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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Oct 05. 2020

나이 든 고양이와 산다는 것

고양이 잇몸질환


 동물은 왜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하지 않을까. 발견하고 나면 걷잡을 수 없는 경우가 많아서 늘 조심스럽다. 13년 된 노묘와 같이 산다는 건 늘 가슴에 작은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다. 결혼 후 남편과의 합방, 그리고 이사라는 큰 일은 김 쿠우 씨에게도 내게도 아슬아슬한 줄타기 같았다. 혹시나 어디가 아프면 어쩌나 싶다가도 멀쩡해 보이는 통통한 뒤태에 13살, 사람 나이로 따지면 칠순을 앞뒀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특히 귀가 늘 깨끗했기에 집에 있던 귀 닦는 세정제도 필요 없을 정도였고, 목욕은 3년에 한 번 할까 말까였다. 그러다 귀가 최근 들어 계속 더러워지길래 게으른 집사 탓인가 싶어 청소도 꾸준히 했지만 영 나아지질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뒤통수에 잡힌 작은 딱지들. 뭔가 뾰루지가 올라왔다가 긁었든 가라앉았든 흔적들이 있었다. 이걸 발견한 나 자신이 뿌듯할 정도로 숨어있던 피부질환을 보고 나는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집 밖에 나가면 세상이 끝나는 줄 아는 김쿠우씨를 데리고 병원을 가는 건 목욕만큼이나 비장한 일이다. 눈치는 빨라서 캐리어 뒤적이는 소리만 들려도 숨어버리는 데다가 나가는 순간 세상이 떠나라 울어대니 달래는 것도 쉽지 않다.


 원래 가던 병원이 문을 닫는 바람에 365일 하는 병원으로 바꾸었는데, 의사가 영 시원찮아서 다시 병원을 옮겼다. 곰팡이 피부염으로도 몇 년 고생했던 김쿠우씨라 이번에도 별 일 아니길 바라며 노심초사 의사에게 진료를 받았다. 내 걱정과는 달리 귀는 겉만 지저분할 뿐 매우 깨끗하단다. 요즘 작은 뾰루지는 흔한 데다가 김쿠우씨 나이가 많아 면역력 저하로 생길 수 있으니 걱정하지 마란다.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려는데 의사가 부러진 김쿠우씨의 어금니를 보더니 화들짝 놀랐다. 신경이 돌출됐는데 왜 아무 치료를 하지 않았냐는 거다. 분명 이가 부러져서 병원에 데려갔을 때 의사가 괜찮다고 해서 나도 레진이나 금니를 씌우지 않았던 건데 어리둥절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슨생님... 부러진 어금니 괜찮다 그랬잖아요...

 "말은 안 했어도 굉장히 아팠을 거예요. 이거 말로도 못하는 고통입니다. 아시잖아요. 이빨 아프면 얼마나 아픈지."


 나는 한대 세게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치아 문제는 한 번도 생각한 적 없었는데 이게 무슨 소리지?

 똥꼬 발랄하게 잘 놀아서 괜찮은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고?


 "양치는 잘 못 시켰죠? 나이가 들어서 스케일링도 못합니다. 염증이 심하면 턱에 구멍도 나요. 잇몸질환이 매우 심각한 수준이에요. 밥 먹을 때 딱딱 소리 나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사료를 부수는 소리인 줄 알았는데.


 "아파서 그래요. 못 씹는 거예요. 보통 발치하면 잇몸질환은 사라지는데... 마취가 길어지니까 이빨을 발치하다가 폐사되는 경우가 많아서 그렇게도 하지 못해요. 지금 많이 아플 겁니다. 이쪽으론 씹지도 못할 거예요."


 김쿠우씨는 자주 토하는 편이다. 급하게 먹어서 그렇다 생각했는데 씹지 않아서 토했던 거라는 걸 알고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겉으로 보기엔 너무 멀쩡해 보이고, 아픈 티도 안 내고, 예민하게 굴지도 않아서 나는 정말 이 친구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감안한다 해도 심각해요. 약을 먹으면 좋아지지만, 간이 심하게 나빠져서 오래 먹여도 안돼요."


  "제가 할 수 있는 게 없나요?"

 

 의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나이를 감안하셔야 해요."


 잇몸약 6일 치를 처방받고 나는 눈물을 꾹 참으며 김쿠우씨를 다시 캐리어에 넣었다. 내가 김쿠우씨의 아픔을 알아차리지 못했고, 함께 아파해 주지 못했으며, 관리를 제대로 해주지 못해서 이렇게 이 친구가 아프게 됐다는 생각에 너무도 가슴이 아팠다. 긴 시간 이 작은 친구가 얼마나 힘들어했을까.


 나중에 강제로라도 양치질을 시켜주려고 했지만, 피가 나서 더 이상 진행하지도 못했다. 더 이상 이가 아프지 않게 사료를 절구로 갈아준 후 울지도 못하고 쿠우를 한참이나 안고 있었다. 아픔을 참고 내게 좋은 모습만 보여준 작은 고양이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고, 다시 미안해졌다. 처음 집사라는 변명만으로도 통하지 않는 김쿠우씨의 통증. 좀 더 함께 지내는 고양이에 대해 잘 알고 공부했어야 했는데 그냥 되는대로 키워온 나의 잘못들이 복리처럼 붙어서 가슴으로 머리로 떨어져 내렸다.



 나이를 감안하라는 의사의 말이 귓가에 맴돈다. 13년이면 오래 살았다지만 내겐 너무도 짧다. 그리고 13살이라 하기엔 아직도 어리게만 보이는 김쿠우씨. 그리고 그런 김쿠우씨와 사는 나.

 너도 나도 서로 이제 없이는 못 살 만큼 오랜 시간을 함께 단짝처럼 붙어왔는데 어떤 이별이 올 지 모르겠다.



 그냥 김쿠우씨가 아프지 않게 행복하게 살다가 이별을 맞이 했으면 좋겠다. 그 이후의 몫은 온전히 내가 감당할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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