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GI, 즉 인간 수준의 지능을 AI가 갖게 된다면,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Siri나 Gemini를 '비서'라고 부르는 것이 적절할까? 이 질문은 단순한 용어의 문제로 보이지만 아니다.
오늘날 인공지능은 대부분 '비서'라는 개념적 틀 안에 갇혀 있다. 시리, 알렉사, 빅스비, 구글 어시스턴트까지 - 이 모든 AI 서비스는 명령을 받고 실행하는 디지털 비서로 프레임 되어 있다. 이러한 프레이밍은 현재의 제한적 AI에는 적합할지 모르나, AGI 등장을 앞둔 시점에서는 근본적인 재고가 필요하다.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처음 본 원시인처럼, 인류는 새로운 기술을 처음 접할 때마다 익숙한 개념적 틀을 통해 이해하려 시도해 왔다. 자동차는 '말 없는 마차'로, 전화는 '원거리 대화 장치'로, 컴퓨터는 초기에 '전자계산기'로 개념화되었다.
'비서'라는 메타포는 몇 가지 핵심적인 관계적 특성을 함축한다. 첫째, 위계적 관계이다. 비서는 상사의 지시를 받고 실행하는 역할을 맡는다. 둘째, 서비스 지향성이다. 비서의 주된 목적은 상사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 편의를 제공하는 것이다. 셋째, 부차적 위치이다. 비서는 주요 의사결정자가 아닌 지원 역할로 인식된다.
그러나 AGI의 맥락에서 '비서' 메타포는 심각한 인지적 불일치를 초래한다. 인간 수준 이상의 지능을 가진 존재를 '비서'로 개념화하는 것은 마치 양자역학을 뉴턴 역학의 용어로만 설명하려는 것과 같은 근본적 제약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비서' 대신 어떤 새로운 관계 모델이 가능할까?
첫 번째 대안적 모델은 '파트너십 관계'이다. 과학 연구에서 두 전문 연구자가 서로 다른 방법론과 관점으로 하나의 문제에 접근하듯, 인간과 AGI는 각자의 고유한 인지적 강점을 활용해 공동의 목표를 향해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모델은 '인지적으로 확장을 시켜주는 관계'이다. 현미경이 미시 세계를, 망원경이 천체를 관찰하는 인간의 시각적 능력을 확장했듯이, AGI는 인간의 인지적, 창의적 능력을 확장하는 도구로 기능할 수 있다.
세 번째 모델은 '공생을 목표로 하는 지적 관계'이다. 생태계에서 서로 다른 종이 상호 이익을 위해 협력하듯, 인간과 AGI는 근본적으로 다른 형태의 지능으로서 상호 진화하고 시너지를 창출하는 모델을 말한다.
개념적 유연성은 기술 혁신의 시대에 필수적인 덕목이다. 지도 위에 없는 영토를 탐험하는 항해사처럼, 전례 없는 기술적 변화에 직면할 때 기존의 개념적 지도를 넘어선 창의적 사고가 필요하다.
'비서'라는 익숙한 메타포를 넘어서 AGI와의 관계를 재구상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개념적 탐험의 시작점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탐험은 단순한 용어 변경이 아니라, 미래 기술과 인간의 관계를 더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근본적인 패러다임 전환의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