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수필

역마 (1)

고삐를 풀다

by 이묵돌


* 이 글은 제가 지난 오월 페이스북 페이지 <페이쓰북에 이딴 글 쓰지마> 에 연재했던 기행문입니다.


저는 당시 슬럼프가 왔던 출판 작업을 마감하기위해 전국을 떠돌았고, 매일 일기를 써서 페이스북에 올렸습니다. 처음엔 별 생각없이 가볍게 시작했지만 연재가 계속되면서 지나칠 정도의 관심을 받았던 글입니다.


<역마>는 제 인생에 있어서도 큰 의미가 있는 글입니다. 이 글로 브런치에서의 첫 시작을 맞이하게 돼 기쁩니다. 부디 여러분에게도 좋은 경험이 되길 바랍니다.


* 페이스북 연재 당시 있었던 어색한 표현이나 문장, 어휘들을 대폭 수정했으며, 플랫폼 특성에 따라 사진과 캡션을 추가했습니다. 오탈자의 경우, 댓글로 남겨주시면 확인하는 대로 수정하겠습니다.







나는 연초에 보살을 찾아갔다. 점을 보기 위해서였다. 보살은 한자로 된 내 이름과 생년생시를 물어보더니 이내 소리를 질렀다.


역마!!


네? 뜻을 몰라서 한 말은 아니었다. 보살은 내게 역마살이 너무 세서 '평생 떠돌아다니다가 객사할 팔자'라고 했다. 어.. 집은요? 매년 바뀔거야! 안정적인 직장은? 니가 못버텨서 나와! 하는 일은? 음. 좋은 말만 듣고 싶어서 사주를 보러간 것은 아니다. 다만 그 보살의 퍼부음은 사주보단 저주에 가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 뒤로 몇 달. 회사가 대충 망한 뒤, 빚을 갚겠다고 서울을 들쑤시며 돈을 벌었다. 다소 정리를 했다 싶었더니 인세를 당겨받겠다고 계약했던 책 두 권이 삶을 다시 고정시켰다. 그 뒤로는 다시금 마감에 쫓기는 삶. 이걸 되찾았다고 해야 할지, 되돌아왔다고 해야 할지.


수면제, 잠, 일어나서 대충 때우는 밥, 인스턴트 커피를 물에 태워 책상에 앉기. 어, 내가 뭘 하려고 했더라? 하다가 경황없이 원고 파일을 연다. 분량으로는 일주일 전과 차이가 없다. 지난 일주일 동안 난 뭘했지? 글쓰다 지우는 일을 골백번은 반복한 것이 떠올랐다.


집안 공기가 답답해 환기를 했다. 별 차이가 없어 밖으로 나갔다. 대학동의 공기도 답답하기는 매 한가지였다. 이러니 환기가 의미가 없지, 하다가 맥없이 집으로 돌아갔다. 서울의 공기 한 줌, 사람 한 명 한 명이 내 목을 졸랐다.


난 머리가 비어 더 이상 토해낼 글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떻게든 손가락을 움직여보여야 숨통이 트였다. 생각해보면 그마저도 스트레스였다. 예전과 달라진 내 글. 단어 하나, 문장 한 줄을 쓸 때도 사람들의 반응을 가늠하며 쓰는 내 태도가 역겨워 견딜 수가 없었다. 이제 어떤 영혼으로 어떤 글을 써도 구독자는 줄어든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 것도 쓰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내 값어치에 악영향이 덜하다.


그건 사람들이 글을 읽지않고 단어를 보기 때문이야. 같은 말을 되뇌이다 내가 쓴 원고를 다시 쭉 훑었다. 구렸다. 그래, 구독자가 떨어지는 건 내 글이 구려서지 누구 탓이겠느냐고. 난 어제 쓴 문장을 다섯 줄 정도 지워버렸다. 그리곤 그 모양 그대로 두세 시간 정도를 그냥 앉아있다가, 침대에 누워 졸피뎀을 세 알 집어삼키고 기절하면 내일 저녁이 왔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이 어떤 가치가 있나? 내게 명확히 있는 거라곤 지난 날 영혼을 팔아 채운 통장잔고뿐이었다. 난 서울을 떠나기로 했다. 노트북 들어있는 메신저백을 둘러메고, 기약없이 집을 떠났다. 어딜 가든 글은 쓸 수 있다. 글을 완성하기 전까지는 이 멍청한 도시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자리에는 내가 떠나고 역마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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