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key spanner of Nazaret
*일러두기
- 해당 단편의 제목은 동명의 인터넷 밈에서 차용하였습니다. 어떠한 정치적, 종교적 목적이나 비하의 의도 없이 순수하게 즐거운 마음으로 쓴 글이며, 오락가락하는 표기와 고증, 서술상의 오류는 대체로 의도된 것입니다. 만일 본인이 독실한 신자이고, 신성모독에 관해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다면 읽지 않는 것도 방법입니다.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Monkey spanner of Nazaret
¶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복수는 나의 몫이니, 내가 갚겠다.”
그러자 제자들 가운데 혼자 졸지 않고 있던 바오로가 “선생님”하고 가로되 “감히 여쭈옵건대 방금 그건 로마서에 나오는 내용이 아닙니까?”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바오로를 지그시 노려보았다. 그 때 예수의 강렬한 눈빛 때문에 바오로는 불현듯 두려움을 느꼈으니, 일순간 온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고 고개가 절로 수그려졌다.
이윽고 예수께서 “그래서 그게 어쨌다는 거냐?”하고 바오로에게 물었다.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아니, 저, 그게, 그러니까…… 여기서 그렇게 말씀하시면 앞뒤가 안 맞잖습니까……? 로마서는 선생님이 죽고 나서 한참 뒤에 나온 것입니다. 아무래도 시간상 오류가, 개연성이 좀 떨어지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렇게 여쭈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예수께서는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휘휘 저으시며, “바오로야. 그건 내가 아니라 너의 몫이다. 나는 말하고 너는 쓰는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바오로의 머리에 안수하셨다.
이때 바오로는 또 처맞는 줄로만 알고 움찔거렸으니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또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내 너를 다른 제자와 같이 사랑하되, 방금 전의 질문에는 탄식을 금할 도리가 없다. 꼭 이럴 때에 말을 끊고 이교도였던 티를 내서야 되겠느냐? 더구나 나는 죽은 적이 없고 설정 상 사흘 뒤에 승천한 것으로 되어있는데, 네가 말하는 개연성은 대체 어느 나라에서 나온 어느 단어인지 알 수 없구나. 로마놈들은 다들 그렇게 지 멋대로 생각하고 결론내리는 게 국룰이라도 되는 것이냐.”
사지에 힘이 바짝 들어가 있던 바오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탄복하였다. 또한 창피한 마음에 얼굴이 새빨개져서, “선생님, 제 생각이 짧았습니다. 제 무례한 질문을 용서해주십시오.”하고 간청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용서라니 가당치도 않다. 애초에 인간은 그렇게 생겨먹었느니라. 예전부터 하찮기 짝이 없는 것에 의미부여를 하고…… 별 같잖은 상징을 다 가져다붙이는 동물이다. 또 애초에 너희 죄 많은 인간을 만든 것부터가 아버지이거늘, 내 너희를 미워한다면 아비를 욕보이는 호로자식이 아니겠느냐. 너무 괘념치 말아라.”라고 하셨다.
이때 단잠에서 깬 베드로가 끼어들어 “또, 또. 선생님.” 하고 예수님을 불러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런 말투는 좀 안 쓰시면 안 됩니까? 걔는 말하는 그거 그대로 쓸 텐데요. 후손들이 보면 우리가 진짜 이렇게 말하면서 살았던 줄 알 거 아녜요?”
“베드로야. 너어―는 진짜, 분위기 깨는 데는 뭐가 있다.”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으니, 베드로는 개의치 않고 다음과 같이 대꾸하였다. “아니, 선생님이 툭하면 무슨 애굽에서 돌 옮기던 시절 말투를 쓰시니까 드리는 말이잖아요. 개연성이고 나발이고 지나치게 근본이 없는 것 아닙니까.”
“베드로야, 이 멍텅구리 바보 똥개야.”
“갑자기 인신공격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나는 근본이 없는 것이 근본이다.” 하고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다. “어디 구약에는 앞뒤가 맞는 구석이 하나라도 있었냐? 처음부터 근본이 없었으면 끝까지 없어야 하는 거다. 그러면 근본이 없는 것이야말로 근본이 되니까. 개연성이고 핍진성이고 재미만 있으면 그만이야. 「젤다의 전설」 같은 것도 봐라. 그 게임하면서 스토리따지는 놈들이 어디 있냐? 링크인지 뭔지 걔는 나보다도 더 많이 부활하더구만…… 애초에 성경 같은 거에서 앞뒤 따지는 놈들이 잘못이야. 내가 장담하는데, 그런 놈들 다 지옥간다.”
“그렇게 함부로 보내도 괜찮은 겁니까? 지옥이라는 거”
“뭔 상관이야. 바오로가 알아서 잘 걸러서 써줄 텐데.”
