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9년 11월, 부모님과 오빠가 어디 모델하우스를 보고 온다고 주말에 바쁘게 움직이던 날이 있었다. 다녀오고 나서는 아빠가 나한테 '무조건 (청약) 넣어라'라고 하셨고, 다음 달 청약일에 나는 오빠한테 이렇게 하는 거 맞냐고 물어보며 청약을 넣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 아침 8시에 무슨 문자를 받고 자다가 깼다. 아마 택배가 온다는 문자였던 것 같다. 대충 확인하고 다시 잤는데, 출근한 뒤에 무심코 아파트투유에 접속해보니 당첨되었다는 화면이 보였다.
엥...???
다시 보니 아침 8시에 청약 당첨 문자도 와있었다. 잠결에 다른 문자를 보느라 확인을 못했던 것이었다.
당첨되고난 뒤에야 계약을 위해 모델하우스를 방문했는데, 내가 신청한 타입이 모델하우스에 전시되어 있어서 구경해보니 방이 세개고 드레스룸도 있어 넓고 좋아보였다. 나는 가진 돈이 없어서 내 집 마련을 하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는데 우연한 기회에 덜컥 당첨이 되었다. 솔직히 이게 좋은 일이 맞는건가 얼떨떨했다. 모아둔 돈을 다 털어서 계약금을 냈어야 했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빌트인 김치냉장고와 시스템에어컨 네 대를 계약했다(내 집에는 에어컨이 각 방마다 있어야 한다는 진심을 담았다). 그래도 부모님께 손을 벌리지 않고 모든 비용을 내 돈으로 해결한 것이 나로서는 너무나도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돈을 내고 나니 통장 잔고가 비어보였지만 그 뒤로 또 착실히 일했다. 중도금은 대출받아서 해결하고 있다. 이로서 우리 식구들은 나를 마지막으로 1인 1주택을 소유하게 되었다.
주택청약통장은 한 번 당첨이 되면 더이상 쓸 수가 없는 거였더라. 모르던 사실이었는데 자동이체 해두었던 청약통장에 돈이 언제부터인가 불입이 안되고 있길래 놀라서 은행에 달려갔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나는 인생에서 두번째 주택청약통장을 만들었다. 당첨이 되면 그 이후로 5년 간 당첨이 안되지만, 주택청약이니 내집마련이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가 내 소유의 집이 생기고 나서야 관심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만나는 친구들 마다 주택청약통장이 있냐고 묻고, 한달에 2만원이라도 꼭 불입을 하라고 말하고 다녔다(나도 2만원 불입하고 있었고, 청약에 필요한 예치금 금액은 미리 채워둔 상태였다). '어차피 돈 없어서 당첨되어도 계약금도 못 내', '어차피 당첨 안돼'라며 다달이 2만원도 못내겠다는 친구들도 있는데, 내가 당첨되어서 하는 말이라고 하면 그때부터는 그래도 태도가 달라졌다. '나도 해봐야겠다'는 그런 희망을 엿보는 것이다.
20대 미혼이나 20대 미혼 여성이 주택 청약에 당첨되는 건 꽤나 드물고 확률적으로도 희박한 일이라고 한다. 누구네 딸이 20대 미혼에 주택 청약 당첨이 됐다네, 뻥 아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내가 바로 그 경우에 해당하므로 '가능함'을 꼭 말하고 싶다. 물론 나는 운이 좋았다. 당시 내가 아파트를 청약한 곳은 비규제지역이었고, 세대원도 1순위 청약이 가능했다. 추첨 물량이 60%였으며, 나의 가점은 17점으로, 가점에서는 당연히 광탈하고 추첨으로 당첨이 된 것이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투기과열지역으로 지정이 됐다. 그야말로 비규제지역 막차를 탄 셈이다.
혹자는 20대 미혼 여성이 수도권 아파트에 당첨이 될 리가 없다며 '인기 없는 아파트였나보다'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줍줍 물량은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보였고, 내가 당첨된 타입은 완판되어 줍줍 물량이 나오지도 않았다.
나름 숲세권인 이 아파트는 공원을 따라 산을 넘어가면 서울대학교 캠퍼스가 나온다. 전에 여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가 서울대학교로 나와서 거기서부터 버스타고 지하철 타고 집에 온 적이 있다. 지하철로는 1호선 관악역이 가깝고, 서울 접근성이 좋다.
안양 지역의 주택청약에 당첨이 됐다!
입주는 내년 8월이다. 가끔 저 근처 공원에 놀러가면 건설현장이 보여서 얼마나 올라왔는지 구경하고 온다. 언젠가 이 집에서 신혼생활을 하거나 이 집으로 독립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으나 마음대로 될 지는 모르겠다. 돈만 있으면 독립을 못하겠느냐만.. 시스템에어컨 네 대와 빌트인 김치냉장고에서 내가 실입주를 얼마나 원하는지 느껴질까. 빌트인 김치냉장고는 사이즈가 딱 알맞고 주방이 예뻐보이거든..! 게다가 나도 새 냉장고를 처음부터 쓰고 싶기도 하고. 이렇듯 들어가 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개인 사정상 아마 당장은 전세를 놓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