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1. 프롤로그

나는 음악을 좋아한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노래가 끝나기 전까지의 시간을 견디는 걸 좋아한다.

약속보다 일찍 도착한 날엔, 그 시간만큼의 노래를 듣는다. 노래가 끝나기 전엔, 가급적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으면 한다.


약속 상대는 아직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하지는 않는다. 상대가 약속된 시간에 맞춰 온다면, 단 몇 초 정도의 차이로 내 플레이리스트는 끝날 것이다.


의자에 등을 붙이고 앉아 사람들의 발을 본다. 다양한 신발들, 다양한 보폭과 속도. 걷는 사람들은 누구도 나를 보지 않는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일방적인 소통이 진행될 뿐이다.


지금 귀에서 들리는 가사, 그가 거의 다 왔다는 신호다. 슬슬 일방적인 소통에서 벗어나, 그와의 대화를 준비해야 한다.


그는 평소와 다름없이, 나의 음악감상을 방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어디로 간다고?"


"일본."


그는 다시 한번 강조했다.


"일본."


그가 일본으로 간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날을 떠올렸다.






대학에 들어가기 전, 나는 공부보다는 무엇으로 세상을 바꿀지를 먼저 생각했다.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결론은 바뀌지 않았다. 음악이었다. 1년여간 머릿속으로 록스타가 되면 어떻게 살 것인가만 고민하던 나는 20살의 늦여름에 그를 만났다. 같이 음악으로 세상을 바꾸자던 친구 A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대단한 녀석들을 알게 되었다면서 나를 그곳으로 초대하였다.


한낮의 더위를 뚫고 재래시장을 가로지른다. 셔터를 올리고, 20개 남짓한 계단을 내려갔을 때, 그는 왼손으로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내가 실제로 본 왼손잡이 기타리스트는 그가 처음이었다. 그곳을 연습실이라고 말하기에 적합한지는 모르겠다. 기능적으로는 음악 연습실이 맞지만, 외형적으로는 그저 철물점에서 취급하는 고철덩어리들을 보관하는 창고에 지나지 않았다. 앰프의 볼륨을 조금만 높여도, 시장에 장 보러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아직 밴드의 이름을 정하지 못했어.


짧은 인사를 나눈 후 담배를 한대 꺼내 물면서, 그가 처음으로 꺼낸 말이다. 몇 가지를 후보로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하드록을 좋아하는 20살 대한민국 남성이 생각할 수 있는 밴드의 이름은 중학교 2학년의 수준과 그리 다르지 않음을 그때 확인했다.


네 명이 내뿜는 담배연기가 지하실을 채웠다. 음악으로 혁명을 꿈꾸는 네 명의 20살 남자들이 나눌만한 대화의 주제는, 많지 않았다. 스마트폰과 스포티파이가 없던 그때, 우리들은 서로의 가방을 열었다. 각자가 가지고 다니는 CD들을 꺼내 들고 일종의 품평회를 열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품평회는 아니었던 것 같다. 가치 판단은 빠져 있었으니까.


CD 몇 장을 서로 주고받은 후, 며칠 뒤에 다시 여기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


밤 9시가 넘었고, 나는 지하철을 타기 전 담배를 한 갑 더 샀다.


지하철역 앞에서 잠시 멈춰 섰다. 그리고 뒤로 돌아 잠시 내가 걸었던 길을 복기했다.

다시 올 때 길을 잃지 않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