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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Nov 05. 2024

14년을 함께한 나의 오래된 자동차를 보내며


바야흐로 14년 전, 자동차가 없으면 발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던 텍사스에서 뚜벅이로 몇 년을 버틴 후,

실험실에서 일을 시작하고 근로 장학생으로 학비를 면제받게 되면서 엄마 아빠에게 거금 12,000불을 받아 지인의 지인의 중고차를 사게 되었다. 2005년식 혼다 어코드. 이제는 19년이나 도로를 달린 오래된 차다.


미국에 가족 없이 혼자 사는 유학생이니 차를 사는 걸 도와줄 부모님도 없고, 딜러쉽에 가서 가격 협상을 해가며 차를 사겠다는 생각도 너무 부담스럽고, 차를 어떻게 사야 하는지를 모르겠지만 차는 필요한데 어느 날 지인이 본인 지인이 귀국을 하며 어코드를 팔고싶어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다른 차량에 대한 선택지란 없었다. 이 차를 사거나, 뚜벅이로 계속 지내던가였다. 가족과 텍사스에서 함께 지냈던 1년, 엄마도 혼다 어코드를 몰았는데 엄마가 몰아봤다는 차라 심리적으로 가깝다는 이유로 엄마는 이 차가 인연이라며, 이 차를 사라고 했다. 그래서 이 차는 내 차가 됐다.


그때 차마 몰랐던 사실은 내가 이 차를 2011년부터 2024년까지, 장장 14년을 몰게 될 거라는 것이었다. 텍사스를 걸쳐서, 캘리포니아에 갔다가, 텍사스로 다시 돌아와서, 워싱턴으로 진출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 많은 곳을 함께했다. 그때는 대학생이 몰기에는 꽤 럭셔리한 차였는데 지금 내 차는 길거리에 다니는 어떤 차보다 똥차로는 자신 있는 차가 되었다. 그래도 난 내 차를 사랑했다. 그가 도로에서 멈춰버릴 때까지 타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만약에 사고가 나면 에어백이 제대로 터지기나 할까, 하는 안전에 대한 의구심은 간간이 들었지만 말이다.


12,000불에 차를 샀고, 새 차를 사기 위해 트레이드인을 하며 1,800불을 받았으니 대략 만불의 비용으로 14년을 탄 꼴로, 일 년에 대략 차값으로 800불이 채 들지 않은 고맙고 경제적인 차다. 나의 대학생 시절과 30대를 함께한 소중하고 고마운 차. 물론 연식이 올라가면서 여기저기 수술을 해줘야 했지만 날씨가 마일드한 워싱턴으로 이사 와서는 고장도 없이 정말 튼튼하게 잘 버텨줬다.


엔진 소리는 아직 멀쩡한데 언제부턴가 에어 컴프레서, 알터네이터, 워터펌프, 벨트가 돌아가는 곳 근처에서 신경에 거슬리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수리점에 가서 진단을 받고 부품을 하나 바꿨는데도 소리는 여전했다. 기능에 문제가 있는건 아니었던 듯했지만 신경이 쓰였고 이러다 차가 서면 어쩌지 하는 걱정도 들기도 했다. 다른 곳 수술을 더 해서 문제 해결 시도를 해볼수도 있었지만 수리점에서도 부품을 바꿔보기 전까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확신이 크지 않아 그냥 조심조심 타면서 새 차를 한 달쯤 열심히 구경하던 중, 패스하기엔 너무 매력적인 딜이 나를 찾아왔다. 그렇게 오래 함께한 친구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게 되었다. 내년에 20살이 되는 이 차는 아직 25만 킬로밖에 뛰지 않았는데, 햇수로 20년을 채울 때까지 나와 함께할 줄 알았는데, 단풍이 아름답게 물들어가는 2024년 가을, 이렇게 갑작스럽게 마지막 일주일, 이별의 카운트다운에 들어간다.


오래 함께한 차를 떠나보낼 때면 그동안 함께한 추억이 주마등같이 스쳐가며 아쉬움에 눈물이 날 것만 같지만 새 차를 받고 몰고 나오는 순간 그 모든 것이 잊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오래된 내 차를 보내주는 날, 새로운 차를 업어오는 날, 나는 어떤 마음일까? 할부인생을 시작하며 두려운 마음 반, 새 차에 기대되는 마음 반이다.


나의 오래된 자동차 1편: https://brunch.co.kr/@investo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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