“아, 네…….” 바오로는 못내 중얼거리듯이 대답하였다. “생각해보면 기록이라는 것도 여러가지니까요. 역사에도 정사가 있고 야사가 있고 그렇잖습니까. 삼국지연의 같은 케이스도 있고요. 대충 그런 컨셉으로 쓰면 되겠죠.”
여기에 가만히 듣고 있던 요한이 바오로에게 “니가 나관중이냐? 쓸 거면 좀 더 고결한 마음으로 기록을 남겨야지.”하고 핀잔을 주었으니 바오로는 다시 한 번 얼굴을 붉혔다. 예나 지금이나 글로 받아쓰는 따까리는 마음고생이 심하다.
곧 예수님이 베드로를 가리키며, “그리고 전부터 내가 이집트 얘기는 꺼내지 말라 그랬잖아. 불쾌하다니까.”하고 갈구셨다.
이에 베드로는 “이집트가 뭐 어때서요. 역사적인 사실 아닙니까? 출애굽기요.”하고 뻐기듯이 대답하였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가장 충직한 제자였으나 가끔씩 이렇게 아득바득 말대꾸를 하며 대들 때가 있었다. 그럴 때보면 꼭 허리춤에 칼을 차고 있었으니 우연이라기엔 심히 기묘하였다.
“야. 그렇게 치면 적벽대전도 마찬가지지. 역사적인 사실이기는 한데, 제갈량 같은 인간이 바람을 지 멋대로 부리길 했겠니? 그냥 얻어걸린 거야.” 요한이 베드로의 면전에다 대고 핀잔을 줬다. “선생님은 그냥 심했다고 보시는 거야. 출애굽기는…… 뭐 탈출했다는 거까진 좋은데 바다를 갈랐다느니 하늘에서 음식이 떨어졌다느니 하니까 너무 대놓고 소설 같잖아. 가짜를 너무 섞으면 진짜인 부분도 가짜인 줄 안다니까, 사람들이.”
“네 말이 옳다. 미원 다시다도 적당히 뿌려야 맛있는 거지. 기적이라는 것도 좀 소박한 맛이 있어야해. 물위를 걷는다든가, 빵이랑 물고기를 복사한다든가. 이런 건 얼마나 인간적이니?”
“듣고 보니 그것도 그러네요.” 베드로가 수긍하며 말했다. “근데 그때 그건 진짜 어떻게 한 겁니까? 역시 트릭 같은 게 있는 거죠? 눈에 안 보이게 소금쟁이 보법을 썼다거나.”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발끈해서는 “이것 봐라. 대놓고 보여줘도 못 믿는 불신자가 여기 있네.”하며 베드로를 크게 꾸짖으셨다. “근본이 뱃놈이라 버르장머리가 없다니까. 너 같은 돌머리 자식은 땅바닥에 거꾸로 꽂아 버려야 정신을 차릴 텐데.”
“아니, 그건 좀 심한데요.” 베드로가 말하였다.
“심하긴 뭐가 심해. 지금 당장 해줄까? 저짝 무술 중에 저먼수플렉스라고 있어…… 이게 실전에서 쓰긴 난이도가 있어서 그렇지, 제대로 들어가면 뼈도 못 추린다니까.”
“선생님. 고정하세요. 선생님이 진심으로 해버렸다간 아무리 베드로라도 한 방에 죽을 겁니다.” 때마침 뒷간에서 나온 야곱이 예수님을 말리고 들었다. “얼마 전에 예배당에서도 크게 사고를 치셨잖아요.”
그러자 예수께서는 야곱을 단번에 내치시며 말씀하셨다. “야, 말은 똑바로 해라. 그게 왜 사고야. 정당방위지. 누가 함부로 니 아빠 집에서 치킨팔고 그래봐. 너 같으면 화 안 나겠냐?”
“그건 맞죠. 맞는데…… 법은 안 그렇다 뭐 그런 거죠. 성전모독인가 뭔가로 체포당할걸요. 당분간은 몸을 사리셔야지 않겠습니까.” 바오로가 말했다.
“그 얘기도 아주 지긋지긋해. 하여간 그놈의 법이란 건 왜 만들어가지고.”
“그건 십계명도 마찬가지잖아요.”
“그걸 내가 했냐? 아버지가 했지.” 예수님이 마른 세수를 몇 번 하시며 개탄하셨다. “하여간 인간 놈들이란…… 왜 죄 같은 걸 짓고 사는 거냐? 이웃끼리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면 좀 좋냐고.”
곁에 있던 요한이 “제 말이 그 말입니다.”하고 거들었다.
그즈음 예루살렘의 저잣거리에는 괴상한 소문이 돌았다. 그 소문의 내용인즉 다음과 같았다.
