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버팀목이 필요해요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들

by The Way

삶은 때때로 우리를 갑작스럽게 실망시킨다. 사랑하던 사람, 반려 동물, 알뜰히 돌보던 것들이 허망하게 사라질 때, 우리 마음도 함께 무너져 내린다. 어느 날, 뒷마당에서 파프리카 한 줄기가 꺾어져 있었다.


손녀의 자연 학습을 위하여 사위가 정성스레 심어놓은 소중한 모종이었다. 햇볕에 푸르게 빛나던 파프리카는 한순간 다람쥐의 습격으로 뿌리가 뽑히고 줄기가 부러진 처참한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살피며 살려보려 애썼지만, 오히려 손끝이 미끄러지며 옆의 멀쩡한 줄기마저 꺾어버리고 말았다. 그 순간의 당혹스러움과 자책감이 밀려왔다.


잘려진 줄기의 단면을 바라보며, 이대로 하나의 생명이 죽어간다는 현실이 허전 했다. 나의 순간적 실수로 생명을 앗아간다는 사실이 더욱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하지만 문득, 줄기를 접목하면 살릴 수 있다는 희미한 기억이 떠올랐다. 나는 꺾어진 줄기의 단면을 조심스럽게 맞추고, 작은 나무 막대기로 버팀목을 세워 부드럽게 묶고 물을 주었다.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햇빛 아래 시간이 천천히 흘러가는 동안, 파프리카 잎은 놀랍게도 푸르름을 잃지 않았다.


꺾어진 줄기 속으로 생명의 물길이 흘러가는 것이 느껴졌다. 생명이란 놀라운 회복력을 지니고 있으며, 그 회복은 작은 버팀목과 기다림으로 시작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 작은 줄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살아났다고 푸르름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인생은 복잡계 소용돌이 앞에서 흔들리는 순간이 있다. 천하장사나 강한 멘탈 소유자라도 무너질 때가 있으며 버팀목이 필요한 순간은 온다. 버팀목 없이 설 수 있는 사람은 없고, 모두에게 버팀목이 필요하다.


커다란 기둥이 아니어도 좋다. 그저 가느다란 나무 가지나 막대기라도 충분하다. 그것은 가족의 말없는 손길일 수도, 친구의 작은 위로일 수도, 때로는 스쳐 지나가는 낯선 이의 따뜻한 한마디일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손길들이 삶의 가장 절망적인 순간에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봤다.


얼마 전 SNS에서 남편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세상과 이별하여 절망에 빠진 한 여성의 글이 올라 왔다. 그녀는 “너무도 급작스럽고 잔인한 이별이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에 하루하루가 힘들고 어려웠다. 그저 눈물만 났다.” 라고 했다. 그녀는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이 절망을 읽은 독자들은 댓글 달았다. —"마음껏 슬퍼하세요, 혼자가 아니에요. 시간이 필요해요. 괜찮아 질 거예요. 저도 남편과 사별 했어요. 같이 소통해요"—이 모두 따스한 공감이 담긴 위로였다. 어쩌면 우리는 그렇게 서로에게 작지만 소박한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들이다.


파프리카는 버팀목에 기대어 다시금 푸르게 생명을 키우고 있다. 한 번 꺾였던 그 줄기에서 나는 생명의 놀라운 회복력을 목격했다. 사람 또한 그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인생의 길에서 우리는 수없이 많은 상처를 만나고, 때로는 꺾어지며 무너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 절망의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수 있게 해주는 힘, 그것이 바로 버팀목이며, 공감이고, 희망이다. 그들은 모두 그런 버팀목이 필요하다.


나는 작은 파프리카 줄기 하나를 바라보며 삶의 본질을 배운다. 꺾인 것은 고통이지만 끝이 아니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는 것을 깨 달았다.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버팀목이 되고,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 서 있는 존재들이 아닌가. 힘들지만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아름답고 소중한 일인지 새삼 깨닫는다.


세상에는 냉혹한 사람보다 여전히 따뜻한 사람들이 많다. 그들은 말없이 곁에 서서 함께 울고, 함께 웃어준다. 내가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했을 뿐, 언제나 가까이 있는 소중한 버팀목들이다. 삶에 실망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아주는 존재로 남을 것이다.


오늘도 햇살 아래 파프리카를 바라보며, 경험한 작은 버팀목과 생명의 기적을 마음 깊이 새긴다. 삶의 모든 길목에서 누군가의 버팀목이 되기를 소망하며, 영혼이 따스한 손길을 전하는 삶을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