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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집사 Lawjibsa May 09. 2017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으로

질적 변화 

놀랍지 않은가?

'='로만 이루어진 수식이 인간을 달로도 보내고, 인터넷을 구축하고, 거대한 건축물을 짓게 한다는 것이.

새로 추가되는 것 없이도 세상은 풍요로운 것인지도 모른다. 다만 우리가 =로 이루어지는 변환 공식을 모르고 있을 뿐 

가진 것이 없어서, 시간이나 자원이 없어서 할 수 없다거나 하는 변명은 무지의 소치이거나 창의력의 부족이다. 이런 말에 대해 어떤 이는 진짜 세상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거나 실패를 해보지 않은 사람들이 하는 소리라고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런 태도에 대해 해 줄 말은 없다. 

세상은 넓어서 그런 사람들은 항상 존재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성공의 기억이 없는 사람들은 자신의 경험만으로 세상을 판단할 뿐이다. 


종교가 과학으로 변화되고, 과학이 예술로 변화된다는 것을 책을 읽으면서 알게 되었다. 모든 것이 통한다는 말이 어떤 의미인지 희미하게나마 느끼게 된다. 

그렇다고 해서 종교가 과학이고, 과학이 예술이어서 그게 그거다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이 끓어 기체가 될 수 있고 기체가 다시 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인정한다. 내 말이 이해하기 어렵고 논리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이 브런치에서 계속 다루고자 하는 주제. 즉 인간의 성장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인간은 어떻게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가라는 주제는 이렇듯 쉽지 않다. 그러나 이 우주의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사람 역시 질적으로 변화할 수 있고 이는 문명의 성장과도 같이 간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제임스 글릭이 쓴 책 인포메이션(위대한 명저로 남을 것이다)에서 보듯이  북소리로 코드를 전달하여 의사소통을 하던 것이 발전하여 현대의 통신기술이 되었지만 그 기본적인 원리는 동일하다. 이 발전의 근저에는 이 물질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 원자에서 비트로의 인식의 전환이 존재하였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있는 다른 사람과의 대화도 고막을 통해 뇌까지 가는 동안 인코드 되었다가 디코드 된다. 


지금 이 세계는 질적으로 변화하고 있다. 수천 년 전부터 발전해온 속도와 방향은 기존의 역사를 연구하여 알 수 있는 수준이 아니다. 기하급수의 원리에 따라 로켓과도 같이 변화하고 있다. 모든 인간은 사실 거대한 네트워크의 한 노드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급진적인 변화는 앞서 본 바와 같이 물질세계를 기존의 물리학의 관점에서 보다가 정보라는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게 된 것 때문이다.  


즉 세상은 원자의 세계에서 급속하게 비트의 세계로 편입되고 있다. 어떠한 물질 예컨대 책상이나 모니터에 대해 예전에는 부피, 무게, 색과 같은 원자론에 기반하여 '존재를 정의'하였다고 한다면 지금은 책상이나 모니터를 0과 1로 이루어진 수의 집합으로 정의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0과 1 사이의 중간은 연속적이지 않다. 물이 끓어 액체에서 기체가 되는 그 순간이 불연속적이듯. 


이러한 물질세계의 새로운 해석이 이 사회의 급진적 변화를 만드는 기본 동력이 되고 있다. 기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지금의 자동차 문명을 만들어내었다면 그보다 정보과학, 정보기술은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가

나는 알 수 없다. 좋은 쪽일 수도 있고, 나쁜 쪽일 수도 있지만, 그 방향은 싫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은 확실히 한다.   


지금 나는 어떻게 성장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지금의 나의 답은 한마디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다. 

정부, 기업을 포함한 지금까지 인류가 만들어온 모든 조직, 시스템, 그리고 나 자신마저도 디지털적인 해석으로 인식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 


디지털이라는 말은 단순히 아날로그에 대비되는 말이 아니다.