‘나사렛 출신의 예수라는 자는 거대한 지하조직의 보스인데, 곧 자신의 세력을 이끌고 예루살렘에 당도할 예정이다.’
이 소식은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 총독부에도 전해져서, 총독인 폰티우스 필라투스의 귀에도 들어갔다.
“……여기 유대 땅에도 마피아 같은 게 있었냐? 그런 건 본국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보고를 받은 필라투스 장군은 뜻밖의 사실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의 반응에 불쾌한 기색은 딱히 없었으니, 오히려 새로운 정보를 접하게 되어 흥미롭다는 뉘앙스에 가까웠다. “그래서 뭐…… 반란이라도 일으킨대냐? 유대인의 땅을 돌려달라느니 어쨌느니 하는?”
“아뇨. 그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왜냐면” 보고를 위해 총독실에 찾아온 병사가 말했다. “같은 유대인들도 엄청 싫어하거든요. 성전에 가서 율법학자들이랑 말싸움하고 그런대요.”
“딱히 민족적인 움직임은 아니다?”
“네. 여기저기서 들어본 바에 의하면. 반정부적이거나 그런 건 없었습니다. 오히려 유대교 제사장들끼리 더 난리에요. 자기들 교리를 지나치게 비하하고 무시한다면서요. 어떤 사람은 그 자를 신의 아들이라고도 합니다.”
“이러나저러나 비범한 친구네…… 하긴 유대교 율법에는 짜증나는 면이 있지. 도저히 듣고 있기가 힘들어. 우리 쪽이야 얘네 토속신앙이라 치고 그냥 내버려두는 거지만. 아니, 그럼 지들끼리 알아서 처분하면 되는 것 아니냐? 나사렛 출신이면 우리 관할도 아닌 것 같은데.” 장군이 되물었다.
“한데 그러기에는 또 너무 쎄다 이거죠. 이미 유대인들 자체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레벨이 아니라고 합니다. 애초에 목수집안 출신이라 힘도 장사인데, 성인이 되자마자 광야를 떠돌아다니면서 수 년 간 수련을 거치고 와서는 아무도 감당할 수가 없게 됐다나요. 광야에서 대체 어떻게 단련을 했는지…… 악마도 세 번이나 도전했다가 세 번 다 죽도록 처맞았답니다. 그 유명한 미치광이 요한도 예수한테는 보자마자 존댓말을 썼다고 하고요.”
“아, 요한. 낙타 가죽 덮어쓰고 다니는 그 친구.”
“네.”
“걔가 존댓말이라는 것도 할 줄 알았구나. 걔 내가 볼 땐 완전 또라이던데. 그네 왕이란 작자한테도 욕하던 친구 아니냐?”
“맞습니다. 저주란 저주는 다 퍼붓고 다녀요. 아마 요새도 그럴걸요.”
“그런 놈이 보자마자 존댓말을 쓸 정도란 말이지…… 잠깐만, 그 친구 이름이 뭐라고?”
“예수입니다. 나사렛 출신의.”
“그렇게 쎄보이는 이름 같지는 않은데.”
“아닙니다. 완전 갱스터에요.” 병사는 딱 잘라 대답했다. “잘못 건드렸다가 피본 사람이 한 둘이 아닙니다. 오죽하면 별명이 ‘나사렛의 몽키스패너’라고요.”
“몽키스패너? 그건 천팔백 년은 지나야 나오는 물건이잖아.” 장군은 어이없다는 투로 되물었다.
“뭐, 그만큼 시대를 앞서간 파워였다 이거죠. 하여간 저희 쪽에선 웬만해서 안 건드리는 게 나을 것 같습니다. 굳이 사서 말썽을 피우는 인물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러게. 이런 시국에 괜한 사람 건드렸다가 좋을 것도 없고 말이야. 그래도 한 번쯤 보고 싶긴 하군. 어떤 인간인지 궁금해. 나사렛의 몽키스패너라니…… 완전 멋있는 별명이잖아. 나도 그런 거 하나 있으면 좋겠는데.”
“예를 들면요?”
“뭐, ‘지중해의 푸른 도끼’ 같은 거? 이런 거 멋있지 않니?”
“그냥 본시오 빌라도로 만족하시죠.”
“유대인들은 다 혀가 짧은가봐. 멀쩡한 이름을 이상하게 부른다니까. 폰티우스 필라투스가 뭐 어려운 이름이라고.” 장군은 왜인지 억울하다는 듯 투덜거렸다.
“음차라는 게 다 그런 거죠. 그 왜, 미움 받는 외국인은 현지화 된 이름으로 불리고 그렇잖습니까. 풍신수길이네 이등박문이네 하는 것처럼.”
