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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는 끝나도 사람은 남는다.

마음에 남은 얼굴들

by 더웨이

실적과 파일 보다, 마음속에 남은 얼굴들

25년간 글로벌 기업의 한국법인 대표로 일했다. 해양 프로젝트를 개발하고 수주하며 계약하는 것이 주 업무였다. 국내외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노트북에 수백 개 폴더와 이메일을 후임자에게 인수 인계했다. 지금 내 마음에 선명하게 남은 것은 실적과 파일이 아니다. 함께 일한 사람들의 얼굴이다.


첫 프로젝트, 첫 인연

2002년, 한국의 남해안 항만공사. 글로벌 기업과 국내 대기업의 첫 계약이었다. 국제입찰로 문서 작업과 협상 과정에서 언어문화의 차이를 절실하게 경험했다. 번역은 반역이다라는 말같이 영어 해석의 이견은 곳곳에서 나타났다. 그러나 계약서 작성은 완료되었고 첫 공사는 금액과 공사기간의 실적만 생각했다.


프로젝트를 빨리 끝내고 성과를 내는 것이 최우선이었다. 그런데 유럽 출신 동료 H는 다음 프로젝트를 염두에 두고 고객을 배려하며 협상을 진행했다. 그 덕분에 첫 계약 후에 순차적으로 3개의 추가 프로젝트를 계약했고, 그와의 인연은 26년째 이어지고 있다.


H는 해양공학 학자이며 철저한 분석가였다. 공과 사를 확실히 구분했다. 개인적으로는 깊은 이야기를 나누며 따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비즈니스에서는 냉철했다. 한국인의 정서와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는 아시아 현지에서 결혼하여 가정을 꾸몄으며 나는 그 인생의 중요한 순간을 함께 축하했다.


현장에서 맺은 진짜 인연들

몇 년 후 H는 가족 문제로 어려운 시기를 겪었고, 자녀 양육을 책임지는 과정에서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일과 인생, 가족과 친구에 대하여 진솔하게 얘기했다. 사업 파트너에서 서로 인생의 조언자가 되었다.


한국의 남해안 항만 프로젝트에서 만난 또 다른 인물은 현장 관리자 K이었다. 유럽 출신의 활기찬 청년이었다. 현장 경험은 많지 않았지만 포용하는 리더십은 뛰어났다. 한국 정서를 이해하려 노력했으며, 한국의 음주 문화는 힘들어했다. 추가 프로젝트 계약서 사인 후 축하 세리머니가 있었다. 고객이 현장 관리자 K에게 "축하합니다"며 한국식으로 여러 번 술잔을 권했다. K는 거절하지 못하고 마셨다.


그는 호텔로 돌아간 후 과음으로 몸이 좋지 않아 고생했고 나는 그 상황을 도왔다. 다음 날 그의 당황한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일 이후 K는 술을 조심하게 되었다. 우리는 만날 때마다 그 얘기를 하며 놀렸다. "오늘은 위스키 한 잔 어때?" 하면 그는 손사래를 쳤다. 잊지 못할 추억이 되었다.


K와의 인연은 한국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중요한 중동 항만 건설 관리자로 임명되었다. 나는 몇 년 후 중동 방문할 기회가 생겼고 그는 현장을 안내해 주었다. 사막 가운데 있는 항만 건설 현장이었다. 사막을 굴착하여 부두와 항로를 건설하고, 최종 공정으로 바닷물을 육지로 끌어와 부두가 된다고 했다. 일반적으로 바닷가에 부두를 만든다. 사막 가운데 항만 건설은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현장 방문 후 집으로 초대해 가족들과 저녁 식사도 함께했다. 이국 땅에서 만난 옛 인연의 환대가 따뜻했다.


