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문화비축기지, 건설인의 눈으로 보다.
매봉산을 파낸 자리
2026년 3월, 지금도 중동 전쟁은 계속 되고 있다. 미국, 이스라엘과 이란의 싸움으로 유조선 항로인 호르무즈 해협이 막혔다. 유조선의 운항 중단으로 세계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다.
1973년, 4차 중동 전쟁이 터졌다. 석유가 무기가 되었다. 기름값이 네 배로 뛰었다. 대한민국은 공포에 휩싸였다. 정부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매봉산 중턱을 굴착했다. 1976년부터 1978년까지, 화강암 암반을 파내고 콘크리트 옹벽을 세우며, 철판으로 원통형 유류 탱크 5기를 만들었다. 최소 지름 15미터에서 최대 38미터. 높이 15미터. 아파트 5층 높이 구조물이다.
공식 사업명은 '서울시 민수용 석유비축시설 건설사업'. 국고보조금으로 건설하고, 한국석유공사에 무상 위탁했다. 탱크 5기에 6,907만 리터의 석유를 채웠다. 당시 서울 시민 725만명 한 달 치 사용량이다. 이곳은 1급 보안시설로 분류되었다. 사람들은 여기를 마포석유비축기지라 불렀다. 주소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41년간 아무도 그곳을 몰랐다.
건설 엔지니어가 본 것
이제 사람들은 이곳에서 공연을 보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다. 나는 건설 과정이 궁급 했다. 직경 38미터의 원통형 철구조물 탱크. 이것을 누가, 어떻게 만들었을까. 건설사의 이름도, 땀 흘린 기능공의 흔적도 기록 없이 모두 사라졌다. 그러나 현장의 여러 모습은 건설 과정을 말해준다.
화강암 산을 발파하여 5개 원형 탱크 공간을 확보했다. T1 파빌리온의 유리벽 너머 거친 암벽 절개면이 그 흔적이다. 두꺼운 콘크리트 옹벽과 누출 경우를 대비한 방유제를 세웠다. 강판 바닥을 맞대기 용접으로 이었다.
대형 벤딩머신으로 곡률 반경 19미터에 맞춰 철판을 구부리고, 아래부터 단을 쌓아 올리며 원주 용접과 종방향 용접을 교차했다. 매 단마다 비파괴 검사를 했다. 용접 결함은 누유이며 대재난으로 연결된다. 난지도 쓰레기장 불꽃도 이곳을 위협했다. 지붕에 소화액관을 달고, 마지막에 흙을 덮어 산을 복원했다.
나는 울산, 여수, 인천에서 이런 탱크 건설 현장를 봤다. 용접봉이 녹아드는 파란 불꽃, 차광 유리 너머 비드의 물결, 슬래그를 쳐내는 치핑 해머 소리. 같은 장소에서 다른 사람은 멋진 공간을 본다. 나는 그 공간을 만든 손과 땀을 본다.
용접선에서 누군가의 기량을 읽는다. 46년간 산업 현장에서 경험한 눈으로 보게 되는 것들이다. 2년에 걸친 대형 공사였으나 건설 시공사의 이름은 어디에도 없다. 1급 보안시설이라는 이유로, 만든 사람의 흔적까지 지워졌다.
토목이 만들고, 건축이 읽다
2000년 12월, 탱크가 비워졌다. 한일월드컵 경기장이 500미터 앞에 들어서면서 위험시설로 분류되어 폐쇄되었다. 10년 넘게 방치된 뒤, 2013년 시민 아이디어 공모가 열렸다.
설계는 RoA건축사사무소, 시공은 ㈜텍시빌. 총 470억 원이 투입되었다. 이 프로젝트에는 반전이 있다. 1976년의 비축기지는 토목 공사로 만들어졌다. 암반을 발파하고, 콘크리트를 타설 하고, 철구조물을 세웠다.
2017년의 문화비축기지는 건축 공사로 재생되었다. 토목이 건설한 것을 건축이 재탄생시킨 것이다. 건축가는 토목 공정의 역순으로 작업했다. 되메운 흙을 걷어내고, 암반과 옹벽을 노출시켰다. 산업화 시대 토목의 언어로 건설하고, 건축 언어로 재탄생 시켰다. 한 장소의 변천이 50년 한국 사회의 전환을 보여준다.
T1은 휘발유 탱크였다. 철판을 해체하고 유리 벽체와 지붕을 얹었다. 40년간 감싸고 있던 매봉산 암반이 유리 너머로 드러났다. T2는 경유 탱크였다. 2층구조로 상부는 야외무대, 하부는 200석 실내 공연장이 되었다. 콘크리트 옹벽이 천연 울림통 역할을 한다. T3는 유일하게 원형을 보존했다. 녹슨 철판, 철제 계단, 방유제까지 손대지 않았다. 서울 미래유산으로 지정되어 명패가 붙어있다.
T6는 새롭게 건설된 탱크다. T1과 T2에서 해체한 철판으로 새로 조립한 건축물이다. 해체된 과거가 새로운 벽이 되었다. '서울시 민수용 석유비축시설'은 '문화비축기지'가 되었다. 석유 대신 사람의 목소리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비축하는 곳이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안내자는 말했다. T4와 T5는 지금 개방하지 않고 있다고. T5는 건설 역사를 기록한 이야기관이었다. 건설 당시 사진, 직원들의 헬멧과 작업복이 전시되어 있었다. 건설사의 이름도, 기능공의 이름도 남지 않은 이 시설에서, 그나마 건설의 기억을 품고 있던 유일한 공간이었다.
2025년 민간 위탁 전환 이후 관람이 중단되었다. 보안과 상업적이라는 이유로 폐쇄되었다. 건설의 기억이 두 번 지워지고 있다. 산업 유산을 재조립 하면서, 정작 그 산업의 역사를 닫아버리는 것은 모순이다. 건설 역사는 유지되어야 한다. 기록하지 않으면 사라진다.
탱크 위에 서서
직경 38M, 높이 15M 원통 탱크를 만든 건설 기술자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그들의 이름은 어디에도 기록되지 않았다. 탱크만 남았다. 실체는 있지만 건설 역사 기록이 없어 안타까웠다. 건설인의 눈으로 역사를 보고 싶었다.
석유 냄새가 빠진 철판 탱크 외벽 사이로 바람이 분다. 기름이 채우던 공간을 이제 사람 목소리가 채운다. 이제 현직은 아니지만 건설의 그 시간을 글로 옮긴다. T6가 해체된 철판으로 새 건물을 만들었듯, 해체된 경험을 재조립하여 새로운 문장을 만드는 일이다.
매봉산 암반은 40년간 탱크를 감싸고 있었다. 유리벽 너머로 드러난 그 암반은, 시간이 쌓아놓은 역사다. 그 암반 위에, 이름 없는 건설인들의 공로가 한 문장으로 남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