“그건 음차랑은 좀 다른 것 같은데.”
“하여간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아니, 예수라는 작자는 그냥 내버려두는 걸로 하는 게 어떻습니까? 그 양반, 가는 동네마다 한 주먹 한다는 친구들이 스승님으로 모시고 따른답니다. 괜히 자극해서 좋을 것 하나 없을 거에요.”
“얼마나 무시무시하게 생겼길래?”
“어떻게 생긴 거의 문제가 아니고요. 신의 아들인지 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인간이 아닌 것 같긴 합니다. 그 뭐라고 해야 하나, 막 분위기 같은 게 있다니까요. 근본적으로 인간을 압도하는 오오라같은 게…… 거기에 성격도 겉잡기 어려우니까 더 조심해야합니다. 얼마 전에는 앉은뱅이한테 일어나서 걸어보라고 하는데. 애가 얼마나 쫄았던지 지가 앉은뱅이인 것도 모르고 일어나서 걷는 척을 하더라고요. 놀랍지 않습니까?” 병사는 아주 학을 뗐다는 식으로, 손바닥을 들어 휘휘 저어보였다.
“난 걔 진즉에 사기꾼인 줄 알았어. 아무리 봐도 그 앉은 자세가 이상했다니까.” 필라투스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아무튼 알았다. 나로선 그런 인물이 있다는 것 정도만 알아두지. 크게 관여하진 않겠어. 반로마적인 인물도 아닌 것 같고. 잡아넣을 만큼 큰 사고를 치고 다니는 것도 아닌 것 같으니까…… 그래도 민중 소요가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으니, 심상찮은 정보가 떠돈다 하면 그때그때 보고해주게.”
“알겠습니다. 그럼.” 병사는 군대식 경례를 한 차례 하고, 총독실에서 뒤돌아 나왔다. 아치모양으로 난 창문으로부터 새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평화로운 로마 속주, 유대왕국의 하루였다.
¶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우리들 중에 스파이가 있는 것 같다.”
기다란 탁자에 모여 앉아있던 열두 제자들은 제각기 놀라고, 경악하는 반면 애써 침착한 표정을 유지하려는 이도 있었다.
“그게 어떤 후레자식입니까? 말씀 해주십시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하나입니까?” 하고 요한이 묻자, 예수님은 가만히 있다 고개를 끄덕이셨다.
“으아아!” 흥분한 베드로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칼을 끄집어내며 소리쳤다. “대체 누구죠? 제가 죽여버리겠습니다. 그 배신자의 뼈와 살을 분리해서 물고기 밥으로 던져주겠습니다…… 어느 놈이냐? 빨리 자수하고 광명 찾아.”
“이봐, 베드로. 칼은 집어넣고 이야기하는 게 어때.”
“맞아. 그렇게 급발진하는 걸 보니 오히려 네가 의심이 되는데?”
“뭐, 임마?” 베드로는 분노에 가득 차 새빨개진 얼굴로 안드레아를 몰아붙였다. “너 이 새끼, 감히 누구를 의심하는 거야? 이 중에서 죽어도 선생님을 배신하지 않을 자가 단 한 명 있다면, 그건 두말할 것 없이 나야.”
그러자 예수께서 “베드로야, 그건 아닌 것 같다.”하고 고개를 저으며 말씀하셨다. 순간 베드로를 제외한 모든 제자들이 웃음을 감추지 않았다.
“선생님! 어찌 선생님마저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제 믿음이 얼마나 굳건한지 알고 계시면서요.” 베드로는 몰려드는 창피함에 안절부절못하며 호소하였다.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지는 알고 있지.” 예수님은 마침내 눈을 뜨셨다. 그리고 오른쪽 어깨 너머의 베드로를 슬쩍 올려다보며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내가 보기에 넌 아직 나약하다. 내가 잡혀가고 나면 너는 군중 속에서 나의 죽음을 지켜보겠지만…… 휘말리는 게 두려운 나머지 나를 모른 척 할 것이다. 해뜨기 전까지 세 번은 그럴 걸.”
“아뇨. 저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겁니다. 다른 제자들이면 몰라도.” 베드로는 확신에 가득 찬 투로 대답했다. “제 인생에서 이렇게 확신에 가득 찬 상태로 대답한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이 말이 거짓말이라면 제 불알털을 다 밀어도 좋습니다. 복음서에도 적어두십시오. 그만큼 자신있으니까요.”
“베드로야. 말해두지만 그건 인간적인 감정이란다. 네가 나한테 가장 말대꾸를 많이 하는 제자라는 것과는 관계없는 일이야. 나는 그런 것들까지 모두 사랑한단다. 그런 나약함은 구태여 용서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지.”
