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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아 May 12. 2022

옷장 정리하기

나는 그동안 어떻게 옷장의 옷을 채워왔는가

  2월에 있던 내 생일을 맞이하여 남자친구는 커플 운동화를 선물해 주었다. 이사 과정에서 이 운동화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박스째 애지중지 보관했고, 원래 신고다니던 운동화도 있다보니 새 신발을 당장 꺼내지 않던 참이었다. 그 와중에 신발끈 묶기는 또 왜 이렇게 귀찮은지. 남자친구가 기꺼이 신발끈을 매주어서 그때부터 새 운동화를 신고 다니고 있다. 마침 남자친구가 커플 운동화에 어울리는 옷을 사러 가자고 했다. 그의 생각에 이 신발은 기장이 긴 와이드팬츠를 입어서 운동화를 앞머리만 남겨두고 가려 신는 게 예쁘단다. 롱스커트랑 매치해도 예쁠 거라고 했다.


  엄마가 나보고 롱스커트 입으면 아줌마 같대. 나는 키가 작아서 롱스커트 입으면 키가 더 작아 보여. 롱스커트를 입으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계단 오르고 내릴 때 밟힐 수 있어.


  나는 롱스커트가 없는 이유를 쏟아내며 내 옷장 속의 옷들을 머리로 스캔했다. 나는 아직도 옷이 많았고 옷장을 계속해서 비워낼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남자친구의 옷을 사주겠다는 말에 '나 옷 많아~'라며 거절했는데, 그동안 똑같은 옷을 즐겨입는 나를 봐온 남자친구는 내가 입을 옷이 없는 거라고 생각했단다. 옷장에 옷은 많지만 입을만한 옷이 없는 상황일 거라고.

출처 : 에이블리(ABLY) 페이스북

  나는 이를 반박했다. 코로나19 특수(사회적 거리두기)와 겨울의 추위로 인해 우리는 주로 집에서 데이트를 했고, 집에서는 어차피 편한 옷으로 갈아입기 때문에 외출복을 잘 입을 필요가 없었다고. 남자친구는 그래서 그런 거였냐며 막 웃었다.


  그 밖에도 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체온조절을 잘 못하는 편이라 겨울에는 가능한 멋 부리기 보다 따듯하게 입는 편이다. 누구라도 그렇듯 나 또한 편한 옷에 손이 가고, 그러다 보니 스타일이 무난하고 착용감도 편안한 특정 옷을 자주 입게 된다. 겨울 니트가 많은데 그 니트를 다 꺼내어 입으면 나중에 세탁하기 힘들어서 딱 입고싶은 니트 몇 개만 꺼내어 입었다. 언젠가 있을지 모를 격식있는 자리를 위한 블라우스 또는 정장 원피스가 꽤 많은데, 이런 옷을 입으려면 스타킹이랑 구두를 맞춰 신고 메이크업까지 풀세팅을 해야 한다. 중요한 날, 갖춰 입어야 하는 자리가 아닌 이상 블라우스나 정장 원피스는 자주 입지 않는다.


  내가 옷을 고르는 방법은 이랬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 옷은 미니멈, 케네스레이디 등과 같은 브랜드에서 주로 원피스를 사고, 캐주얼은 SPA브랜드(유니클로, 탑텐, 스파오..)에서 사는 것이다. 이사 오기 전의 동네에서는 20년 가까이 역세권을 누리며 살았기에 엔씨아울렛과 롯데백화점의 접근성이 무척 좋았다. 특히 엔씨아울렛을 많이 이용했는데 그 이유는 롯데백화점보다 작아서 빠르게 둘러볼 수 있으며, 퇴근길에 자주 지나다녔기 때문에 할인품목을 빠르게 잡아낼 수 있었다. 그 밖에는 폴햄, 탑텐 등의 온라인몰에서 할인을 많이 할 때 옷이 대충 괜찮아보이고 가격이랑 사이즈가 맞으면 주문했다. 옷 쇼핑 경험치가 늘어나니 옷을 안 입어보고 사도 생각한 대로 핏이 나왔다. 또한, 집 근처의 공원에서 매주 토요일 벼룩시장이 열릴 때 시간이 맞으면 엄마랑 같이 구경가서 옷을 쉽게 사기도 했다. 가끔씩 엄마가 중고거래로 사온 옷이 엄마한테 작으면 그건 항상 내 옷장으로 왔다.


  반면, 남자친구의 옷 쇼핑 방식은 나와는 정말 달랐다. 옷을 사러 가기 전에 각 브랜드별 스타일을 공부한 다음, 옷을 입어보며 원하는 핏이 나오는지를 확인한다. 이월할인을 노리는 나와 다르게 남자친구는 옷에 제값을 주고 사는 스타일이다. 남자친구의 말에 따르면 이월할인으로 나오는 것들은 재고 처리이기 때문에 유행을 안타는 기본 아이템이 거의 없다고. 따라서 유행에 민감하지 않은 기본 아이템은 제값을 지불할 가치가 있다는 게 그 설명이었다. 나아가 남자친구가 고르는 건 프리미엄도 붙는다고.


(구글 쇼핑 검색)

예를 들면 이런 것. 해마다 등판 프린팅이 달라진다.




