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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씨 Feb 25. 2022

상처의 꼬리

 별걸 다 기억한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하지만, 좋은 기억만큼이나 나쁜 기억을 지우지 못하고,  잊고 싶은 상처를 자주 되새기는 경향이 있었다.

인간에게 '상처'는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 애니메이션 <괴물의 아이>에서는 인간이었지만 괴물 스승을 만나 괴물로 성장한 아이가 나온다. 자신의 존재를 인식한 아이는 다시 인간이 되려고 하지만, 그의 스승인 괴물은 아이를 딱하게 여긴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어둠'이 있기 때문이다.


상처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는지 나름의 정의를 내려보자면 먼저, 지웠다고 생각했지만 금세 되살아나는 이상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고, 인간이 모두 다르듯이 상처의 깊이나 크기, 잔상 등 모두 다양한 형태를 띤다. 그리고 상처를 더 큰 상처로 만드는 데 일조하는 것은 바로 주변인들의 반응이다. 큰맘 먹고 상처를 고백한 이에게 겨우 그거 갖고 그래? 너보다 더한 사람도 산다, 별거 아니네. 하며 타인의 상처를 함부로 재단하는 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이다. 남들이 보기에 작은 상처도 본인에게는 삶을 억누를 만큼의 커다란 아픔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상처에 기다란 꼬리가 달려있는 이들도 있다. 지우고 싶은 상처의 꼬리를 붙잡고 케케묵은 더 옛날의 아픔이 딸려오기도 하고, 또 그것의 꼬리를 잡고 해묵은 그 시절의 열등감이나 수치심, 결핍 들이 줄줄이 따라온다. 그럴 때면 바다에서 사나운 폭풍을 만난 듯, 사막에서 이전보다 더 작열하는 태양을 만난 듯 마음과 몸을 주체할 수 없게 된다. 상처가, 기억이, 과거가 사람을 짓누를 때. 그리고 사람이 그 안에 머물 때 인생에서 가장 큰 고비를 경험하게 된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뭐든지 해주고 싶고, 해가 되는 것은 다 막아주고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걸 분명히 알고 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의 일이겠지만 내 아이도 언젠가 누군가에게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사실 역시 각오하고 있다. 그렇다면 아이보다 먼저, 세상을 살아본 엄마로서 훗날 상처를 대면하게 될 아이에게 어떤 말을 해줄 수 있을까.


상처를 인정하기


아픈 기억에 허덕이는 이들은 그 기억이 생성되기까지의 모든 원인들을 파악하고 분석한다. 내가 왜 그랬을까. 그러지 말걸. 하지 말걸. 후회와 자책을 반복하며 자기 자신을 몰아세운다. 상처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지만, 상처에서 멀어지는 데에는 전혀 효과가 없다. 나한테 일어난 일이고, 다시 돌아가도 그렇게 행동하고 말했을 거라며 그때의 나를 인정하는 것. 오히려 그것이 나은 방법인 것 같다.


상처에 머무르지 말기


상처는 이상한 힘이 있어서 인간의 마음에 허락도 없이 자신만의 공간을 만든다. 그리고 그곳을 함부로 넓혀가며 뻔뻔하게 인간의 마음 전체를 장악한다. 그 안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한 순간에 상처의 공간을 없앨 수는 없지만 그 안에 머무르지 않기 위해서 발버둥 쳐야 한다. 이따금씩 무언가에 홀린 듯 상처의 문 앞에 다다를지라도 돌아서야 한다. 스스로 상처에게서 멀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행동해야 한다.   


상처의 꼬리 자르기


하나의 상처는 수많은 객식구들을 거느린다. 원망과 미움, 자책, 수치심 등 상처를 통해 자생한 존재들이다. 그것들을 통해 또 다른 상처가 꼬리에 꼬리를 물며 생존할 수 있다. 그 꼬리를 잘라내야 한다. 상처가 또 다른 아픔을 생성하지 않도록 단호하게 절단해야 한다.


아이가 다섯 살이 되었다. 3월이면 유치원에 입학한다. 가족들과 지내던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침부터 오후까지 온통 타인에게 둘러싸이게 된다.  선생님이나 친구들의 한 마디 말이, 다른 무언가가 아이에게 불필요한 자극을 주는 것은 아닐까. 앞으로 자라면서 마주하게 될 사회에서 상처를 주는 누군가를 만나면 어쩌나.


이제 부모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아이를 보며 복잡한 심경을 감출 수 없는 나에게

아이 아빠의 말이 작은 안식처가 되었다.

어디에서 누군가를 만나 혹시라도 상처받을 지라도 그것을 버티고 이겨낼 수 있는 충분하고 풍성한 사랑을 우리가 주면 되는 거라고. 우리의 진심 어린 사랑과 기도를 받고 자란 아이라면, 상처에 매몰되지 않고, 머무르지 않고, 반드시 상처 위의 우뚝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볼 거라고.


그래, 부모가 할 일은 헤아릴 수 없는 사랑을 주는 것. 매 순간 기도하는 것.

그것뿐이다.  

상처받지 않기를 바라기보단, 그것을 버티고 이겨낼 만큼의 넘치는 사랑을 주는 것.

그것이 엄마의 존재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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