“하지만, 하지만……”
“물론 네가 날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예수는 다른 제자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베드로의 어깨에 입술을 대고 속삭이셨다. “그냥 가만히 있으라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 될 수도 있으니까.”
“선생님……”
“자, 자. 솔직히 말하지만…… 나는 여기서 누가 나를 배신을 했냐 하는 건 개의치 않는다. 늦든 빠르든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이었어. 내가 뜻한 대로 행했고,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으니 누구를 탓하겠니? ……중요한 건 오늘이 우리의 마지막 만찬이라는 거야. 내일이 되기 무섭게 로마군이 들이닥칠 테니까. 이것이 내가 너희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이다.”
“선생님, 그런 말씀하지 마세요.”
“맞아요. 우리가 선생님을 지키겠습니다. 그까짓 로마 놈들, 덤벼드는 족족 허리를 접어버리면 그만이에요! 만일 죽더라도 선생님과 함께 끝까지 싸우다 죽겠습니다. 그러니 선생님께서도 끝까지 싸우시는 것이……”
“그건 안 될 일이다. 나 홀로 죽으러 가면 그만인 문제에, 우리 가족 전체를 말려들게 할 순 없어. 폭력적으로 저항할수록 남은 인간들이 받을 박해가 더 심해지겠지. 그렇게 하면 나야말로 너희들 인간의 배신자가 되는 거다. 봐라. 너희들, 날 존경한다고 해서 제자로 따라와 놓고서는…… 마지막에 와서 내 이름을 욕보일 테냐? 정말 그럴 거야?”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 모두가 침묵하였다. 지금은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애초에 인간에게는 선택지랄 것이 거의 없었다…… 이제는 그들 모두가 알게 되었다. 그때의 침묵은 몹시 나약하고 가난했지만, 두고두고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아 곱씹어질 만큼 고결하였다.
“빌어먹을. 다들 얼굴근육 좀 펼 수 없겠냐? 예루살렘에 온 뒤로는 처음이잖아. 우리끼리 오붓하게 지내는 것 말이야. 이렇게 분위기 작살날 줄 알았으면 얘기도 안 하는 건데…… 난 너희들이 농담인 줄 알고 웃을 줄 알았어. 그러다가 진짜 병사들이 들이닥쳐서 날 잡아가면 몰래카메라 완성이잖아.”
“이제 와서 말하는 거지만, 선생님은 진짜 유머감각이 빵점입니다.” 토마가 울먹거리면서 대꾸했다.
“그러냐. 나는 내가 꽤 재밌는 놈인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에요.” 가장 끝자리에 앉아있던 시몬이 거들었다.
“아, 됐고. 너네들 뭐하고 있냐? 빨리 술잔 들어. 거국적으로 한 잔 하자고. 오늘이 마지막이면 죽어라 마시고 놀아야지, 질질 짜고 있을 시간이 어딨어? ……한 잔 씩들 쭉 마셔. 쭉. 아직 잡혀가지도 않았고 죽지도 않았는데 왜 벌써부터 울상이 돼있냐.”
“내일이 되면 선생님이 저희를 위해서 피를 흘리실 텐데…… 어떻게 마음 편히 술잔이나 기울일 수 있겠어요?” 아고보는 술잔과 그 표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번갈아 보며 말했다.
“바보냐? 그러니까 오히려 지금을 즐겨야지.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두려워할 필요도 없는 거야…… 빨리 마셔! 마음이 영 그러면 술이 아니고 내가 너희를 위해서 흘린 피라고 생각하고 마셔라. 지금 원샷 못하면 지옥 간다. 이거 진심이야.”
“선생님은, 언제는 진심이 아니었던 적이 있으셨나요?” 요한이 잔을 들어 올리며 물었다.
“아니.” 예수님이 대답하셨다.
“……그럼 다들 마십시다. 선생님께서 이렇게까지 말씀하시잖아요. 우리를 위해 흘린 피라고 생각하고 끝까지 마십시다. 오늘 한 번 끝까지 달려보자고요. 안주라고 해도 누룩 없는 빵밖에 없지만…… 우리가 언제 안주 가려가면서 마셨나요? 우리 전부는 어차피 언제 죽을지 모르는 운명이었어요. 선생님이 제자로 거둬주지 않으셨다면 지금쯤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을 수도 있고요. 그런 선생님이 내일 돌아가신다고 한들, 우리는 모레와 글피를 계속해서 살아가야 합니다. 시름에 빠져서 지금을 어영부영 보내는 것이야말로 선생님을 배신하는 일 아니에요? 그러니까 마셔요. 전부 곯아떨어져서, 선생님이 맘 편히 하늘나라로 돌아가시게 해드리자고요.”