감성적인 엔지니어 M

해양 분야 개척자 M를 만난 것은 2009년 해상 풍력 기술이 한국에 도입되던 시기였다. 그는 회사를 대표하여 대외적인 프레젠테이션을 담당했다. 신기술 내용을 쉽고 감성적으로 전달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2018년 국내 대기업 창립 50주년 행사에 초청되어 해상 풍력에 소요되는 강철재료 설명회에서 그의 발표는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복잡한 해상 풍력 기술을 청중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설명했다.


M의 또 다른 모습을 본 것은 한국의 지방출장 중이었다. 회의를 마치고 서울행 기차를 타려고 여수역에 갔다. 역 대합실에 피아노가 하나 놓여 있었다. 그는 주저 없이 피아노 앞에 앉았다. 클래식 곡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쇼팽의 야상곡이었다. 역을 지나던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그의 연주에 자연스럽게 박수가 터져 나왔다.


나는 그의 색다른 모습에 놀랐다. 평소 기술적 대화만 나누던 엔지니어가 이렇게 감성적인 면이 있는 줄 몰랐다. 연주를 마친 후 그는 "음악은 언어보다 더 깊이 소통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이 인상 깊었다. 그는 고객과의 대화에서도 이런 감성적 접근을 사용했다. 기술적인 설명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성적인 대화를 했다.


M은 나에게 해상 풍력 분야의 스승이었다. 신기술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면 언제든 물어볼 수 있었다. 그는 상세한 답변과 함께 관련 신기술 데이터를 제공해 주었다. 대형 중량 풍력 터빈과 하부 구조물 설치부터 해저 케이블 설치 기술까지, 그는 스케치하며 어려운 내용도 쉽게 설명했다. 따뜻하고 늘 베풀려고 하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다. 참 고마운 사람이었다.


코트가 전한 따뜻한 마음

2014년 12월 유럽에서 열린 비즈니스 개발자의 날에서 특별한 만남이 있었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비즈니스 개발 담당자들이 본사에 모여 최신 기술과 회사 정책을 학습하는 행사였다. 그곳에서 남미 매니저 E를 만났다.

이벤트를 마친 후 룩셈부르크의 세인트 마틴 와인 지하 동굴(Caves St. Martin (established in 1912, old underground wine caves)을 방문했다. 100년 넘는 와인 지하 동굴이었다. 1km 길이의 동굴은 와인 저장과 숙성에 최적의 장소라고 했다.


12월 초, 당시 나는 감기 기운이 있었고, 와인 동굴 내부는 예상보다 추웠다. 나는 몸을 웅크리고 추위를 참으며 견디고 있었다. 그때 E가 다가왔다. 말없이 자신의 코트를 벗어 내게 건넸다.


나는 깜짝 놀랐다. 내가 추워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자연스럽게 도움을 준 것이었다. 처음 만난 사이였는데도 그런 배려를 보였다. 진심으로 고마웠다. 그의 따뜻한 마음을 잊을 수 없었다.


아시아 프로젝트에서 또 다른 유럽 출신 동료 T를 만났다. 그는 동남아 지역 프로젝트 개발 매니저였다. 매우 차분하고 섬세했으며 상대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었다. 복잡한 기술적 내용도 쉽게 풀어서 상대방을 이해시켰다. T의 특징은 네 가지 색깔 볼펜을 사용하는 것이었다. 빨강, 파랑, 초록, 보라색. 각각의 색깔로 다른 내용을 구분해서 설명했다. 시각적으로 이해하기 쉬웠다.


또한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깊었다. 회의에서도 다른 사람의 의견을 먼저 들었다.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지 않았다. 베트남 출장 중 인상 깊은 일이 있었다. 그는 유럽에서, 나는 한국에서 출발해서 호찌민에서 만나기로 했다. 시니어 매니저는 일반적으로 비즈니스 클래스를 사용한다.


그런데 내게 1등석 티켓이 제공되었다.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예산 초과가 아닌지 걱정되었다. T에게 문의했더니 "비즈니스 좌석이 만석이라 그렇게 했다"라고 했다. 그의 배려로 처음으로 1등석을 이용하게 되었다.


