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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The only living boy Jul 23. 2019

사랑 여행기 [피렌체 편]
유럽의 카 쉐어링 사정

 "울적했던 기분이 점점 부드러워져 나는 선선한 저녁 공기를 마시며 긴 산책이 하고 싶어 졌다. 나는 일어나 신발을 신었다. 문을 열어젖히며 아주 긴 여름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트랄이 들이닥칠 것처럼 하늘이 슬퍼 보이는 날이었다. 나와 여자 친구는 점심때가 되기 전 마르세유를 떠나는 차에 올랐다. 우리는 마르세를 출발해 피렌체 향하는 놀라운 차를 찾아냈고, 기름값을 나 동행하기로 했다. 나이가 지긋한 프랑스 남성은 가는 길에 모나코에서 한 사람을 더 태울 거라고 했다. 함께 달려 나가야 하는 638km의 길. 놀라운 가격으로 프랑스 남부와 이탈리아 서북부의 해안도로를 달릴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우리가 불평불만을 터뜨린다면 그건 벌 받을 만한 일이다. 이것도 저것도 다 인연이다.


 매년 5월마다 영화에 미치는 깐느, 긴 겨울의 끝자락을 장식하는 카니발의 도시 니스를 지나자, 미친 인간들의 운명을 수없이 바꿔놓은 몬테카를로 카지노가 자리 잡은 모나코 공국이 나타났다. 영원히 따라잡을 수 없는 해를 따라 해안선을 달리고 또 달렸다. 깎아지른 절벽이 나타나는 곳에서 휙 하고 고개를 꺾어 다음 도시로 향했다.


 [MONACO 28KM]와 같은 도로 표지판을 보니 가슴이 뭉클했다. 28km만 가면 아틀란티스와 같이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만 같던 도시가 있었다. 

 같은 맥락으로 나는 공항에서 출도착 안내 전광판을 보는 일을 병적으로 좋아한다. 도착지에 적힌 도시들의 이름은 나를 환장하게 만든다. ULAN BATOR, TORONTO, DENPASAR와 같은 글자들은 나를 정말 미치게 한다. 내가 다녀온 도시들이라면 이름을 보자마자 나는 어느 장면과 사람들, 추억들로 눈물이 난다. 아직 가지 않은 곳들은 내게 빳빳한 목적의식을 부여한다. 심할 때는 전광판만 보러 공항에 간 적도 있다. 도시들 이름만큼 강력한 단어들은 또 없는 것 같다. 그들만큼 나의 호기심과 상상력을 강하게 자극하는 단어들은 얼마 생각나지 않는다. 


 번외로 나는 하늘을 날아가는 비행기를 보면 또 미쳐버린다. 길을 산책하다 밤하늘을 이동하는 비행기를 보면 나는 걸음을 멈춘다. 그리곤 곧장 비행기 내부를 상상한다. 그 안에 타고 있을 사람들. 비행기의 방향을 보며 목적지를 추측한다. 동쪽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니 태평양을 가를 기세다. 역한 방부제 냄새를 풍기는 기내식. 수백 만의 엉덩이가 앉은 특유의 섬유 냄새. 그 무리에 합류해 다른 나라, 생전 처음 가는 도시로 향하고 있는 내 모습을 상상한다. 그래서 한때 여객기 조종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멀미가 심해서 포기했다. 그리고 조종사 학교에 다니는 데만 수천만 원이 든다고 했다. 대학교에 소송을 걸어 내가 쓸데없이 쓴 돈을 돌려받는다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었으나 승산이 없어 포기했다.  


 아무튼 영원히 이어질 것 같은 해안선을 달리다 보면 누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당신은 프랑스를 떠나 이탈리아의 땅으로 들어가게 된다. 유럽의 도로 사정 중 가장 행복한 점은 달리는 차에 몸을 맡기고 있으면 당신도 모르는 새에 다른 나라의 국경을 넘어서고 있다는 점이다. 눈 깜짝할 새에 표지판이 프랑스어에서 이탈리아어로 바뀌면 뭉클한 기분이 든다.


