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네번째 독서리뷰 #『인생의 축제가 시작되는 정리의 발견』
며칠 전 이사를 했다. 3년간 아늑한 보금자리였던 나의 방에는 물건들이 하나씩 늘어나면서 처음이랑 다르게 꽉 차 있었다. 언제부턴가 방이 매우 좁다고 생각했는데 이 때문이었다. 처음에는 이 짐들을 어떻게 정리하고 옮겨야 하는지 감이 안 왔다. 막상 짐을 싸려니 상상 이상으로 물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겨우 나 혼자 사는 원룸이었는데... 결국 이사까지는 아직 2주 정도의 시간이 남아있었기에, 복잡한 생각은 뒤로 제쳐두고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넷플릭스에서 “Tidying up”이라는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프로그램의 내용은 ‘정리 전문가’인 곤도 마리에가 미국의 가정을 방문해서 정리 코칭을 해주는 것이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정리를 하는 방법적인 측면도 흥미로웠지만, 정리를 하면서 사람들의 가지고 있는 태도, 생각이 바뀌는 과정이 정말 놀라웠다.
현재 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살 수 있다. 티비나 인터넷에서는 교묘하게 사람들의 소비를 부추기고, 그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소비를 하며 살아있음을 느낀다. 사실 나도 이런 길들여진 사람들 중 하나였다. 열심히 한 달 동안 일했는데 ‘이 정도는 나에게 주는 보상이야’라는 생각으로 소비하는 것 자체에 행복을 느꼈다. 하지만 충동적으로 구입한 물건을 제대로 활용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사람들은 구입한 물건들로부터 짓눌리기 시작한다. 대부분 한 두 번 사용되고 집안 구석에 쌓이기 때문이다. 쉽게 버리지도 못한다. 결국 자기도 모르게 어쩔 수 없이 쌓이는 물건들로부터 피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는다. 이 스트레스는 본인과 주변 가족들을 아주 서서히 피폐하게 만든다.
‘Tidying up’의 곤도 마리에는 물건을 카테고리별로 정리하고, 모든 것을 다 꺼낸 후 설렘이 있는 물건들만 간직하라고 조언한다. 설렘이 없다면 그 물건은 앞으로도 다시 사용할 일은 없다는 것이다. 코칭을 받은 참가자들은 이러한 조언대로 1달 동안 집안을 정리한다. 사용하지 않는 물건들은 대부분 기부를 하거나 버리는데, 그 정리가 끝난 후에 변화된 그들의 모습이 꽤나 흥미롭다. 집 안이 깨끗해짐과 동시에, 그들이 생각과 태도가 바뀐다. 정리하기 전의 모습이 자본주의에 길들여진 소비하는 인간이었다면, 정리 이후에는 소비에서 벗어나 다른 곳에서 진정한 행복을 찾는다. 물건에서 받는 스트레스가 사라지니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자연스레 나에게 집중하고, 주변의 가족과의 관계도 좋아진다.
이 TV 프로그램을 보고 책을 찾아 읽으면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라는 책이 생각났다. 에리히 프롬은 현대사회를 소유양식과 존재양식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나’라는 존재를 내가 소유하는 것, 내가 소비하는 것으로써 확인하고 동일시하는 것이 바로 소유양식이다. 문제는 이러한 소유 양식은 시간이 가면서,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 가치가 감소하기 때문에 새로운 행복을 느끼기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운 소비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치 마르지 않는 샘처럼 우리는 계속해서 소비를 하면서 내가 살아있음을 느낀다. 반면에, 존재양식이라는 것은 나의 존재를 내가 ‘지금 여기’에서 생각하고 느끼며 경험하는 것으로서 파악한다. 즉, 살아있다는 것 자체로서 나의 존재를 확인한다. 남을 사랑하고 베풀면서 그들은 행복함을 느낀다. 이런 사고방식은 사랑을 바탕으로 주변 세계(사람, 사회, 환경 등)에 대한 연대감으로 이어진다.
곤도 마리에는 결국 정리를 하면서 ‘존재양식’으로의 삶을 살 수 있도록 이끌어준다. 모든 물건들에게 감사를 표현하고 설렘이 있는 것을 찾으면서 ‘소유양식’에서 느껴보지 못한 행복감을 정리를 통해 알려준다. 이 프로그램의 참가자들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소유양식’이 아닌 ‘존재양식’의 행복감을 느낀다. 이런 사람들의 행복한 모습을 보며 매우 놀랐다. 그 모습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모습이 아닌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의 나에게도 정말 필요한 태도였다. 최근 ‘미니멀리즘’이 유행을 타고 있는 것도 사회에서 소비에 싫증을 느껴 스스로를 반성하고, 존재양식을 되찾기 위한 니즈를 반영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다음에는 미니멀리즘 관련 책을 읽어봐야겠다.
미뤄두었던 정리를 시작했다. 모든 물건들을 꺼내서 정말 나한테 필요한 것들만 분류해서 짐을 쌓다. 가져갈 짐만큼 버릴 물건들이 나왔다. 한 번 입고 안 입는 옷들도 많았고, 심지어 한 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물건들도 많았다. 앞으로 절대 사용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도 함께였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 정리를 했다. 정리가 끝난 후 좁다고 느꼈던 내 방이, 매우 넓은 방이라는 것을 새롭게 느꼈다. 그리고 나의 내면도 그만큼 넓어지고 여유로워진 것도 느꼈다. 새롭게 이사한 방에 짐들을 다시 푸는데 채 3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제 소비를 통해 채우는 행복이 아닌 나눌고 베푸는 행복을 느껴보도록 시도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