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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성과평가 시즌, 그리고 승진

by 마그리뜨

성과평가 시즌이 다가오면 매니저가 피어 피드백을 받을 10명 정도의 스태프 명단을 요청한다. 그들에게 나에 대한 질문지를 보내 답변을 취합한 뒤, 익명의 피드백과 본인의 피드백을 함께 공유한다. 피드백 답변지에 대해 나와 직접 논의하기 전에 매니저가 먼저 답변을 정리해 이메일로 보내주는데 이 이메일을 받을 때마다 그렇게 마음이 부담스럽고 두근거릴 수가 없다.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막상 열어보면 대부분 기분이 좋아지는 좋은 이야기들이고, 부족한 점을 지적하더라도 마음에 스크래치 갈 정도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이메일이 오자마자 바로 열어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하루정도 마음의 방패를 단단히 세운 후 조심스럽게 열어본다.


질문지에는 이런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1. 올해 이 직원의 성과 기여에서 가장 높이 평가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그들이 당신의 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도 고려해 주세요

2. 당신과의 업무 관계에서 성과를 향상하기 위해 이 직원이 더 잘하거나 다르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나의 취약한 점은 때때로 청중의 눈높이를 고려하지 않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한다는 것이다. 이는 처음 받는 피드백이 아닌 만큼 앞으로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부분이다. 테크니컬 한 업무를 담당하다 보니 마케팅이나 세일즈 같은 다른 부서와 협업 시 내 머릿속에 테크니컬 한 부분에 늘어놓고 있는 경우가 있었던 것 같은데 그들에게 그 이야기가 의미가 있을지, 그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될지에 대해 조금 더 생각해 봐야겠다고 느낀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역지사지의 자세가 중요한데, 이 부분은 참 어렵다.


그에 반해 나의 강점은 관계에 능해 네트워크를 활용해 솔루션 찾기를 잘하고, 전문성에 강하고, 체계적이고, 디테일에 강하다는 점이라고 하는데 이 부분이 아주 흥미롭다. 나는 스스로 치밀함과 거리가 먼 데다가 디테일에 강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척을 잘해야겠다.


이번 성과평가를 위해 매니저를 만나러 가면서 약간 부담스러운 기분이 들었다. 작년 목표 중에 만족스럽게 달성하지 못한 성과 항목이 있었기 때문이기도 했고, 시간이 지나면서 관찰한 결과 매니저의 최애는 따로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현재 회사에서 딱 3년을 채우고 나니 스멀스멀 이직의 생각이 찾아오기도 했다. 시장에서 나의 가치를 확인하고 이력서를 업데이트하는 것은 늘 해야 할 일이지만, 만족도가 컸던 이 회사를 들어온 후 이력서를 업데이트를 잊고 살았다. 3년 만에 chatgpt의 도움을 받아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테스팅해볼 겸 경쟁사에 지원했더니 바로 다음날 연락이 와서 인터뷰를 했던 일도 있었다. 실제로 한 달을 넘는 시간을 걸쳐 인사팀과 한번, 팀 매니저 디렉터와 한번, 동료들이 될 사람이 3명과 3차 인터뷰가 이어졌다. 두 단계나 타이틀을 점프할 수 있는 기회와 높은 베이스 연봉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인터뷰를 하며 행복의 회로를 돌렸지만 복잡한 감정이 들었다. 일단 현재 회사에서의 생활이 즐거웠다. 죽는다면 시애틀에 묻히고 싶다는 농담을 할 만큼 시애틀을 사랑했다. 하지만 지금의 타이틀과 연봉은 맘에 드는 것과는 거리가 있었다. 그래도 이사를 가게 되면 어떨까, 집을 살 수도 있을 거 같고, 조금 더 여유로운 삶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은 생각을 하며 마음을 다스리고 있었다. 인터뷰 프로세스를 진행하면서 현재 회사에 집착을 내려놓고, 변화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스스로를 설득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연말 마지막 팀 인터뷰 후 3차까지 진행했던 회사에서 고스팅을 당했다. 한번 팔로업을 했고 답변 주겠다는 답신도 받았는데 그들은 끝끝내 답을 주지 않았다. 이름만 대면 알 만한 큰 회사인데 이런 태도는 실망스러웠다.


언제는 편해질까, 싶은 매니저와 성과평가 미팅을 가졌다. 레이팅을 먼저 들을래, 아님 제일 마지막에 들을래, 해서 먼저 들었다. 자기와 피어가 생각하는 너의 장점은 이것이고, 단점은 이런 것이며, 단점은 이런 식으로 향상해 보면 어떨까에 대해 대화를 했다. 내 회사는 성과를 what과 how 두 가지 기준으로 나눠 평가하는데 각각 improvement needed, successful, exceptional을 받을 수 있다. exceptional은 회사 다니면서 한번 받아봤는데, 공식적으로는 큰 팀 내에서도 몇 명 안 준다고 이야기를 하긴 한다. exceptional 받으면 보너스랑 연봉 멀티플라이어가 커지고 successful은 eligible 한 보너스와 연봉 인상을 100퍼센트 받을 수 있고, improvement needed가 나오면 보너스 0에 월급 동결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받는 successful/successful 레이팅을 받고, 2024년 성과평가를 마무리하며 매니저가 레이팅보다 더 좋은 소식이 있다고 했다. 무슨 일일까 했더니, 근 1년 동안 나를 테스트해 왔다며, 그 테스트를 통과한 것을 축하한다며, 승진 소식을 전했다. 입사한 후로 승진하고 싶어요를 어필해 온 지 3년 만에 일이었다. 얼굴에 기분 좋은 웃음이 걸렸다. 매니저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인사팀과 모든 협의가 끝낸 상태라며 새로운 포지션과 연봉이 담긴 오퍼레터를 줄 테니 사인하면 새 월급으로 적용이 될 거라는 말로 미팅이 마무리가 되었다. 바로 다음 날 금요일 아침, 매니저에게 오퍼레터가 이미 날아와 있었으나 기대했던 인상 폭과는 거리가 멀었다. 승진하면 최소 15퍼센트는 올려줄 줄 알았는데, 그가 채 되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내 매니저는 회사의 입장으로 매니징을 참 잘하는 사람인데 오퍼레터 관련 미팅에서 그는 내부 승진 시 연봉의 협상 여지가 없다는 말을 함께 전했다. 하지만 회사에서 제시하는 대로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우는 아이 떡 하나 더 준다고, 징징대지 않으면 절대로 떡은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연봉 협상은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들 하지만, 나는 무논리로 매니저한테 "그냥" 돈 좀 더 달라고 했다. 인상폭이 생각보다 너무 적은데, “당신의 권한으로 어떻게 연봉 좀 더 올려줄 수 없을까요"라는 식으로 물어봤더니 인사과에 한번 더 물어봐는 주겠다며, 그런데 큰 기대는 하지 말라고 하더니, 내가 달라는 만큼 다 주지도 않고 반에서 만나주지도 않았지만 물어보지 않았으면 받지 못했을 2천 불을 더 받아낸 것으로 일단은 만족하기로 했다.


참 별거 아닌데 타이틀에 괜히 집착하고 살았나 싶기도 하고, 외국어로 밥 벌어먹고사는 나를 수고했다고 토닥토닥해주고 싶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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