“요한, 너는 정말 마음에 안 드는 놈이야.” 베드로는 칼을 도로 집어넣었다. 그러고 나서 술잔을 나란히 들어 올리며 말했다. “그래도 방금 말은 꽤 괜찮았다고 인정해야겠어. 좋아, 마시자. 오늘이 정말 마지막 남은 하루인 것처럼 마셔보자고.”
“당신이 제 편을 들어주다니 참 고맙네요.”하고 요한이 말했다. 제자들은 하나둘 술잔을 들어 올려 보이고는, 그 포도주들이 정말로 예수님의 피인 양 조심스럽게 마시기 시작했다. 실수로 흘린 몇 방울까지 깨끗이 핥아 먹었다.
그런 제자들의 모습을 죽 지켜보던 예수님은, 스스로 목을 축이신 다음 말씀하셨다. “……그동안 너희들과 함께할 수 있어서 정말 즐거웠다. 너희들은 정말 좋은 녀석들이야.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것도 그리 나쁘지 않은 것 같아.”
“선생님! 죽지마세요!” 제자 한 명이 예수님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울며 애원하였다. “제발 저희와 함께 있어주세요.”
예수님은 제자의 머리를 자애롭게 쓰다듬으면서, “멍청하긴. 내가 정말로 죽을 것 같냐?”하고 말씀하셨다. “사지를 찢든 십자가에 매달든 나는 절대로 죽지 않아. 인간은 날 죽일 수 없다. 난 그저 때가 되었기 때문에 돌아갈 뿐이야…… 신의 아들이잖니?”
“선생님이 신의 아들이라뇨. 나사렛의 몽키스패너겠죠…….”
“몇 번 얘기하지만, 나는 몽키스패너 쓴 적도 없다. 그건 먼 나중에나 나오는 도구라니까.”
“그만큼 선생님이 인간의 역사를 초월한 힘을 갖고 계셨다, 뭐 그런 의미 아니겠습니까? 헤헤…….” 만취한 베드로가 어깨를 씰룩거리며 말했다.
‘……역시 신의 아들인 쪽이 좋겠어.’ 예수님이 술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생각하셨다.
새벽나절이 되자 제자들은 술기운에 비틀거리기 시작했고, 머잖아 나무기둥이며 언덕 밭떼기에 자리를 잡고 잠에 들었다. 오직 한 명, 말술 중의 말술이었던 예수님만이 정신을 똑바로 잡고 계셨다. 신체능력이 탈인간 수준이셨던 예수님은 초월적인 간 해독 능력 역시 갖추셨던 것이다.
예수님은 술에 떡이 돼서 잠든 제자 일동들을 좌우로 훑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뒤꼍 언덕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장막처럼 펼쳐진 올리브 숲 너머로 평탄한 산마루가 가로놓였다.
해가 뜨기 직전의 겟세마니 동산은 몹시 어두침침했다. 예수님은 몇 번씩 발을 헛딛으면서, 겨우겨우 언덕 기슭에 올랐다. 적당한 높이의 바위에 걸터앉아 기도와 탄식을 번갈아하셨다.
‘이렇게 될 줄 알고는 있었지만. 그래도 기분 참 거지같네…… 어디 담배 없나?’ 예수님은 옷깃 안쪽과 소매를 몇 번 더듬어보았다. 허나 그런 게 있을 리 없었다. 담배는 중남미가 원산지인 여러해살이풀로서, 16세기나 되서야 구대륙에 전파되었기 때문이다. 신통력 따위를 사용해 즉석에서 만들어내도 좋았겠지만, 어쩐지 내키지 않아 관두기로 했다. ‘됐다, 됐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런 삽질을…….’
땅이 꺼져라 뱉은 한숨위로 예루살렘의 야광이 비쳐보였다. 성곽을 따라 점선을 그리고 있는 횃불들, 이따금 마을 저잣거리에 놓여있는 화롯불들…… 외로이 우는 귀뚜라미 소리 너머로 인기척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예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다. 때가 온 것이다.
‘줄잡아 열 명…… 아니. 스무 명인가?’
이내 수십 명의 로마병사들이 예수를 에워싸고 섰다. 날카로운 창과 방패로 무장한 무리들이었다. 잘 훈련된 병사들은 신속하게 포위대열을 갖춰가면서도 입도 뻥끗하지 않았다. 저벅거리는 발소리와 갑옷 이음새 부딪는 소리만이 잠깐 있었을 뿐이다.
예수님은 “이거, 깡패 한 명 잡으려고 너무 많은 병력을 보낸 것 아닌가?”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찬찬히 일어나서 앉아있던 자리를 몇 차례 털어냈다. 주위가 어찌나 조용한지, 땅바닥에 자갈 흩뿌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들릴 정도였다. “이렇게 귀한 곳에, 누추한 분들이 오느라 수고가 많으셨겠어들…… 해서, 누가 책임자야? 거기 가만히 서있을 거냐, 아니면 누가 와서 잡아가든가 할 테냐?”
