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여행지를 여러 번 방문하는 것은 아주 운이 좋은 일이자, 여행을 좀 더 즐겁고 여유롭게 만드는 일이다. 처음이 아니라면 나의 취향에 맞는 것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고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 느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운 좋게 한 달 내에 시카고를 두 번이나 방문하면서 여행에 대한 기대치를 많이 내려놓을 수 있게 되었다. 주말뿐이라 시간도 길지 않았고, 시카고에 오기 전 출장지에서 고생해서 쉬고 싶다는 마음도 조금 더해져서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출장지에서 일을 해야 했기 때문에 밀린 일이 매우 많아서, 금요일에 호텔에 체크인을 해서는 시애틀 시간으로 근무를 해야 했다.
그래도 꼭 하고 싶은 것들이 있었다. 아트 인스티튜트가 그랬고 클라우드 게이트가 그랬고 리버 워크가 그랬다. 한식이 그랬다.
아트 인스티튜트는 문화생활이 그리웠던 나의 정신을 충만하게 해 주었고, 클라우드 게이트와 그 배경은 언제 보아도 특별했다. 여러 가지로 머리가 복잡했는데 리버워크는 스트레스를 내려놓을 수 있는 공간이 되어주었다. 두 주말이나 시카고를 갔지만 시카고 강 바로 위에서 지내면서도 리버워크를 여유롭게 거닐 수 있는 시간이 많지가 않았던 건 아쉬운 일이다. 시카고를 떠나기 전 밤, 스파티파이에서 시카고 플레이리스트를 골라 들으며 강변 산책을 하는데, Frank Sinatra의 Chicago는 마음을 푹 적셔주는 노래였다. 음악과 산책은 강력한 스트레스 해소법이다.
그리고 여태 시카고를 올 때마다 겨울이어서, 여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날이 좋을 때만 한다는 버킹엄 분수가 꼭 보고 싶었다. 드디어 영접한 분수는 생각보다 더 좋았다. 관광객이 바글바글한 빈과는 다르게 버킹엄 분수가 있는 공원엔 사람도 별로 없다는 것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분수대 근처에서만 한 시간쯤 멍하니 서성였던 것 같다. 시원한 물줄기는 마음의 위로가 되었다.
결정적으로 시카고를 왔던 이유, 내 민족의 음식. 일주일 내내 하얀 사람들만이 사는 도시에서 샌드위치, 햄버거, 피자만 먹으면서 지내려니 정신이 나갈 것 같았다. 시카고의 한인타운은 생각보다 시카고 근교로 오래 나가야 해서 지도 주변을 찾아보다가 그나마 가까운, 시카고에서 7마일쯤 떨어졌지만 운전해서 30분이 넘게 걸렸던 김가네 집밥에서 결국 모든 저녁 식사를 해결했다. 갈비가 정말 만족스러웠고, 최근 한국 방문했을 때 엄마와 즐겨 먹었던 코다리 구이가 있길래 코다리도 맛있게 먹었다. 다른데도 다녀볼 걸, 싶었지만 집밥 스타일의 슴슴한 식사에 별 불만 없이 습관처럼 밥을 먹으러 다녔다. 며칠 연달아 얼굴을 들이대다 보니 30대가 되었는데도 시집을 갈 생각 않는 두 딸에 대한 사장님의 푸념을 들어드렸다. 내 코가 더 석자인데 말이다. ㅋㅋㅋ
왠지 자꾸 돌아오게 되는 르방 쿠키는 월넛이 함께 든 오리지널 쿠키가 제일 맛있다는 결론을 내었다. 더블 초콜렛칩은 좀 과한 느낌. 르방 쿠키의 라떼는 정말 맛이 없다. 시카고에 다녀오면서 쿠키를 챙겨 왔다고 하니, 주말에 떠나지 말지, 나는 너한테 줄 것도 없는데, 하면서도 잊기 힘든 촉촉한 눈빛을 보내던 친구가 오랫동안 생각 날 것 같다.
미시간으로 돌아와 또 정신없는 두 번째 2주 차 출장을 끝내고 목요일 늦은 저녁, 7시쯤 근무를 마치고 그날 밤에 머무를 호텔을 겨우 예약하고, 밥 맛이 1도 없는 상태에서 1시간을 달려 그랜드 래피즈를 도착해 밥도 대충 해결하려다가, 그래도 밥을 든든하게 먹어야 마음의 위로가 되겠지, 해서 먹으러 갔던 저녁. 시끄러운 군중 속에, 정신이 나갈 것 같았던, 매우 외롭고 공허했던, 그랜드 래피즈 최애의 식당에서 스테이크와 와인을 썰었던 것으로 2025년 미시간 출장과 시카고 여행을 마무리를 한다. 시카고가 오랜 시간 마음 찡한 도시로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