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고 또 가는 미술관, 워싱턴 D.C.의 내셔널 갤러리

National Gallery of Art in D.C.

by 마그리뜨


뉴욕에 메트로폴리탄이 있고, 시카고에 아트 인스티튜트가 있다면 워싱턴 디씨에는 내셔널 갤러리가 있다. 미국 정부에서 운영하는 미술관답게 관람비는 무료다. 더 좋았던 거? 평일에 방문해서인지 유난히 한가했다. 압도적인 스케일의 건물과, 천조국의 국비로 운영되는 만큼 세계적인 컬렉션에서 오는 든든한 만족감이 있다. 작고 아늑한 사립 미술관에서 고요하게 인상주의를 만난 뒤 크게 대비감을 느낄 수 있다.


디씨에 머무는 동안 두 번 방문했다. 출장 일정이 시작되기 전에 한번, 모든 일정이 끝난 뒤 한번. 물론 그만큼 시간 투자를 해야 하지만 반복학습은 기억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애초부터 두 번을 갈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처음 갔을 때 너무 좋아서, 다시 돌아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적었던 탓인지, 층고가 높은 구조 때문인지, 건물 전체에서 느껴지는 웅장함에 압도되고 그로 인해 널찍하게 느껴지는 공간감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시간이 넉넉지 않았기 때문에 인상주의 작품들이 모여 있는 웨스트윙을 중심으로 둘러보았다.


<Charing Cross Bridge>, London, 1890, Pissaro


나에게 내셔널 갤러리는 피사로의 재발견으로 다가왔다. 고흐, 르누아르, 모네를 열심히 찾아다녔지 그 외에 화가들에게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피사로의 따뜻하고 귀여운 그림 몇 점이 마음에 깊게 박혔다.


피사로가 에라그니에 살면서 그린 본인의 정원 그림은 초록과 분홍의 색감이 조화롭고, 작품 전체에 완연한 봄을 느끼게 한다. 특히 내게 가장 인상 깊었던 두 작품의 공통점으로는 바글바글한 사람들이 전차를 타고 있거나, 배를 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그 많은 사람들을 피사로가 표현해 낸 방식이 몹시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가까이서 보면 사람들은 형체가 없는데, 이상할 만큼 정성스러울 수가 없고,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다. 특히 런던 채링 크로스 다리를 그린 작품에 뒤편에 자리한 성당으로 보이는 건물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했다. 확대해서 핸드폰 배경화면으로 저장해 두었다.



피사로의 그림 세 점과 함께 걸려있었던 르누아르의 퐁뇌프. 역시 르누아르 특유의 청색이 눈에 띤다. 청량하고, 추운 공기가 느껴지는 것 같은데도 묘하게 따뜻하다. 2년 반 전 엄마랑 파리 여행 때, 엄마가 가장 가고 싶어 했던 곳이 퐁뇌프였다. (왜인지 이유는 물어보지 않았네?) 그때 그곳에서 유난히 사진을 많이 찍었던 기억 덕분인지, 이 그림은 더 오래 마음에 남았다. 르누아르가 파리 본인의 집에서 내려다본 퐁뇌프라고 한다. 도슨트의 설명에 따르면 르누아르의 동생이 퐁뇌프로 내려가서 르누아르가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아 모델이 되어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모네의 작품들이 본격적으로 이어지는 깊숙한 방에 들어가기 전, 작은 방에 걸려 있던 모네의 그림도 인상 깊었다. 빨간 꽃들이 뭉게뭉게 피어 있는 풍경 속에 멀리, 아주 작고 부드럽게 그려진 커플이 등장하는데 그 대비가 무척 사랑스럽다.



모네의 주요 작품들이 모여 있는 가장 안쪽 방은 비교적 찾는 사람이 적어, 오랜 시간 고요하게 그림을 감상할 수 있었다. 결국 가장 좋은 미술관은, 사람이 없는 미술관이다.



유럽 여행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활동은 보이는 성당이나 교회마다 들어가 보는 것, 그리고 미술관을 찾는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네의 루앙 대성당 연작은 완전히 취향 저격이다. 멀리서 보면 분명 성당인데, 가까이 다가가면 무엇을 보고 있는지 단번에 알기 어려운 그림. 모네는 1892년과 1893년에 걸쳐 서로 다른 시간대의 루앙 성당을 30점 이상 그렸다고 한다. 빛을 탐구하고자 했던 그의 집요한 열정에는 언제나 감탄하게 된다.


IMG_3152.JPG


<Roses> 1890, <Green Wheat Fields, Auvers> 1890.


모네의 방으로 들어가기 직전에는 고흐, 고갱, 드가의 작품들이 걸려 있는 방이 있다. 이 방에 걸린 고흐의 작품들은 공통적으로 옥색과 녹색이 주조를 이루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특히 그가 사망한 1890년에 제작된 작품들이었는데, 흰 장미, 밀밭, 아가, 흰 옷을 입은 여인까지 모두 옥색 대잔치였다. 그중에서도 옥색 배경 위에 놓인 흰빛과 분홍빛 장미, 그리고 누가 봐도 고흐라고 외치는 듯한 몸부림치는 밀밭 그림이 특히 마음에 남았다.



마지막으로 모네의 초 유명작인 양산을 든 모네의 부인과 아들.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인물들의 눈코입은 흐릿해서 있는지 없는지 분간조차 어렵다. 대신 모네에게 더 중요했던 것은 바람에 움직이는 구름과 풀, 하늘하늘 흔들리는 드레스, 그리고 역광으로 비추고 있는 빛이 아닐까 싶다.



내셔널 갤러리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유일하게 다빈치의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이기도 하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의 디테일을 살린 정교함과, 한 캔버스에 양면에 그림을 남겼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내셔널 갤러리는 같은 그림들을 다시 보기 위해 기꺼이 두 번을 발걸음을 옮기게 만든 미술관이었다. 두 번의 방문 모두, 미술관 문 닫는 5시가 유난히 아쉬웠다. 인상주의관을 빠져나오며 고흐에게, 르누아르에게, 또 올게, 곧 다시 봐라는 인사를 하고 미술관을 빠져나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시카고가 좋은 이유,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