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킨슨병, 45일 기다림

천국과 지옥의 말

by The Way

이상 신호

2025년 5월 어느 아침, 세수를 하다 귀가 멍해졌다. '윙.' 작은 울림이었다. 비행기에서 내릴 때 귀가 먹먹한, 그런 느낌이 며칠째 가시지 않았다. 동네 이비인후과 의사는 "청력이 조금 약하지만 별거 아니에요"라고 했다. 그 말을 믿었지만 이상 징후는 멈추지 않았다. 어지럼증이 왔다. 두통이 따라왔다.


6월 2일, 대학병원 가정의학과를 찾았다. 의사는 30여 분을 진찰했다. 바닥의 직선을 따라 걸으라 했다. 눈동자를 살폈다. 팔을 굽히고 폈다. 그리고 말했다. "파킨슨병 초기가 의심됩니다. 신경과 외래를 받아보세요."


파킨슨병.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단어였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진료실을 나와 신경과 접수 창구 앞에 섰다. 가장 빠른 날짜가 7월 14일이라고 했다. 의료진 파업 여파였다. 한 달 반. 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불안의 나날들

그날 이후, 파킨슨병이라는 단어가 머릿속에 박혔다. 책을 찾았다. 척추신경과 의사가 환자가 되어 쓴 파킨슨병 수기를 읽었다. 유튜브에서 의사 강의와 환자 증언을 찾아봤다. AI에게도 물었다. 정보는 쌓였다. 그러나 마음은 오히려 무거워졌다. 진단 결과가 난 것도 아닌데, 나는 이미 환자가 되어 있었다.


새벽 네 시, 눈이 떠졌다. 이불 속에서 오른손을 들어 올렸다. 미세한 떨림이 느껴지는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았다. 손을 내려놓고 천장을 봤다. 손이 떨리고, 몸이 굳고, 걸음이 느려지고, 마침내 의자에만 앉아 있는 내 모습이 떠올랐다. 쓰고 싶은 글이 남았다.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가야 할 길이 있었다. 그런데 파킨슨이라는 단어 앞에서 모든 것이 흔들렸다.


매일 거울 앞에 섰다. 손 떨림이 심해지지 않았는지, 걸음이 느려지지 않았는지 살폈다. 작은 증상 하나하나가 파킨슨병의 신호로 보였다. 밤에 잠이 오지 않았다. 아침이 상쾌하지 않았다. 머리가 무겁고 어깨가 결렸다. 한 달 반이라는 시간이 그렇게 길 수가 없었다.


전문가의 진단

7월 14일이 왔다. 신경과 진료실 문 앞에서 잠시 멈췄다. 의사의 명패에 '파킨슨병 전문가'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문을 열었다. 의사는 내 손을 보고, 걸음을 보고, 눈동자와 표정을 살폈다. 손 떨림의 양상, 근육의 경직도, 보행 상태, 인지 기능. 하나씩 꼼꼼하게 짚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차분하게 설명해 주는 의사였다. 가정의학과에서 파킨슨병 의심이라고 했다고 전했다. 의사가 말했다. "그분 오버했네요." 짧은 한마디였다. 그리고 이어진 말. "파킨슨병 아닙니다. 단순한 손 떨림이에요. 걱정하지 마세요."


해방과 감사

"감사합니다." 말이 저절로 나왔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눈시울이 뜨거웠다. 진료실을 나서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복도에서 만나는 사람들조차 축하한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달 반 만에 처음 맞은 신선한 기분이었다.


작은 손 떨림. 그건 청년 시절부터 있었다. 오래 알고 지낸 친구 같은 녀석이다. 스트레스가 있고 피곤하면 나타난다. 앞으로도 같이 지내면 된다. 추가 검사를 물었다. 필요 없다고 했다. PET CT 같은 특수 검사도 안 해도 된다고 했다.


말의 무게

의사의 말 한마디가 나를 환자로 만들었다. 또 다른 의사의 말 한마디가 나를 다시 일상으로 돌려보냈다. 파킨슨병 의심이라는 말 하나로 나는 한 달 반을 환자의 삶을 살았다. 밤잠을 잃었고, 미래가 불안 했으며, 삶이 피폐할 것이라는 생각까지 했다. 말 한마디의 무게가 그러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가 던지는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를 흔들 수 있다. 때로는 삶을 흔들 수도 있다. 말은 입에서 가볍게 떠나지만, 상대방의 가슴에는 오래 남는다.


낙심의 터널을 지나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나이 든다는 것은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는 일이다. 그리고 내가 건네는 말의 무게를 헤아리는 일이다.

병원을 나서며 걸음을 옮겼다. 햇살 아래, 다시 내 길 위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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