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시절, 그 시간을 품다
선생님의 부고
지난 1월, 선생님의 부고를 받았다.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셨다. 인천 사범학교(현 교육대학)를 졸업하고 도시에서 가르칠 수 있었다. 그런데 선생님은 고향 섬으로 돌아오셨다. 젊은 교사가 작은 섬을 선택한 것은 고향의 후배들을 위한 희생이었다. 선생님은 고향 선배이자 스승이셨다.
고향 사람들 경조사에서 만날 때마다 덕담을 해 주셨다. “자네가 잘하고 있어서 고맙네."
그 한마디를 나는 수십 년 동안 가슴속에 담고 살았다. 직장생활에서 일하며 지칠 때, 해외 출장길 비행기 안에서, 은퇴 후 정적의 시간에도 그 말이 떠올랐다. 격려란 그런 것이다. 한 문장이 한 사람의 기를 수십 년간 살려줬다. 선생님은 그것을 아셨다. 작년 추석에도 통화했다. 목소리에 힘이 없으셨다. 그것이 마지막인 줄은 몰랐다.
59년 전의 서울
선생님과 나 사이에는 59년 된 특별한 추억이 하나 있다. 4월 15일 해병대 창립 기념일이다. 그날에 해병대 사령부에서 낙도 어린이들을 서울로 초청하는 행사가 있었다. 서해에 해병대가 주둔한 섬의 아이들에게 넓은 세상을 보여주겠다는 뜻이었다. 강화군과 옹진군의 19개 초중고학교였다. 선생님은 교사로, 나는 학생으로 여기에 초청 되었다. 배를 타고, 버스를 타고, 처음 밟아보는 아스팔트 거리였다.
섬 아이에게 서울은 다른 나라였다. 전차와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커다란 건물들, 사람들의 빠른 걸음. 중앙청 앞에 섰을 때의 그 압도감을 기억한다. 카메라 앞에서 움츠렸을 것이다. 선생님이 옆에서 챙겨 주셨다. 그 아이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그때 세상이 얼마나 넓고 자기 앞에 어떤 시간이 펼쳐질지 몰랐다.
두 장의 사진
문상하고 선생님 자녀들과 그때 이야기를 나눴다. 청와대, KBS 방송국, 동아출판사, 해태제과를 방문했던 기억, 중앙청 앞에서 사진을 찍던 순간. 그런데 내게는 사진이 한 장도 남아 있지 않았다. 59년이라는 시간 속에서 사라진 것이다. 선생님 유품에 혹시 있는지 여쭤봤다. 반갑게도 며칠 뒤 사진 두 장이 도착했다.
한 장은 중앙청 앞 흑백 사진이었다. 중앙청은 원래 조선총독부 청사로, 일제강점기의 통치기관 건물이었다. 일제의 잔재로 1995년 철거된 건물이다. 건물도 사라지고 사진 속 사람들도 대부분 흩어졌다. 그 단체사진 선생님 앞에 작은 아이 하나가 서 있었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렸다. 그 아이가 나였다. 59년이란 시간이 한 장의 사진 위에 서 있었다.
다른 한 장은 졸업 사진이었다. 앞줄에 선생님들이 앉아 계시고, 뒷줄에 학생들이 서 있었다. 25명. 남자 11명, 여자 14명. 시골 섬의 한 학년 전부였다.
얼굴들을 하나씩 기억해 냈다. 표정이 느껴졌다. 어떤 친구는 세상을 떠났다. 어떤 친구는 연락이 끊긴 지 오래다. 졸업 후 대부분 도시로 흩어졌다. 섬에 남은 아이는 몇 명 안 됐다.
단톡방이라는 고향
그래도 명절이면 고향에서 몇 명이 만났다. 안부를 묻고, 사는 얘기를 하고, 백사장에서 노래도 부르고 헤어졌다. 다음에 또 보자는 인사가 전부였다. 세월이 지나자 고향 땅을 찾던 발길도 뜸해졌다. 치열한 생존에 부대껴 연락도 못하고 살았다. 고향 집은 주인이 바꿨고 부모님도 돌아가셨다. 선착장에 내려도 반겨줄 사람이 없다. 이제는 단톡방이 고향이다.
단톡방의 인사는 늘 같다. "건강하자!" 그 네 글자에 모든 것이 들어 있다. 어디 아픈 데는 없는지, 오늘도 무사한지. 젊었을 때는 무엇을 하느냐가 중요했다. 무슨 직함을 달고 있느냐가 관심이었다. 지금은 ‘건강하냐?’가 먼저다. 대화의 화두가 건강이라는 것은, 우리가 오랜 세월을 살았다는 뜻이다.
가끔 옛 사진이 올라온다. 빛바랜 사진 한 장이 올라오면, 기억이 새롭게 밀려온다. 어릴 때 바닷가 고기 잡기, 해당화 모래 해변, 학교 측백나무, 운동장에서 뛰어놀던 추억. 한동안 아무도 말이 없다. 이모티콘 하나가 올라온다. 그것으로 충분하다. 같은 시간을 건너온 사람만이 나눌 수 있는 침묵이 있다. 그 침묵 안에 우리의 고향이 있다.
그 아이에게
선생님이 돌아가셨다. 친구들 중 3명도 하늘의 별이 됐다. 어떤 친구는 소식이 끊겼다. 단톡방에는 12명이 있다. 우리도 언젠가 자식들이 부고를 전할 것이다. 인생은 그렇게 흘러간다. 그 시간을 막을 수 없다.
그래서 오늘이 귀하다. 흑백 사진 속 그 아이가 60년을 걸어서 지금 여기 서 있다. 섬을 떠나 도시로, 직장으로, 바다 위로, 산을 넘고 파도를 넘었다. 누군가를 이끌었고, 누군가에게 이끌렸다. 승풍파랑의 길을 걸었다.
그 아이는 자기가 여기까지 올 줄 몰랐다. 중앙청 앞에서 어깨를 움츠렸던 그 아이는 거친 세파를 지났다. 검푸른 바다에 길을 내며 해상 풍력타워를 세우는 사람이 될 줄 몰랐다.
사진을 다시 봤다. 선생님이 하셨던 그 말씀이 다시 들려왔다. “자네가 잘하고 있어서 고맙네.” 이제는 그 말을 내가 나에게 말할 차례다. “너 수고 했어. 여기까지 잘해 왔어” 단톡방에 친구들에게도 “우리 모두 잘하고 여기까지 왔다”라고 말하고 싶다.
60년 전, 그 아이에게 부끄럽지 않은 하루를, 내일도 살아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