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14살 중학생
내가 업어오던 당시 이미 6살이었던 나의 자동차는 내년이면 14살이 된다. 나의 사랑하는 2005년식 혼다 어코드. 대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약간 과분한 사이즈였던 세단.
나의 오래된 자동차를 아는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주로 전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 차는 바꿨냐는 말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직도 했고, 전보다 돈도 더 많이 버는데 왜 아직도 궁상떠는 거야, 라는 뉘앙스를 풍기면서. 전 주인이 한 틴팅이 잘못되었는지 뒷 유리창에 버블이 생겼는데 그걸 보고 "극혐" 이라던 친구도 있었다.
남에게 보이는 것이 중요한 한국 사람들의 특성은 자동차 부심에서 꽤 유난하게 드러난다. 전 직장의 건물에는 여러 회사가 상주하며 주차장을 쉐어 했는데 그중에 눈에 띄게 좋은 차들은 항상 내 회사나 옆 건물 한국 회사 사람들 차들이었다. 돈을 많이 주는 회사도 아니었는데. 내가 입사했을 당시 나의 사수는 포르쉐 SUV를 타다가 마제라띠 세단을 타던 사람이었는데 뻔한 연봉으로 (허술한 시스템으로 임직원들의 월급 내역이 내 손에 들어온 적이 있었다) 그런 고급 차들을 탈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항상 신기했다. 그리고 누군가의 차에 대한 코멘트는 내게 굉장히 강한 인상을 남겼고 많은 생각 또한 하게 했는데 그 코멘트는 이러했다. "네가 BMW나 벤츠를 타면 사람들이 너를 보는 눈이 달라질 거야. 하얀 BMW에서 내리는 너를 상상해봐. 네가 데이트할 수 있는 남자들의 질도 올라갈 거야" 이런 말을 했던 (결혼이 몹시 하고 싶은) 그는 마흔이 다되도록 결혼을 하지 못하고 있다.
그 좋은 차들에 비해 나의 차는 대학시절의 약간의 무모한 운전과 무수한 밤들의 다운타운 파티와 그를 위한 스트릿 파킹을 반증하듯 차 앞태와 뒤태에 무성한 스크래치가 나있었고 사이드에는 남자 친구와 연애 초반 가시나무 덤불을 헤치고 들어가 오붓한 시간을 보내느라 생긴 자잘한 스크래치들이 가득했다. 그 당시엔 스크래치가 난 줄도 몰랐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동안 배터리는 물론, 시동이 걸리지 않아 차를 견인해서 알터네이터, 워터 펌프를 갈아줘야 했던 적도 있고 헤드라이트, 테일라이트도 갈아줘야 했고, 퓨즈도 몇 개 갈아줘야 했고, 요즘은 가끔 라디오나 음향시스템도 접촉 불량으로 왔다 갔다 하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더운 여름을 견디지 못한 헤드라이너가 떨어져 뒷 창문이 보이지 않아 헤드라이너를 뒷 창문에 테이프로 덕지덕지 붙여놓고 차를 몰고 있다.
소비에 있어서 약간 스크루지 영감 같은 나는 나의 개인적인 목표를 이루기 전엔 차를 사지 않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차 페이먼트는 다달이 나가는 가장 큰 지출이 될 것이 뻔하기도 하고, 다달이 나가는 페이먼트는 저축을 많이 하지 못하는데 가장 큰 이유가 된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차는 엔진 소리가 아주 깨끗하며 (카센터에 모셔갈 때마다 아저씨들이 엔진 소리에 칭찬 일색이셨다) 자동차로서의 구실을 완벽하게 해내고 있다는 점.
나의 오래된 자동차는 1500마일을 달려 나를 텍사스로부터 캘리포니아로 싣어다 주었고 다시 함께 텍사스로 돌아와 나를 매일 집에서 회사로, 회사에서 집으로 날라준다.
나의 사랑하는 차, 너 없는 나의 삶은 상상할 수 없어. 나에게 와줘 고맙고 나와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