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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그리뜨 Oct 30. 2018

성범죄와 증거 불충분에 관하여

미국 종신 대법관을 임명하며

청문회에서 선서를 하는 Dr. Chrstine Ford


요즘 부쩍 들어 내가 사랑하는 천조국, 미국이 망조라는 생각이 든다. 성매매를 했다는 (정확히는 섹스를 하고 입막음을 위해 여성들에게 돈을 지급한), 자기는 유명하고 돈 많고 권력이 있으니까 “grab it by pussy”를 해도 여자들이 좋아한다는 망언을 하는 인간이 미국의 최고 권력 자리에 앉아 있고, 종신형 대법관 임명 투표를 앞둔 자에게 성폭행/성추행을 당했다며 네 명의 여성이 대중 앞에 자신의 이름을 걸었다. 물론 아직 증명이 된 것은 아무도 없고 현재의 법 시스템은 Innocent until proven guilty (유죄 입증 시까지 무죄)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청문회로 보았을 때 양 측 중 한 측은 철저한 거짓말을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청문회 이후 Kavanaugh는 공화당의 만장일치로 종신 대법관에 임명되었다). 


성폭행/성추행이라는 고통스러운 경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안다. 그 순간 구체적으로 일이 일어났는지, 그 상황을 “증명”해내라는 것이 얼마나 가당치도 않은 말인지. 청문회에 피해자로 선 Dr. Ford는 한 대학에 심리학과의 교수이었고 우리의 뇌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고통스러운 기억을 희미하게 한다고 했다.


어느 무더운 여름이었다. 내 몸에 손을 대어도 된다고 허락하지 않은 사람 (정확히는 내 친구의 그 당시 남자 친구) 이 내 가슴에 손을 댔다. 그 사람이 내 양 가슴에 그의 더러운 두 손을 갖다 대었는지, 한 손으로 내 가슴을 만졌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너무 충격적이어서, 이 사람이 나한테 이럴 거라는 것은 전혀 예상을 못했기 때문에, 몇 초 정도 모든 것이 정지했었다. 그에게 미쳤냐는 식으로 화를 내며 그를 밀쳐냈을 때 그가 뱉은 문장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히 기억이 난다. “I thought you were *** (난 네가 ***인 줄 알았어, ***는 내 친구의 이름이다)”. 아직도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심장에서부터 머리까지 열이 뻗친다. 하지만 나는 이 사실이 일어난 장소를 기억할 뿐 그 당시의 정황은 증명할 수 없다.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 걸까. 짧지 않은 시간이 지났지만 내 가까운 친구 몇 에게 이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을 뿐, 가족들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물론, 내 친구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가 세상 밖으로 처음 나온 것은 그녀의 marriage counseling (부부상담?) 도중이었다고 했다. 새로운 주택을 짓기 위해 남편과 상의를 하던 중, 도저히 둘이서 결론이 나지 않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그것은 Dr. Ford가 침실에 꼭 문을 두 개 설치하기를 원했고 남편은 그것을 이해를 할 수 없었다는 것이었다. 상담에서 나온 이유인즉슨 30년 전쯤 두 소년이 자기를 침대에 눕혀놓고 올라타 깔깔대고 그 방에서 떠났을 때 숨죽이며 조용히 탈출을 해야만 했던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에게는 다른 안심할 수 있는 다른 탈출구의 옵션이 필요했다는 의미이다.  


Kavanaugh는 청문회 내내 얼굴이 울그락 불그락, 미간을 찌푸리며 자기는 억울하다는 식으로 화를 내며 증언을 이어갔다. Dr. Ford는 달랐다. 그녀는 증언 내내 사회가 여성에게 기대하는 "good girl"에 완벽하게 부응하듯 조용하고 나긋나긋한 말투로 청문회를 이어갔다. 


Dr. Ford가 답했다. 아직도 그녀의 기억에 가장 고통스럽게 남아있는 장면은 그녀를 추행하던 당시 즐겁게 웃던 두 남자의 웃음이었다고. 

Dr. Ford에게 사람들이 묻는다. 1982년, 지금으로부터 30년이 더 된 이야기를 왜 이제야 꺼내느냐고. 다분히 정치적인 목적이 아니냐고. 

Dr. Ford가 말한다. 그녀는 청문회에 원해서 나온 것이 아니며 그녀는 두렵다고. (실제로 그녀는 이 청문회로 인해 가족, 그녀의 재정, 목숨에 어마어마한 위협을 받았다고 한다) 이 사건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시민으로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술을 마셨기 때문에, 혹은 종신형 대법관 후보의 어머니 말마따나 “중, 고등학교 때 안 그러는 남자애들 있으면 나와보라 그래”라는 말으로 용서가 되고 감형이 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 그 나이쯤이면 내가 과연 윤리적으로 올바른 일을 하고 있는지 잘못된 일을 하고 있는지 사리분별을 할 줄 안다는 것은 분명하다. 


증명을 하는 일은 길고 긴 싸움이 될 것이다. 30년이 지난 일을 어떻게 증명해 낼 수 있을까. Dr. Ford가 진실을 말하는 것이라고 믿지만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한 것도 사실이고 나 또한 피해자에 감정 이입을 하고 있어 객관적이지 못한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Kavanaugh는 자기는 그런 적 없다. 억울하다.로 태도를 일관할 것은 뻔한 이야기이다. 


하지만 이 Dr. Ford를 비롯한 3명의 여성의 발언이 사실이라면 여성의 몸을 소중히 여길 줄 모르는/함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세계 최고의 권력을 가진 국가의 종신형 대법관이 될 것이다. 세계의 흐름을 주도하는 미국에 앞으로 몇십 년간 (남성을 비롯한) 여성에 대해서 많은 판결이 내려질 텐데 그 방향이 심히 걱정된다. 여전히 많은 인식의 개선이 필요하지만 여태까지 쌓아온 여성의 권리가 후퇴하지 않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앞서 말했듯 Kavanaugh는 혐의를 안고 공화당의 만장일치로 종신 대법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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