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ene #2 뒷마당

by BaGGom

아파트 단지 후문이 있다.
문이라기보다는 작은 길을 내어둔 정도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면 단지가 나온다.
좌측은 지하주차장 방향이라 막혀 있고,
우측에는 우거진 나무 아래 벤치 하나, 그 옆엔 작은 놀이터가 있다.
이른 오후 시간엔 아이들이 에너지를 쏟아내는 공간.
나는 보통 그 소란을 피해서,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지난달이었을까.
1년 중 기억나지 않을 350일 중 하루.


나는 평소 안경을 쓴다.
시력이 아주 나쁜 건 아니지만, 난시가 심하다.
간혹 컨디션이 좋을 땐 초점이 비교적 또렷하게 잡힌다.
보통 아침에 잠깐뿐이지만.
그럴 땐 종종 안경을 깜빡하고 나서기도 한다.

그날이 그랬다.

시간이 지나자 다시 초점이 흐려졌고,
눈이 불편해서 일찍 퇴근해 재택으로 돌리기로 했다.
이유야 어찌 됐든, 평소보다 이른 귀가는 언제나 기분 좋다.


이 즈음에는 사람이 별로 없구나 느끼면서
후문길로 방향을 틀었다.
짧은 길이 끝나는 지점,
언제나 그렇듯 시선은 자연스럽게 벤치 쪽으로 향했다.


잔바람이 분다.
가방이 유난히 무거워 덥지 않은 날씨에 흐른 땀이 도리어 시원하다.


벤치에도, 놀이터에도 아무도 없다.

고요하다.


안경없이 보는 풍경이라 경계없이 부드럽다.

햇빛이 적절한 각도로 들어오니 봄인데 가을색이 난다.

그래서 화려하다.


아, 그렇지.
인상주의 그림을 좋아했지.
스무 살 무렵,
내 컴퓨터 바탕화면은 르누아르의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였다.

미술에 조예는 없다.
그냥 어디선가 보고 첫인상이 좋았던 그림.
몽글한 터치,
사람들 표정에서 풍기는 색깔
몸짓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지금 눈에 들어온

익숙한 아파트 앞마당 모습이

꼭 인상주의 화가의 그림 같다.


반가웠다.

찰나지만 속으로 감탄도 했다.

그 자체로 아름다울 수 있는 곳이었구나.


“몇점받았어?”

소리에 돌아섰다.

엄마와 딸의 실랑이를 탓할 수는 없다.

현실은 늘 그렇게 불쑥 끼어들지만,
아마 그래서 더 귀했던 순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