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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방문한 워싱턴 주 절경 호수, 콜척에서 풍덩

천국은 이렇게 생겼을까

by 마그리뜨


2년 전, 날씨가 좋았던 콜척

최근에 갔던 곳은 놀스 케스케이드는 아니고, 그 옆에 있는 콜척이라는 곳인데 이곳은 워싱턴의 독일마을 레번워스 근처에 있는 곳으로 2년 전에 나의 등산 메이트와도 함께 간 적이 있었던 곳이다. 시애틀에서는 편도로 3시간 정도가 걸리기 때문에 당일치기로 쉬운 여정은 아니다. 사진이 워낙 환상적이라 기대가 정말 컸는데도 너무너무 기대 이상으로 좋았어서 지상 낙원이 이런 건가, 천국은 이렇게 생겼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었다. 물색깔이 어떻게 이렇게도 신비하고 청량한 청록색이지, 싶은 아름다운 호수.


콜척에서만큼은 수영을 하기 위해 수영복도 주문했는데, 날짜에 맞춰서 도착하지 않는 바람에 발을 담그는 것으로 만족해야했다. 무척 더운 날을 골라 등산하는데는 조금 고생하긴 했지만, 그랬기 때문에 수온은 수영하기에 더할 나위 없는 상태였어서 더더욱 아쉬움이 남았다. 그날 호수에서 수영을 하시던 분이 그렇게 부러웠을 수가 없어서, 그다음부터 알파인 호수로 하이킹을 갈 때면 풍덩 하는 것이 등산의 목적이 되었다. 날씨가 어떻든 일단 수영복은 챙기고 보는 것이다. 그리고 꼭 콜척에 다시 돌아와 풍덩을 하겠다고 다짐을 했다.


언제 시작되었는지 모르겠지만 꽤 오랜 시간 산을 사랑해 왔다. 어려서 남한산성을 다니긴 했지만 산에 자주 갔던 것도 아니고 딱히 어떤 동기가 있던 것도 아니었다. 언젠가 바다보다는 산이 좋다는 확고한 취향이 완성되었고 근 몇 년 간의 휴가나 여행의 목적은 가족 여행을 제외한 경우는 국립공원, 국립 숲에서의 하이킹이었다. 캘리포니아의 세코이야, 요세미티, 콜로라도의 록키 마운틴 국립공원, 듀랑고, 알래스카 빙하 하이킹, 유타의 협곡들과 단풍놀이, 과테말라 화산 하이킹 등 산에 진심인 시간들을 꽤 보내왔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는 그저 산이 좋았다. 돈을 벌기 시작하고는 비행기를 타고 등산을 다녔기 때문에 날씨도 좋다는 때를 일부러 골라 단풍 구경도 하고 화창한 여름날 산을 걸었으니 좋은 날씨와 이쁜 것들을 참 많이도 봤다.


가보고 싶은 곳이 참 많은데 그중엔 워싱턴 놀스 케스케이드, 옐로스톤 간헐천이랑 야생물소 떼 보기, 옐로스톤보다 덜 알려져 있는 옐로스톤 근처에 있는 그랜드 티톤글래셔 국립공원, 알프스(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위스, 독일) 가기, 캐나다 반프, 알라스카 드날리, 마추픽추를 3박 4일 걸어서 올라가기, 살칸타이 트레일, 페루 와라즈에 머물며 69 호수 하이킹 하기, 페루랑 아르헨티나 파타고니아, 엘 찰튼 이라도, 장가계, 네팔 먼발치에서라도 에베레스트를 보게 해 주세요 같은 꿈의 목적지들이 있다. 그러다 산에 진심인 내가 시애틀로 이사를 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된다. 칙칙한 필라델피아와 시애틀에서 오퍼가 있었을 때 필라델피아가 돈을 많이 준대도 갈 수가 있었겠냐고. 어떤 선택은 이성이 아니라 이미 0.1초가 안 되는 순간 이미 선택이 끝나있기도 하다. 이런 걸 gut feeling (직감)이라고 한다.


여름 주말, 눈을 떠보면 산에 있었다. 평상시엔 침대에서 끝까지 버티다가 마지못해 기어 나오는데 여름 토요일 아침이면 여섯 시에 눈을 벌떡 뜨고 8시면 트레일 앞에 도착해 있었다.


하이킹을 하는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의 장비와 정보를 접하면서 얼마나 내가 무지하고 겁이 없는 하이커였는지 알게 되었다. 돈 안 드는 취미일 줄 알았는데 하이킹처럼 돈이 많이 드는 운동도 없는 것이었다. 운동은 장비빨 아니겠는가. 여름이면 방수되는 얇은 rain jacket 사야 되지, 눈 오는 겨울이 되면 겹쳐 입을 바지에 방수 바지, 가벼우면서 방수도 되면서 따뜻함이 잘 유지되는 좋은 자켓도 하나 필요하고 물집 안 잡히게 해 줄 좋은 등산 양말, 등산화에, 필요한 모든 것을 싣고 다닐 가벼우면서 튼튼하고 방수가 되는 배낭도 필요하고 하이킹 폴도 필요하고 폴 들고 다니려면 손이 따뜻해야 하니 좋은 장갑도 필요하고.. 이건 한나절 산행에 국한된 얘기고 백팩킹은 해본 적이 없어서 어떤지 모르겠다. 꼭 해보고 싶지만 15kg씩 어깨에 짊어지고 다닌다는데 텐트, 침낭, 식량... 생각만 해도 무겁다. 아무래도 안될 거 같다.


