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아직 주 5일제가 시작되기도 전이었지만, 우리들은 주 5일만 그곳에 모였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어느 때부턴가 그렇게 되었다.


내가 발을 디디기 전에는 주 2회 모인다고 했다. 하지만 내가 셔터를 올리던 날은 모이기로 약속한 요일이 아니었다. 친구 A가 오디션 겸 소개 삼아 왼손잡이 그리고 드러머 녀석을 불러낸 날이었다. 기타리스트는 연습실에서 제일 먼 곳에서 살았다. 환승까지 포함해서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이후에 우리들은 이 시간을 같이 자주 보냈다.


나와 베이스를 치는 친구 A는 대학교 같은 과였다.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에서 록을 듣는 사람들은 자연스레 아웃사이더가 되었다가, 결국 어떻게든 만나게 되는 것 같다.


기타쟁이-우리는 이렇게 불렀다-와 드러머 녀석은 중학교 때부터 친구였다. 왼손잡이는 원래 록을 들었지만, 드러머 녀석은 고등학교 관악부 출신이었다. 우리는 그를 한동안 근본이 없는 북쟁이라고 놀려댔다.


넷 다 빠른 년생이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같은 편이 되었다.


서로를 조금 알게 된 그날 우리는 바로 주 3회 모이기로 했다.


주 3회가 주 5회가 되는 것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연습실은 거의 매일 열려 있었고, 우리도 거의 매일 있었다. 대부분 음악 이야기를 하거나, 가끔은 쓸데없는 실험을 하며 시간을 보냈다. 담배로 기생충을 죽일 수 있는지 같은 것들. 관악부 특유의 자세가 남아 있던 드러머 녀석은 눈치가 없었는지, 한 달은 걸려서야 주 5회 출근하기 시작했다. 가끔 그가 일하던 곳에서 싸 온 치킨 부스러기들과 함께. 아직 20살들에게 단백질은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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