떠나도 이어지는 것들

아시아 지역 매니저 B는 협상의 전문가였다. 본사는 동양인들과 갈등 문제에 대하여 그에게 협상을 맡겼다. 위기일 때 그의 능력이 나타났다. 한 프로젝트에서 고객과 갈등이 발생했다. 예상치 못한 현장 문제로 설계 변경 조건이 분명 하지만 상대 고객은 인정하지 않았다. 고객은 기간 연장과 함께 추가 물량으로 보상한다고 했다.


누구나 합리적이라고 동의할 수 있는 조건이었다. 그러나 B는 설계 변경 조건을 우선 인정하고 추가 프로젝트를 협상하자고 했다. 협상은 한 달이 걸렸으며 마침내 변경 조건을 마무리하고 B는 추가 물량을 포기하고 선박을 철수시켰다. 그의 판단은 냉철했으며 협상의 전문가였다.


현장 방문하다 우리가 탄 차는 임시 제방 가운데 막힌 곳을 만났다. 좁은 길을 후진하여 빠져나와야 했다. 나는 운전하고 그가 내려서 뒤에서 손으로 신호했다. 조금만 벗어나도 차는 바다로 추락한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그러나 그는 침착하게 후진을 유도했고 나는 그 제방을 무사히 빠져나왔다. 그의 침착함은 잊을 수 없다.


프로젝트가 끝나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각자 위치로 돌아간다. 하지만 사람과의 인연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이메일로, 전화로, 그들이 한국에 출장 올 때 관계를 이어갔다.


H는 벨기에로 돌아간 후에도 연락을 하고 지낸다. 새로운 생활 소식과 가족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K는 중동 프로젝트를 마치고 본사에서 글로벌 매니저가 되었다. 페이스북에서 그의 활동을 지켜보고 있다. 세 아들도 많이 컸다. 여전히 "위스키는 안 마시느냐?"며 유머를 한다.


E과는 떨어진 후에도 남미 시장 정보를 교환했다. 와인 지하 동굴에서 코트를 건네던 그 따뜻한 배려가 지속적인 관계의 바탕이 되었다.


T는 베트남 프로젝트 성공적으로 완료한 후 해상 풍력 개발 부서로 이동했다. 유럽에서 해상 풍력 프로젝트가 급성장하던 시기였다. 그의 온유한 성품과 칼라 펜으로 설명하며 섬세함으로 고객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결국 이사로 승진하여 유럽 해상 풍력 분야의 권위자가 되었다.


M는 해상 풍력 행사 때마다 회사를 대표하며 설명회를 주관한다. 그의 감성적 접근법과 피아노 연주 같은 예술적 감각이 기술 발표에서 독특한 매력을 발휘했다. 그는 여전히 후배들에게 아낌없이 지식을 전수하고 있다. 그의 온정과 베푸는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한국의 고객들과 인연도 계속되고 있다. 그들이 회사를 옮겨도 은퇴해도 관계는 계속되었다. 개인적인 정보를 공유하고 집안의 경조사를 알리며 지내는 사이가 됐다. 일로 만난 사이지만 친구가 되었다.


프로젝트는 준공되면 역사가 되고 모든 서류는 파일로 이관된다.

사람과의 관계는 마음에 새겨진다. 25년 경력을 돌아보면 가장 큰 자산은 인적 네트워크다. 마음이 통하는 동료들과 일하며 성공할 수 있었다. 글로벌 기업에서 만난 외국인들은 각자의 특징이 있었다. 역사와 문화적 차이가 있었지만 성실함과 배려심은 국경을 초월했다.


상대방을 인격적으로 존중하는 마음이 진정한 관계의 기초가 되었다. 성과는 기록되지만 사람은 마음에 남는다. 프로젝트의 성공 여부는 시간이 지나면 잊힌다. 하지만 함께 일했던 동료들의 기억은 오래간다. 결국 일의 성과는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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