 모든 사람에겐 각자의 습관이 있듯 카 쉐어링을 할 때는 운전자마다 각자의 특징이 있다. 마르세유에서 피렌체로 향하는 아저씨는 많은 사연을 가지고 있지만 절대 입을 열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의 과묵함은 7시간이나 지속되었다. 함께 탄 사람이 연쇄살인마였어도 그는 당신에게 아무 말도 안 할 거다.


 언젠가 홀로 여행하던 길에 비엔나에서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로 향하는 차를 탄 적이 있다. 운전자는 머리가 벗어진 30대 오스트리아 남자였다. 비엔나 구석의 한 공원에서 나는 그를 만났다. 그는 굉장히 사람 좋은 사람이었지만 정말 말이 많았다. 400KM의 거리를 달려 나가는 동안 나는 그의 팬티 색깔까지 알게 되었다. 우리는 두 명의 크로아티아 여자들을 태워야 했다. 그녀들은 삼십 분이 넘게 늦은 것도 모자라 약속 장소를 바꾸기도 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모인 우리는 드디어 크로아티아 자그레브를 향해 길을 출발했다. 내가 비엔나 체류 중 오페라 하우스 근처에서 [미션 임파서블]의 신작 시리즈를 촬영하는 톰 크루즈를 보았다고 하자 운전자는 자신이 꽤 실력 있는 영화판 스텝이라고 했다. 그리고 톰 크루즈의 키가 얼마나 작은지에 대해 떠들었다. 이어서 자신이 참여한 작품 몇 개를 쭉 열거했는데 모두 처음 듣는 것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놀라움을 표현해 주었다. 영화에 대한 나의 스펙트럼이 좁은 탓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크로아티아에 어머니의 생일 파티 참석을 위해 가는 것이라고 했다. 어머니의 새로운 젊은 남자 친구는 크로아티아 바닷가 앞에 좋은 별장과 삐까뻔쩍한 요트를 가지고 있는데, 그 요트 안에서 성대한 파티가 열릴 것이라고 했다. 나의 짐을 트렁크에 넣을 때 케익을 보지 못했느냐고 물었다. 나는 자세히 보지 못했다고 했다. 그는 그것이 어머니에게 가져가는 유일한 선물이라고 하면서 아마 저 케익은 곧바로 바닷가에 집어던져지거나 트렁크에서 발효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상당한 유머를 구사하는 사람 좋은 사람이었다.


 이어 그는 내게 몇몇 질문을 했다. 그러나 대답을 들으려고 한다기보다는, 그 대답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다시 이어가려는 의도처럼 보여 점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뒷좌석에 앉은 여자 둘은 몇 시간 동안 잠자코 있다가 한 숨 자고 일어난 후부터 말문이 트여 떠들기 시작했다. 알고 봤더니 그들은 굉장히 성실한 여자들이었다. 그녀들은 독일 슈투트가르트의 면직 공장에서 열심히 일을 하여 고향으로 돌아갈 돈을 번 크로아티아인들이었다. 잠시 비엔나 관광을 마치고 드디어 고국에 놀러 간다고 했다. 그 뒤로 그녀들은 여러 얘기들을 더 해보려 시도했다. 하지만 얼마 못 가 상대들이 재미없는 오스트리아 대머리와 동양 남자임을 깨닫고 입을 닫고 말았다. 우리는 중간에 헝가리의 주유소에 들러 십분 남짓의 휴식을 취했다. 오스트리아 남자는 마치 비밀을 누설하듯 고속도로의 주유소는 기름값을 더 비싸게 받는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면서 굳이 샛길로 빠져 헝가리의 국경을 넘어 호밀밭이 끝없이 펼쳐진 시골의 한적한 주유소에서 기름을 채워 넣었다. 기름을 넣는 동안 여자들은 밖에 나가 담배를 피웠다. 나는 그들의 옆에서 소세지 빵을 뜯어먹었다. 아침에 호스텔을 나오며 비상용을 챙겨 온 빵이었다. 크로아티아 여자들의 통통하고 육감적인 몸매는 오후의 태양빛 아래서 아름답게 빛났다. 오스트리아 남자의 대머리도 반짝였다. 나는 우리가 오즈의 마법사의 아름다운 일행처럼 느껴졌다. 문득 그들과 함께 크로아티아의 술집에서 만취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를 때까지 함께 맥주를 마시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각자의 목적지가 있었다. 차는 쥐도 새도 모르게 슬로베니아 국경을 넘다가 곧이어 크로아티아 국경을 넘었다. 풋사과 같은 연둣빛 녹지가 주위를 둘러쌌다. 높지는 않았으나 그 경사가 가팔라 신비스러워 보이는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었다. 남자가 파산 신청을 한 독일 은행의 비화와 그로 인한 세금 문제들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여자들이 맞장구치는 동안 나는 잠시 창밖을 내다보며 크로아티아에서 보낼 나날들에 대해 처음으로 생각해 보았다. 나의 인생은 잡초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자라고 있었다.