진심을 다했다. 이곳과 이 상황에서 등산보다 무엇을 더 열심히 할 수 있을까 싶었다. 회사는 여름동안 금요일 오전 반나절만 일을 하는데 금요일 12시 땡! 하면 미리 싸둔 짐을 들쳐 매고 산으로 갔다. 그렇게 금요일에 짧은 하이킹 코스 하나, 일요일에 본격 하이킹 코스 하나, 를 한 두 달 뛰니 컨디션이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그래서 혼자 하이킹을 나갔던 날 기분 좋게 하이킹하고 내려오면서 신나게 뛰어내려왔다. 내려오면서 무릎에 무리가 갔는지 집으로 돌아온 후부터 무릎이 아파 그 날씨가 좋기로 유명한 시애틀 여름에 등산을 3개월 쉬었어야 했을 때는 마음이 부글부글했다. 단풍으로 물드는 아름다운 워싱턴을 통째로 미스했다. 이후로 절대로 무리하지 않는다,라는 철칙을 지키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워싱턴의 아름다운 여름은 다시 찾아왔다. 겨울에는 내내 비가 와서 하와이나 캘리포니아 쪽으로 햇님을 찾으러 가야 할 것 같지만, 나의 편견을 약간 더해보자면 워싱턴의 여름만큼은 세계 어디를 내놔도 최고라고 자부할 수 있는 그런 여름이다. 그래서 여름만큼은 시애틀에 꼭! 붙어있고 싶은데 자꾸 출장이 생겨서 지나가는 여름 하루하루가 아깝다.


워싱턴에 뼈를 묻고 싶다는 농담을 할 정도로 이곳을 사랑하는 이유 중 큰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끝없이 펼쳐진 케스케이드 산맥인데 등산을 꾸준하게 한 지도 몇 년이 됐지만 등산에 대해 글을 쓰기가 쉽지가 않아 차일피일 미뤄온 게 벌써 몇 년이 되어버렸다.


워싱턴에 있는 놀스 케스케이드 국립공원을 가는 것이 버켓리스트 중 하나였는데 막상 이곳에 이사를 오고 나니 놀스 케스케이드는 당일치기를 하기엔 약간 애매하게 먼 거리라 자주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날 때마다 열심히 가보려고는 하고 있다.


2025년, 구름이 잔뜩 낀 날의 콜척


왼쪽 드레곤 테일 피크, 오른쪽 콜척 피크


그리고 2년 동안 벼르던 콜척 호에서의 수영의 소망을 풀었다! 무척 무덥던 2년 전의 8월은 해가 쨍쨍하고 온도가 높아 등산이 힘들었던 대신 뷰가 완벽하게 클리어하고, 수온이 따뜻했고, 벌레가 많지는 않았는데 이번 6월의 하이킹은 구름진 날에, 선선해서 등산하기는 좋았는데 수온이 낮았고 그야말로 모기와의 전쟁이라 오른쪽 정강이에 무수한 영광의 상처를 남겼다. 모기약으로 거의 샤워를 하다시피 머리부터 발끝까지 두 시간에 한 번씩 뿌려줬지만 산모기에는 약이 듣지도 않았다. 다음부터는 트레일을 정할 때, 모기가 많은 시즌인지 꼭 다시 한번 체크를 해야겠다. 콜척은 날씨가 쨍쨍해도 좋고, 흐려도 갈 때마다 청량함에, 아주 행복한 등산을 선사한다. 트레일헤드부터 콜척 초입까지는 왕복 9마일 (15km) 정도, 근데 자리 잡고 김밥을 먹고, 수영을 하기 위해서 1킬로 정도 더 들어갔다 나왔다.


사진상 왼쪽 봉우리, 드래곤 테일 피크(용꼬리)과 콜척피크 (중앙, 혹은 오른쪽) 사이는 아스가드 패스라는 곳으로 1마일 (1.6km)에 2260피트 (670m)를 올라가는 죽음의 길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곳을 넘어가면 그야말로 알파인 호수들이 줄지어 나오는 환상의 뷰가 펼쳐지는데 콜척 트레일 헤드에서 시작해 20마일 (32km)의 이 구간은 인챈트먼트 (Enchantment)라고 부르는 워싱턴의 전설적인 편도 트레일이다. 언젠가는 꼭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만 무리해서 부상당할 짓은 하지 않는다의 철칙에 반하는 행위라 현실적으론 어려울 것 같다. 이곳은 백팩킹도 가능한데, 백팩킹 로터리를 따는 것이 하늘의 별 따기라고 할 수 있다.


이름도 마법같은 인챈트먼트, 그래도 언젠가 한 번은 용기를 내어 아스가드 패스를 넘어 위에서 콜척을 내려다보고, 천국을 상상케하는 호수들이 계속되는 그 전설 같은 길을 걸어보고 싶다. 그 많은 호수에 풍덩할 수 있기를. 그렇게 나의 등산 이야기에 또 하나의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더해지기를.


콜척


** 트레일 정보 요약

트레일 이름: Colchuck Lake (Stuart Lake Trailhead 에서 시작)

거리: 왕복 9마일

고도 상승: 2400피트

참고 웹사이트:

https://www.wta.org/go-hiking/hikes/colchuck-lake

https://www.alltrails.com/trail/us/washington/colchuck-lake-via-stuart-lake-tr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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