐만 간단히 챙긴다. 카메라가 없는 발걸음이 오히려 편안하다. 어둠 속을 달리는 버스 안에서 잠에 들었다 깨보니 날은 이미 밝아 있고 버스는 간헐천에 당도했다. 용암이 데운 물이 일정 기간을 두고 꿀렁꿀렁 솟아나 넓은 온천을 덥히고 있다. 더 뜨겁거나 작은 웅덩이는 데일 염려가 있을 테니 이 정도가 안성맞춤이다. 고지대의 아침이라 그냥 서있기엔 쌀쌀하지만 물에 몸을 담그니 알맞게 따뜻하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까만 머리의 키 작은 인디오의 얼굴에 많이 익숙했었는데, 이곳 칠레부터는 인디오들보다 서양인들의 모습이 더 많다. 옆에서 온천욕을 즐기는 가족은 아이 둘과 칠레의 수도 산티아고에서 휴가 온 사람들이다. 영어도 농담도 잘하는 유쾌한 가족 덕에 심심하지 않다.
그사이 버스 운전사와 가이드는 아침식사를 준비해 놓았다. 간이 테이블에 차린 빵과 잼, 코카 차와 온천물에 덥힌 따뜻한 우유가 전부지만 해발 4000m에서 온천욕하고 나와 먹는 아침은 그런대로 괜찮다. 돌아가는 길에서 버스는 포인트마다 멈춰 선다. 구멍마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분출하는 간헐천들이 널려있고 버스 창 밖에는 고산의 아름다운 풍경들이 펼쳐진다.
한가롭게 돌아다니는 야마를 발견한 사람들이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이미 볼리비아의 고산지대를 넘어온 내겐 익숙해진 풍경이다. 고산 증인 듯, 심한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에게 가이드가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을 보면서 고지대에 완전히 적응이 되어 있는 내 모습이 괜히 대견해진다.
간헐천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니 겨우 정오가 지나있다. 숙소로 들어가 노곤한 몸을 쉬고 오후에는 드디어 아따까마 사막의 달의 계곡(Valle de la Luna) 투어를 시작한다.
버스가 내려놓은 곳은 공원의 입구일 뿐이다. 여기서 한참 동안을 탐험가가 된 기분으로 바위 사이를 걸어 나가다 보면 눈앞에 장관이 펼쳐진다. 울퉁불퉁한 땅의 붉은 흙에 흰 가루가 뿌려져 있다. 소금의 흔적이 이곳을 별세계로 보이게 한다. 외계인이 나오는 우주판타지스릴러액션(?)을 찍기에 알맞은 배경이다.
사람의 손이 닿을 수 없는 아득한 먼 옛날, 상상할 수 없는 시간 동안 거대한 퇴적층이 형성되고 그게 다시 침식이 되는 과정을 거쳐 이런 장관이 남았다. 사람을 날려버릴 것 같은 기세로 세찬 바람이 불어 옷깃을 붙잡게 한다. 건너편 골짜기를 바라보는 이 쪽 아래는 바로 절벽이다.
새파란 하늘에 떠 있는 흰 구름은 세찬 바람에 밀려 빠르게 사라지고 더 빨리 다가온다. 시야가 탁 트인다. 자연이 제작한 한 편의 파노라마를 보는 기분이다.
땅을 내려다보면 달 표면에 착륙한 기분이 든다. 여기가 지구인지 우주인지 헷갈린다. 단 한 포기의 풀도 보이지 않기 때문일까? 달의 계곡의 생명체는 여기 찾아온 인간뿐인 것 같다. 오죽하면 이름이 '달의 계곡'일까? '세상에 한 번뿐인', '다시는 못 볼', '꼭 봐야 할'과 같은 수식어들이 화려한 미사여구가 아니다.
달의 계곡에 해가 진다. 상상의 범주를 벗어나는 자연의 위대함에 대한 경외감과, 여기에 도착하기까지 쉽지 않았던 여정들이 버무려져 마음 한 구석이 저릿해온다. 이 며칠 계속되는 사막에서의 나날들은 척박하고 거칠어서 육체적으로는 힘든 길이지만, 그 고통조차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일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바라본다. 그것은 또 다른 내 모습이기도 하다. 밤이 되고 달이 떠오르면 진짜 달의 계곡이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