병사들이 서있는 곳 가운데에 한 사람이 겨우 걸어 지날만한 너비의 길이 생겼다. 그 길을 따라 건장한 군인장교가 뚜벅뚜벅 걸어 나왔다. 그 시대 사람치고 체구가 얼마나 거대했는지 하마터면 뒤에 사람 한 명이 뒤따라오는 것도 못 알아차릴 뻔했다.
무장된 병사들과 달리 값싼 모직물옷을 덮어쓴 그 남자는, 그길로 예수님 앞에 걸어와 어깨에 손을 올린다음 입을 맞추었다.
“이 자가 나사렛 예수다.”
그러자 가만히 서있던 병사 몇 명이 다가와 예수의 몸을 겁박했다. 예수는 그 어떤 저항도 없이, 자신을 묶는 손놀림에 순순히 몸을 맡겼다. 시시한 체포였다.
다만 예수는 남자에게 “유다야.”하고 말을 건넸는데, 그 남자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행렬을 떠나려 들었다. “내가 딴 건 묻지 않으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하나만 물어볼 테니까 대답 좀 해줄래?”
이 말을 듣고 도망치듯 멀어져가던 남자가 발걸음을 멈춰 세웠다. “……뭡니까?”
“그래서 얼마 받기로 한 거냐? 대충 향유 값 정도는 나왔겠지?”
“30전입니다.” 유다가 대답했다.
“겨우 서른 개? 이러고 평생 배신자라고 욕먹으면 보험료라도 나오냐?” 예수가 웃음을 터트리며 재차 물었다.
“아뇨. 하지만 선생님은 얼마든지 여기서 벗어날 수 있지 않습니까? 여기 있는 병사들을 쓰러트리고 저를 죽일 수도 있으시겠죠. 별명도 나사렛의 몽키스패너이시니까.” 유다는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딱히 그렇지만도 않아.”
“그렇게 대단한 힘을 갖고 있으면서, 왜 쓰지 않으십니까? 어째서 약자들을 위해 싸우지 않으시는 거죠?”
“그건 바보 같은 질문이구나. 유다야,” 예수가 말했다. “약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인간이란다.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모두가 약자지.”
“…….”
유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뒤돌아 떠났다.
겟세마니 동산 저편에서 동이 터왔다. 때는 사월, 몹시 무더운 하루가 시작되고 있었다. 예수는 수십 명의 병사들에게 둘러싸인 채 언덕을 타고 내려왔다. 조금 전까지 술에 취해 누워있던 제자들은 전부 도망치고 없었다.
그 무렵 필라투스는 골치 아픈 상황에 놓여있었다. 얼마전 로마 본국의 사정이 급변하면서, 그의 뒤를 봐주던 후견인이 숙청된 것이다. 당초 필라투스가 유다 속주의 총독이 된 데에도 후견인의 입김이 작용했다. 때문에 앞으로 총독 자리를 유지할 수 있을지, 혹 그렇지 않아서 귀국하게 될 경우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어떻게 될지, 문자 그대로 앞날이 불투명한 상태였다.
유월절을 앞두고 떠들썩해진 유대 왕국의 분위기도 심란하긴 마찬가지였다. 민족주의자들의 반로마운동이 크고 작은 소요로 이어지고 있었다. 간신히 큰 규모의 폭동이나 반란으로 연결되기 전에 진압했지만, 이 과정에서 반란세력의 핵심인물이었던 바랍바를 구금한 것이 화근이었다. 그는 시한폭탄이었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시국에, 그 바랍바를 구한다는 명목으로 일부 과격파가 군사라도 일으킨다면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될 게 뻔했다.
필라투스로서는 어떻게든 바랍바를 합법적인 방식으로 석방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일부 세력의 반란은 그때그때 저지해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나 민중 전체가 들고 일어났을 땐 전쟁으로 이어진다…… 뭐,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지만. 최소한 가능성 정도는 생기게 된다. 총독 자리도 아슬아슬한 마당인데. 전쟁의 가능성 같은 건 사전에 차단해두는 쪽이 좋았다.
따라서 바랍바 쯤이야 때마침 다가올 유월절에 특사로 풀어주는 게 적당했다. 그 정도면 딱히 정치적인 결정 같지도 않다. ‘유대교의 명절을 존중하는 총독’이 ‘황제 폐하의 자비를 베풀어주는’ 그림이다. 그쪽이 본국으로서나 현지로서나 좋은 게 좋은 결정이었는데.
―딱 그쯤해서 예수가 나타난 것이다.
