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 해가 지지 않는 남미의 땅끝마을
우수아이아(Usuaia)를 아시나요?
핀 델 문도(Fin del Mondo),
세상의 끝이라 불리는 곳.
여기는 남극으로 출항하는 배가 당신을 기다리는
아메리카 대륙의 땅끝마을입니다.
선착장에 몰아치는 세찬 바람은 무엇이든 날릴 듯한 기세로 파고듭니다.
머리카락이 복잡한 마음처럼 마구 헝클어지네요.
한 순간도 쉬지 않고 스쳐오는 바람과 씨름하며 바다로 나아갑니다.
남극으로 향하는 바다에 잔물결이 반짝이는 듯 일렁입니다.
휘몰아치는 바람이 등을 떠밀어도 의연히 바다를 바라봅니다.
바다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오후, 언덕을 올라 산으로 향합니다.
파랬다가 잿빛이었다가 변덕스러운 하늘 아래 그림 같은 집들이 보입니다.
대문 안의 개들은 이방인의 출현에 흥분하기 시작합니다.
처음 보는 꽃들이 대문 앞을 수놓고 있습니다.
꽃을 심은 마음들이 둘러앉는 식탁의 정다움을 상상을 해봅니다.
차가워진 손가락을 비비며 조금 더 조금만 더 올라가 봅니다.
눈을 이고 있는 침엽수림의 산에 기대어 바다를 바라봅니다.
향긋한 바람이 불어와 벌게진 얼굴을 식혀줍니다.
기념품 가게에서 파란 바다에 빨간 등대가 그려진 엽서를 삽니다.
작은 카페로 들어가 커피 한 잔에 손을 녹이며 엽서를 씁니다.
세상의 길 위에서 매일매일 즐겁기만 했는데,
그래서 당신을 생각하지 않은 날도 많았는데,
오늘은 당신이 그립습니다.
당신에게 보내는 이 엽서는 어쩌면 나에게 보내는 것일지도 모르죠.
세상의 마지막 우체국에서 엽서를 부칩니다.
남극이 가까운 마을, 여름이라는 빛나는 계절의 이름이 무슨 소용일까요?
밤이 늦어도 환한 백야의 도시에 저녁이란 단어가 어울릴까요?
한국의 하늘과 우수아이아의 변화무쌍한 하늘은
다르게 보이지만, 같지 않다고 단언할 수 있을까요?
이 먼 곳에서 부치는 엽서는 과연 당신에게 전해질 수 있기나 한가요?
길고 긴 태양의 흔적 속에서
낯선 바다를, 산을, 집을, 거리를 바라봅니다.
그리고 사람들을요.
어딜 가도 무엇을 봐도 “끝”이라는 단어가 어른거립니다.
오늘이 살아온 날들의 마지막 순간이란 걸 깨닫습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마주할 진짜 끝은 단 하나겠지요.
이제는 쉽게, 끝은 시작이라고 단언할 수가 없어요.
해는 온종일 마을을 비추고 바람도 그칠 줄 모르는데,
어둠이 장막을 드리우려면 아직도 멀었나 봐요.
세상의 끝에서 당신을 불러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