 그들은 자그레브 시내를 크게 돌아 내가 묵을 숙소 앞까지 나를 데려다주었다. 여자들은 거의 처음으로 내게 환한 웃음을 건네주었다. 나는 신사답게 그들에게 화답했다. 그들의 생사는 알 수 없지만 그들이 면직 공장을 떠나 안락한 집에서 귀여운 아기들의 예쁜 엄마가 되어 있기를 나는 바라고 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 보니 나와 여자 친구는 마르세유보다 피렌체에 더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중간에 제노아 근처에서 한번 차를 세우고 쉬었던 게 기억난다. 지중해가 내다보이는 절벽 위에 위치한 해안 대피소 같은 주유소에서 말이다. 여자 친구는 차멀미가 심해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 했다. 그건 내 마음을 찢어지게 만들었다.

 운전자는 우리에게 물었다.

 "불편한 건 없나요?"

 나는 대답했다.

 "불편한 건 전혀 없습니다."

 알고 보니 그는 굉장히 친절하고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아름다운 이탈리아의 대저택

 지루한 드라이브가 끝나고 우린 드디어 플로렌스 지방에 다다랐다. 플로렌스는 피렌체의 영어식 이름이다. 꽃의 도시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가 묵을 에어비앤비 숙소는 피렌체 시내에서 한 시간 가량이나 떨어져 있는 곳이었다. 피렌체엔 우리가 묵을 수 있을 만한 가격대의 숙소가 전무했다. 운전자는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우리를 숙소 근처까지 태워줄 수는 없었다. 그는 플로렌스 지방의 알 수 없는 미지의 마을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이름 높은 이탈리아의 여름 햇살이 아직 그 힘을 잃지 않고 있었다. 마을의 건물들엔 담쟁이 덩굴들이 엉켜 붙어 있었다.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우리는 당황을 멈추고 길을 물어물어 숙소가 위치한 마을로 향할 수 있는 버스에 올라탔다. 그곳은 매일 파스타를 먹는 토박이 이탈리아인들만이 모여 사는 진정한 이태리 마을이었다.


 가까스로 숙소 앞에 도착한 우리는 겨자색 페인트칠이 멋들어지게 발라져 있는 이층짜리 단독 주택 앞에 서 있었다. 집주인에게 키를 넘겨받은 우리는 화려한 문양이 장식된 초록색 문을 열어젖히고 숙소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는 일주일간 그 집의 주인이 되었다. 그녀가 말했다. "나한테 정말 근사한 생각이 있어!" 그녀에겐 언제나 근사한 생각이 있었다. 

 진군하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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