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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비아 킴 Dec 12. 2023

시간의 동사

현재를 살자



 시간을 [쓴다]는 것과 [보낸다]의 동사는 내게 주어진 시간이 유한하다는 걸 깨닫게 해 주고, 그 앞에 붙는 부사나 형용사들이 내가 이 시간을 가치 있게 여겼는지, 놓쳐버렸는지를 알려준다. 이런 생각들이 떠오를 때면 시간을 가치 있게 여겼던 것보다 그러지 못했던 시간들이 먼저 떠오른다. 오늘도 귀하게 쓰지 못한 시간들이 있었고, 그 당시 [지금]이 내게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나면 끊임없는 자책으로 마음이 몹시 속상해진다.


 일을 할 때 만나는 분들에게는 [지금]을 가치 있게 여기시길 부탁드리고 호소하면서 정작 나 자신의 시간은 유한하다는 걸 알아채지 못한다. 나는 [나중에]라는 것에 매몰되고, 시간이 이만큼이나 지났다는 사실에 아쉬워하고 후회가 자꾸만 쌓여간다.


 내가 시간을 가장 가치롭게 쓰지 못했던 중고등학교 시절은 종종 꿈으로 나타나 그때의 혹독한 감정을 통해 교훈을 준다. 꿈에서 나는 학교에 늘 지각하거나, 교과서를 놓고 오거나,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서 쩔쩔매는 것이 대부분이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내가 맞이할 미래가 어떤 처참한 모습일지 그저 막연했고, 희망조차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환경 탓을 하며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포기해 버렸다. 성인이 되어서야 그때 어떤 상황이었던 내가 해야 할 일을 열심히 하며 시간을 가치롭게 여겼어야 한다는 걸 크게 후회했다. 후회와 미련은 악몽으로 나를 질책한다. 심지어 이런 상황을 만회하고 싶었는지 또 다른 꿈에서 나는 조금 성장해 있었다. 학창 시절을 만회하겠다며 성인이 되어 다시 고등학교를 다녔다. 꿈속에서 나는 전에 비해 자신감에 차 있었던 것 같다. 쫓아가지 못했던 수학을 쫓아가기 위해 꿈속에서 얼마나 많이 공부해 갔던가. 하지만 수업 시간에 교과서가 또 보이지 않았고, 나는 교과서를 찾느라 수업을 듣지 못했다. 이런 꿈을 꿀 때면 내가 도대체 어떤 트라우마를 상기시키려 하는지, 그것이 내게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함인지 생각하다, 곧 자책에 휩싸인다.


네팔 파슈파티나트 사원에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내고, 그를 위해 기도하며.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는다. 어떻게 보면 시간의 흐름은 모두에게 [공평] 한 것이겠다. 나는 갈등의 시대에 공평을 바라면서 내게 주어진 공평을 알아채고 귀하게 여기고 있는가. 한 해를 약 이십일 남짓 남겨둔 오늘, 나는 [지금]도 시간을 어떻게 [쓰거나/보내고 있는가]. 그 앞에 어떤 형용사와 부사를 붙여 그 동사를 빛낼 것인가. 자문해도 내게 단 한 번만 주어진 오늘을 제대로 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저 바닥으로 가라앉을 때, 감사하게도 내게 주어진 내일을 귀하게 여길 약속을 하며 나의 연약하고 못난 것들을 다시 안아 주는 용기를 내어본다.


 지금을, 현재를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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