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름때 묻은 윈치가 카페가 되었다

속초 칠성조선소, 버리지 않고 변신한 것들

by The Way

AI 추천 핫 플레이스

배는 오래 바다를 다니면 썩는다. 홍합과 따개비가 선저(船底)에 달라붙어 배를 갉아먹는다. 조선소는 그 것을 제거하고 수리하여 배의 수명을 늘리는 곳이다. 2026년 봄, 나는 그 조선소가 카페가 된 자리에 서 있었다.


속초 청초호 옆, 칠성조선소. AI가 추천한 핫플레이스가 '조선소'라는 사실이 더 흥미를 갖게 했다. 엑스포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180미터를 걸어 출입문에 닿았다.


섞이는 물, 흐르는 시간

청초호는 기묘한 물의 공간이다. 설악에서 내려온 민물과 동해의 짠물이 이곳에서 몸을 섞는다. 갇힌 물이면서 동시에 열린 물이다. 바다의 비린내와 산의 신선함이 공존한다. 설악대교 아래 수로가 열리고, 그 끝에 등대가 서 있다. 새벽이면 그 불빛 아래로 어선들이 나간다. 등대는 배의 위치를 알게 하고, 호수는 들어온 배들을 품는다.


상가대(上架臺), 배를 끌어올리는 힘

조선소 대지에 바다와 직접 연결된 5개의 슬립웨이(Slip Way)가 놓여 있다. 배를 바닷속에서 육지로 끌어올리는 경사 궤도다. 전동 모터와 연결된 윈치 드럼에 와이어가 감기고, 수십 톤의 배가 서서히 물 밖으로 올라온다. 중력과 마찰력을 이겨내는 와이어의 인장력. 그것이 조선소가 존재하는 물리적 실체다.


지금 그 육중한 윈치 장치는 카페 음료 주문대 옆에 놓여 있다. 기름때 찌든 윈치는 이제 세련된 장식으로 손님을 맞고 있었다. 과거의 동력이 미래의 영감이 될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나는 그 윈치 앞에서 오래도록 발길을 멈췄다.


인천, 군산, 통영, 목포, 부산 영도. 나는 1980년대 그 조선소들을 드나들었다. 선박을 관리하고 수리하는 엔지니어의 삶이었다. 고압 분사기 소리, 쇠망치의 '깡깡' 소리, 폐부까지 파고드는 선저 방청 페인트 냄새. 그 치열한 소음이 조선소의 맥박이었다.


안전제일(安全第一) 지워지지 않는 훈장

카페 내부에는 '안전제일'이라 적힌 노란 가로 빔이 그대로 있었다. 과거를 지우지 않고 현재로 가져온 그 선택이 정직하게 느껴졌다. 칠성 조선소는 1952년 문을 열었다.


창업주 최철봉 사장은 원산에서 피난 온 배 목수였다. 전쟁이 끝나면 고향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발길은 끝내 청초호에 묶였다. 실향민들은 이곳에서 배를 고치며 생계를 이어갔다. 삶의 터전이자 희망의 근거지였다.


가업은 3대를 걸쳐 손자 최윤성 대표에게 이어졌다. 2017년, 65년의 맥박이 멈췄다. 조선 불황의 파고는 높았다. 그러나 손자는 업(業)의 본질을 바꾸는 결단을 내렸다. 어선 대신 카누와 카약 같은 레저용 목선을 만들기 시작했다. 조상의 업을 버린 것이 아니라, 변신했다.

엔지니어의 눈으로 본 변신

나는 카페 창가에 앉아 청초호에 정박한 어선들을 보았다. 망치 소리는 음악이 되고, 페인트 냄새는 커피 향이 되었다. 사람들은 이곳에서 '호수 뷰'를 즐기지만, 나의 눈은 슬립웨이 (상가대)와 윈치, 녹슨 체인과 목침에 머물렀다.


무엇을 버리지 않고 다른 무엇이 되는 것. 이것은 용도 폐기가 아니라, 축적된 시간 위에 삶의 목적을 새롭게 설계한 구조의 전환이다. 수십 톤의 배를 끌어올리던 그 단단한 기초가, 이제는 수천 명의 대화를 이어주는 공간이 되었다.


인생의 후반전, 윈치를 돌리다

나는 산업화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했다. 국내 기업 21년, 외국 기업 25년. 그 46년의 시간이 지금 내 몸 안에 남아 있다. 조선소 기계를 보는 눈, 현장을 기억하는 냄새, 망치 소리를 듣던 귀. 이것들은 은퇴와 함께 폐기되어야 할 낡은 산물이 아니다.


칠성조선소의 윈치가 음료 주문대 옆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듯, 시니어의 경험도 다른 방식으로 쓰일 수 있다. 나는 책을 읽고 글을 쓴다. 컨설팅하고 코칭하며 젊은 세대에 나의 시간을 전수한다. 기능은 달라졌으나 본질은 같다.


궤도 위에서

출구를 나오며 “안전 제일” 그 현판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 칠성조선소의 윈치는 버려지지 않았다. 자리를 옮겼을 뿐이다. 배를 끌어올리던 쇠붙이가, 이제는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쓰임이 달라졌으나 본질은 같다. 무거운 것을 들어올리는 힘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슬립웨이의 궤도는 바다와 육지를 잇는다. 배는 슬립웨이(상가대) 위에서 바다로 부터 육상으로 신분이 바뀐다.


내가 걷는 궤도는 경험과 언어를 잇는 길이다. 엔지니어의 시간을 작가의 문장으로 끌어올리는 경사로다.

나는 아직 서툴지만 그 궤도 위에 있다.

우리의 윈치는 무엇인가? 녹슬었어도, 자리를 옮기면 다시 빛난다.


매거진의 이전글파킨슨병, 45일 기다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