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함 한 장이 바꾼 항로
두 번의 악수
27년 전, 대기업 토목 사업부에서 일하고 있었다. 유럽 글로벌 회사의 마케팅 담당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항만 건설 시장 진출을 위한 미팅을 했다. 악수를 하고, 명함을 교환하고, 항만 건설 프로젝트에 대해 정보를 나눴다.
늘 있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명함 한 장이 내 인생 항로를 바꿨다. 글로벌 기업과 25년을 일 하게했다. 해양 토목 신기술, 해상풍력이라는 새로운 바다였다. 은퇴 후 에세이를 쓰는 지금의 삶도 한 장의 명함에서 시작됐다.
23년 전, 아프리카 선교 여행에서 우연히 기독 신문기자를 만났다. 여행을 같이하며 건강한 교회에 대하여 의견을 교환했다. 그는 헤어질 때 내게 칼럼을 써보라고 권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나, 겁도 없이 글을 썼다. 지금 읽으면 얼굴이 뜨거워지는 글이다.
그때 알았다. 글에는 위력이 있고, 영향이 있다는 것을. 그리고 한 줄 잘못 쓰면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글은 칼과 같았다. 요리도 하지만 손도 벤다. 그 서툰 칼럼들이 지금 에세이를 쓰는 씨앗이 되었다.
두 번 모두 운이었다. 그런데 정말 운이었을까?
10골을 넣어도
손흥민은 골을 넣을 때마다 "운이 좋았다"라고 말한다. 팀 동료들은 쟤 또 저런다고 웃는다. 팬들 사이에서는 '10골을 넣어도 운이 좋았다고 말할 사람'이라는 농담까지 한다. 언젠가 시즌 11호 골을 터뜨린 뒤에도 그는 카메라 앞에서 말했다. "난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수천 시간을 훈련한 사람이다. 어떤 각도라도 골을 넣을 수 있는 선수다. 그런 사람이 골을 넣고 운이라 말한다. 아무리 완벽한 슈팅이라도 골대를 맞고 나올 수 있다. 바람이 공의 궤적을 바꿀 수 있다. 30%의 기술이 완벽해도, 나머지 70%는 선수가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이다.
손흥민은 그것을 안다. 자신이 지배할 수 없는 영역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짜 겸손이다.
그리고 그 겸손이 다시 운을 부른다. 자신을 낮추는 사람 곁에 동료가 모인다. 동료가 모이면 더 좋은 패스가 온다. "운이 좋았다"는 말이 다시 운을 불러오는 순환이다.
워런 버핏의 고백
워런 버핏도 같았다. 2025년 마지막 주주서한에서 95세의 투자자는 자신의 성공을 "바보 같은 행운"이라 불렀다. 그는 "훌륭한 친구들로부터 더 나은 행동 방식을 배우는 행운을 얻었습니다"라고 썼다. 자산 1,500억 달러를 일군 사람의 마지막 고백이었다. 축구 선수와 투자자. 분야는 다르지만 정상에 선 사람들의 언어는 닮아 있었다.
뉴스 한 줄의 운
존 크롬볼츠 교수는 《Luck Is No Accident(한국 번역: 굿럭)》에서 성공한 사람의 80%가 우연한 만남을 통해 지금의 자리에 올랐다고 썼다. 사람만이 아니다. 작은 뉴스 한 줄도 운이 된다.
2008년 말, 우연히 진도-제주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 뉴스를 발견했다. 105km 해저 케이블 프로젝트였다. 여러 공정 중 깊은 수심의 케이블 보호만은 국내 업체가 할 수 없었다. 지적 호기심이 발동했다. 케이블 위를 돌로 덮는 특수선박 신기술 공법을 추적하여 찾아냈고, 설계하여 계약까지 이끌었다.
그렇다. 운이 좋았다. 그 뉴스를 그냥 지나치지 않은 호기심 덕이었다. 해양 토목 현장에서 쌓은 경험이 그 뉴스를 추적하게 만들었다. 관심있는 사람에게 우연은 기회가 된다.
보이지 않는 손길
왜 하필 그때, 그 사람을 만났을까? 왜 하필 그 순간, 그 뉴스가 눈에 들어왔을까? 누군가는 운이라 부르고, 누군가는 재수라고 부르고, 나는 이 정교한 타이밍을 '신의 섭리'라 부른다. 보이지 않는 손이 내 삶의 퍼즐 조각을 맞추고 있다. 씨앗을 심는 것은 나의 몫이지만, 비를 내리고 바람이 부는 것은 내 권한 밖의 일이다. 돌이켜보면 비는 늘 적당한 때에 내렸고, 바람도 필요한 때 불었다. 그것은 나의 설계가 아니었다.
운이 따르는 태도
운칠기삼, 운이 70%라면 나머지 30%는 기(技), 재주다. 그러나 세상 살아보니, 재주보다 먼저 오는 것들이 있었다. 온화한 성품. 겸손. 따뜻한 말. 남의 아픔에 걸음을 멈추는 연민. 이런 것들이 사람을 곁에 머물게 한다. 호기심이 있으니 뉴스 한 줄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마음으로 보면 우연히 스친 사람도 오래된 인연이 된다. 실패 앞에서 한 번 더 일어서면, 닫혔던 문 옆에 다른 문이 보인다. 대단한 비결이 아니다. 어색한 자리에 먼저 손을 내미는 것,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거는 것, 상대의 이야기를 끝까지 듣는 것. 돌이켜보면 인생을 바꾼 순간은 언제나 그렇게 사소했다.
손흥민이 골을 넣고 "운이 좋았다"라고 말했다. 나도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며 같은 말을 할 수 있다. 운이 좋았다. 신의 섭리가 있었다. 그러나 운은 자랑하는 사람 곁을 떠난다. 성찰하며 고개를 숙이는 사람 곁에 운이 머문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고개를 숙이고, 껍질을 깨며 나간다. 잘 안되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