  백화점을 한 바퀴 돌았을 때에는 눈에 들어오는 게 없어 갈피를 못 잡았지만 이윽고 남자친구의 눈에 들어온 팬츠 하나. 피팅을 해보기 시작하자 남자친구가 이것도 입어보라며 같이 매치할 옷을 야무지게 선별해서 가지고 왔다. 옷을 갈아입고 나온 내 모습을 보면서 점점 느낌을 잡아가던 남자친구는 적극적으로 옷을 골라주기 시작했다(센스가 정말 좋음). 그렇게 남자친구가 와이드팬츠롱스커트를 하나씩 사줬다. 팬츠는 새 상품을 받아다가 기장 수선을 할 거고, 롱스커트는 택배로 배송받기로 하여 둘 다 당장 입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다음 데이트에는 예쁘게 입으려고 집에서 여름옷을 꺼내서 이것저것 매치해보며 입어봤다.


  사실은 내게도 어렵게 고른 롱스커트가 한 벌 있긴 했다. 그런데 내가 롱스커트를 피하던 이유를 다시 생각해보면, 그건 내 의견이라기보다 엄마의 주입식 견해에 더 가까웠다.

엄마가 나보고 롱스커트 입으면 아줌마 같대. ➡️ 내가 롱스커트 입은 모습을 보고 엄마가 '아줌마 같다'고 함(내가 핏이 펑퍼짐한 롱스커트를 입었을 것으로 추정)

나는 키가 작아서 롱스커트 입으면 키가 더 작아보여. ➡️ 내가 롱스커트 입은 모습을 보고 엄마가 '키가 작아보인다'고 함

롱스커트를 입으면 지하철이나 버스 등에서 계단 오르고 내릴 때 밟힐 수 있어. ➡️ 롱스커트를 사고 싶어 하는 나에게 엄마가 '계단 오르고 내릴 때 밟힐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고 함(롱패딩도 마찬가지)


  하지만 이런 말을 계속 듣다보면 결국 수긍하기 마련이다. 생각해보면 옷장 속의 그 분홍색 롱스커트는 참 잘어울리는데 말이다. 젊은 나이에 소화 가능한 미니스커트가 있고, 지금 나이에 잘 어울리는 옷이 있다. 나는 이제 롱스커트도 제법 잘 어울리는 것 같다. 계단 이용할 때에는 내가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면 되지.


  나에게는 짧은 기장의 청반바지(왜 이걸 핫팬츠라고 부르는 걸까... 핫..핫..)와 미니스커트들이 많았다. 원래도 날씬한 편이지만 작년 여름에는 입맛을 잃고 살이 쪽 빠져서 전부 잘 맞았던 옷들이다. 하지만 아직 올해의 무더위는 시작되지 않았고, 그것은 즉 아직 내게도 살이 붙어있다는 뜻. 허리가 안 맞거나 단추를 잠그기에 너무 타이트한 옷, 불편한 옷, 기장이 너무 짧은 치마를 정리하기로 했다. 많이 입었거나 지금 입기에 유행이 너무 지난 옷들도 정리했다. 마침 작년 여름에 와이드핏 청바지를 사서 잘 입었는데 와이드의 편안함을 알아버리니까 스키니핏은 입기가 싫어졌다.. 스키니핏은 분명히 예쁜데 21년부터는 완전히 와이드핏으로 트렌드가 바뀐 느낌이다. 거의 15년가량을 스키니진과 함께 살아왔는데 이제 너무 꼭 끼이고 단추 잠그기도 불편한 스키니진은 보내줄 때가 됐다.


  그렇게 나는 옷장 정리를 했다. 이사 전에 한 번, 이사오고나서 며칠 동안, 그리고 이번에 여름옷을 꺼내면서 세번째다. 이사오고나서 옷장 정리를 할 때에도 옷을 많이 버렸다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나는 옷이 많았다. 점퍼, 아디다스 져지, 자켓, 트위드자켓, 블라우스, 반팔티, 맨투맨티, 원피스, 카디건, 코트와 패딩까지.


  버리려고 내놓은 옷에는 이런 것들이 있었다. 색이 예뻐서 좋아했지만 도저히 마땅한 날씨를 만나지 못해서 한 번도 못 입어본 하늘색 반코트는 앞으로도 입을 일이 없을 것 같았고, 주민등록증 사진 촬영할 때 입었던 하늘색 남방도 딱히 또 입을 것 같지 않았다. 분명히 몇 해 전에 입을 때만해도 정말 예뻤던 원피스는 한때 타오바오 쇼핑에 빠져있을 때 구매한 것인데 지금 입어보니 허리가 낭낭하고 엉덩이가 부해보였다. 지금보다 날씬할 때 입었던 테니스스커트는 옆 지퍼를 올리다가 허릿살이 집혔다. 엉덩이 부분이 올라가다보니 기장이 더 짧게 느껴졌다. 허리 사이즈가 크더라도 기장이 짧은 스커트 또한 입을 일이 없었다.

원피스, 블라우스, 청치마와 청반바지
스커트

   서른 벌 정도의 옷을 헌옷수거함에 넣었다. 사실은 옷장이 비워지는 게 신기했다. 전부 다 언젠가는 입을 옷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옷을 직접 입어보고 상하의를 매치해보니 안어울리거나 매치가 안되는 옷을 골라낼 수 있었다. 다시 보니 남자친구의 말이 맞았다. 옷장에 옷은 많지만 입을 옷이 없다는 것. '입을 옷'이라고 생각했던 옷을 서른 벌이나 버리게 되었다면 그건 입을 옷이 없던 게 맞지.


앞으로는 옷장을 입을 옷으로 채워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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