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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곗바늘의 무게

누군가 잠시 쉬라고 말해줬으면

by 이팔작가

어렸을 때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때의 나는 검은색 지갑에서 내 한 달 용돈과 맞먹는 돈을 쉽게 꺼내는 그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돈의 무게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무거웠다. 어렸던 나라 쉽게 꺼낸다고 생각했지만, 그 돈을 꺼내기에 그들의 과정은 고됬다. 누군가에게 억지로 웃음을 팔고,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흥정을 하는 그들이었을 것이다.


'어른'이라고 불릴 나이가 되어서 문득 그 돈의 의미를 생각해봤다. 여전히 무게감이 있다. 그 무게감은 돈에 대한 무게보다 '시간이 지나고 나도 그렇게 돈을 쓸 수 있을까?'라는 무게감이었다. 요즘 선배들을 봐도 취직을 미루는 선배가 많다. 예전에 고학번이라고 웃으며 놀렸을 것도 이제는 놀림감이 되지 못한다.


군대를 갔다 오면 졸업했을 거라 생각했던 선배를 봤을 때, 반가움이 먼저 다가왔지만 그의 표정을 보니 이런 반가움도 사치라는 생각을 했다. 그의 손에는 20살 때 봤던 커피가 있었지만, 가방에는 예전과 다르게 인적성책과 자기소개서가 쌓여 있었다.


다들 군대를 갔다 오면 어른이고, 남자라고 했지만 아직 나는 잘 모르겠다. 어른이라고 하기에 너무나 나약하다. 대학생이라는 허울 좋은 겉표지에 쌓여서, 가난하게 살아간다. 그리고 가난한 것은 나의 지갑뿐만 아니라 나의 미래도 그렇다. 20살 철없이 다 할 줄 알았던 새내기였다면 이제는 그러지 못하는 헌 내기가 되었다. 열정이라고 불릴 용기는 이제는 객기가 되었다. 꿈에 취하고 달려야 할 나이에 술에 취해서 비틀거리니 너무나 안타까운 현실이다.


군대를 갔다 와 민간인이 되니 시곗바늘의 무게가 짙게 느껴진다. 국방부의 시계는 느리게 갔는데 왜 밖은 너무나 빨리 돌아가는지, 억울하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좋은 선배가 되어야겠다는 복학을 준비하던 나는 혼자 다니더라도 빨리 취업하고 졸업해야지를 꿈꾸게 되었다.


내가 너무 망상에 사로잡혔다고 생각하기에는 나름 소박한 꿈이었다. 그리고 만약 망상이라면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 마음의 여유는 왜 이리 없어졌고 예민해졌는지, 가끔 내가 낯설기도 하다. 하지만 누구에게 하소연할 것은 없다. 누구나 같은 무게를 가고 있기에 철없는 소리일 것이다.


2년 사이라고 하기에 너무 많이 바뀌었는지 아니면 내가 전역하고도 철없는 소리를 하는 건지. 채플린이 인생이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고 했지만 생각보다 더 비극적이다. 누구를 욕하려고 해도 누구를 욕해야 할지 몰라 자기를 욕하게 되는 세상이 참 어렵다.


어느 순간 술잔을 나누기에 지갑의 무게보다는 시간의 무게를 생각하는 나이가 되었다. 돈의 무게도 참 무겁지만, 1분 1초가 참 무섭다. 그리고 입시경쟁을 거쳐 취업경쟁을 하려 하니 세상이 참 박하다. 그래서 누군가 잠시의 휴식타임이라도 줬으면 좋겠다. 요기서 딱 하루만 쉬자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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