원자론에서 양자역학으로 발전되고 그에 따라 나오게 된 정보과학이 제시하는 세계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천동설과 지동설의 차이로 말할 수 없을 정도로 큰 해석의 진보이고 전환이다. 세계관의 혁신이고 진보이다. 

나는 디지털이 싫고 아날로그가 좋다고 말하는 것은 디지털이 무엇인지 모른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금 사람들이 사용하는 디지털이라는 단어의 콘텍스트가 사람마다 많이 달라 다른 단어를 사용하고 싶지만 아직까지 정보과학의 진보로 이루어진 새로운 세계관을 더 잘 설명하는 말이 없는 것 같다. 


비트의 세계관에서 바라보면 한 인간 역시 정보의 총합이 된다. 따라서 우리가 정부나 은행 네트워크에 접속해서 본인인증을 하는 것은 정보의 제공에 해당한다. 예전 시각으로 보면 그러한 정보의 제공은 우리의 일부를 남기는 것과도 같다. 스카이프로 멀리 있는 사람과 실시간으로 대화한다는 것의 의미는 그 사람과 정보전달 채널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고 그 연결만큼 한 개인의 공간적 지배가 확장되었다는 의미이다. 


영상통화로 대화하는 사람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의) 그 사람이라는 확신을 100% 보증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정보전달은 언제나 소음, 잡음이 필연적으로 수반되기 때문이다. 다만 확률적인 기반에서 이 세계는 흘러가고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하겠다는 의미는 세계관을 정보과학이 새롭게 제시하는 해석론으로 바꾸겠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세계관은 네트워크나 권력, 조직에 대한 당신의 생각을 바꾸어 줄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그러한 세계관이 과연 행복한 것인가 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지금 이 세계에도 중세가 나았다고 하는 사람이 많이 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이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을 자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지금 급변하는 세상을 제대로 해석하고 대응하는 눈을 가지는 소양을 기르자는 것이다. 비트적인 세계관으로 보면 지금의 기업이나. 국가권력, 사법제도, 민족과 같은 현실을 지배하고 있는 조직의 흥망성쇠에 대한 '감'을 가질 수 있다. 

더 쉽게 말하자면, 구글, 아마존, 넷플릭스가 10년간 100배 이상 성장하고, 전통적인 제조업 중 디지털화되지 않은 조직은 몰락할 것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예측하고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디지털 세계의 영토는 무한할 까? 한 인간의 의지도 총량이 있고, 관심도 총량이 있다. 던바 넘버로 표현되는 바와 같이 한 사람이 친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숫자도 250명 정도가 고작이다. 

결론적으로 디지털 세계의 영토는 무한하지 않다. 유동적으로 계속 변화하면서 개척하기는 하겠지만 이미 구글, 아마존, 애플, 네이버, 카카오 등이 이미 확고한 위치를 가지고 있다. 


이런 세계에서 디지털 영토 없이 살아가는 것은 이미 충분한 물적인 부가 축적된 상황에서나 가능할 것이다. 

자신의 힘으로 일어서기 위해서는 디지털 세계에서 분투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의 신흥 부자들이 대부분 게임업계나 인터넷 쇼핑 업계에서 나타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모두 이유가 있다. 


수많은 자기계발서가 있고, 성공학이 있다. 

그러한 책들의 조언은 지금에도 유용한 것들이 많이 있지만 비트로 표현되는 정보기술 시대의 세계관에 따른 조언은 많지 않다. 

예전과 달리 지금 성장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해야겠다고 마음먹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디지털 포메이션은 가진 것이 없어도 된다. 본질 자체가 풍요롭기 때문이다. 

훌륭한 게임이나, 디지털화된 사진, 그림, 글, 영상은 그 자체로 전파나 복제에 비용이 들지 않는다. 그럼에도 사회에 풍요를 가져다준다. 

   

한 개인의 디지털 포메이션에 대하여는 다른 아티클에서 구체적인 부분을 써 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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