예루살렘에 입성할 무렵 예수의 인기는 그야말로 절정에 달해 있었다. 창문마다 목을 쭉 빼놓고 환호성을 지르는가 하면, 예수가 지나가는 길에다 옷가지와 나뭇가지들을 깔아놓을 정도였다. 예수의 제자들은 예상치 못한 환대에 당황했고, 감탄했으며, 나아가서는 스승의 위대함을 나눠가진 듯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다만 예루살렘의 민중들이 예수에게 열광한데에는 대충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로마의 속주에 속해있던 그 시기의 유대왕국은 일종의 괴뢰정부처럼 여겨진 모양이다. 그야 그곳은 명목상 유대인들의 왕국이었다. 헤로데 안티파스라는 왕과 자치적인 의회도 엄연히 존재했다. 그러나 오래전 이집트 시절부터 식민지배에 이골이 나있던 유대인들로서는 이런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 같다.
때문에 언젠가는 진정한 예언자, 메시아가 나타나―오랜 옛날, 모세가 그랬던 것처럼―유대인들을 이끌어 주리라 믿은 것이다. 그랬으면 하는 게 아니라 반드시 그래야했다. 그들의 신이 그렇게 약속했으니까. 버티고 버티다보면 누군가가 나타날 것이었다. 그는 로마의 악당들, 이단자들을 전부 몰아낸 뒤, 부패한 성전을 바로 세울 것이며, 수천 년간 쫓기고 핍박받아왔던 그들을 위해 진정한 유대인들의 나라를 세워줄 것이다. 그 시기가 유대인들에겐 바로 그 때였다. 로마제국의 치세는 어수선하고, 왕실과 의회는 탐욕에 눈이 멀었으며, 율법학자는 날이 갈수록 헛소리만 늘고 있다. 이보다 더 상황이 나빠질 수 있나? 이쯤 되면 누가 나오든 나올 때가 됐다…….
이러한 민족적 요구에 부합하는 영웅이 바로 세례자 요한이었다. 그는 오염된 유대왕국,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급급한 율법학자들을 노골적으로 비판했고, 낙타 가죽으로 된 옷을 입은 채 광야를 떠돌아다녔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했다. 때가 머지않았다고.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회개하고 민족적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고. 비록 바랍바처럼 칼을 빼들고 반란을 일으키지 않았더라도, 그런 세례자 요한이 유대인들의 정신적 지주역할을 하고 있었음은 자명했다. 그 당시 유대민족주의와 근현대의 인종주의를 빗대보자면, 대충 바랍바는 말콤엑스고 세례자 요한은 마틴 루터 킹 같은 존재가 아니었을까. 물론 입은 세례자 요한쪽이 더 험했던 것 같지만.
아무튼 그 세례자 요한의 존재가 유대속주의 왕 헤로데와 율법학자들에게 눈엣가시였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결국 요한은 헤로데에게 잡혀 죽었고, 바랍바는 대놓고 저항군을 이끌다 체포돼버렸다. 더구나 유월절이 다가오던 참이었다. 유월절이 무슨 날인가? 모세의 기적으로 이집트에서 빠져나온 날을 기념하는 명절, 말하자면 유대인들의 독립기념일이다. 그런 날에 누군가가 짠, 하고 나타나서 유대민족을 구원해준다면? 그야말로 구약의 예언이 다시 한 번 이루어지는 셈이다. 근데 혁명을 이끌만한 유대 지도자는 죄다 잡혀가거나 목숨을 잃었다. 단 한 명, 나사렛 예수를 빼고.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심지어 ‘그 요한’이 “님 정도 되는 분이 왜 저한테 세례 받으세요?”하는 소리도 들었단다. 또 힘도 센데 말발은 더 세서, 그의 앞에서는 바리새든 사두개든 거품을 물고 쓰러졌다. 어디 그 뿐인가. 대관절 무슨 조화인지 물위를 걸어 다니질 않나, 빵 다섯 개와 생선 두 마리로 오천 명한테 무료급식을 해주고, 손 한 번 갖다 댔을 뿐인데 앉은뱅이가 벌떡 서고 소경이 눈을 뜨며 나병이 깨끗이 나았다고 한다. 그런 자가 제자들을 이끌고 유월절 무렵에 예루살렘에 당도한다니! 이거야 원 기대를 안 하려야 안 할 수가 없지 않은가? 하다못해 로마 총독 필라투스조차 ‘뭐야, 이번에는 진짜인가?’하는 생각을 한 번 쯤은 했을 것이다. 유대인들의 신화가 맞고, 자기네들이 예언서에 나오는 악당이 아닌가 하는 생각.
“……아니, 그럼 내가 어렸을 때 들은 건 뭔데? 제우스랑, 헤라랑, 아프로디테가 다 지어낸 얘기였다고? 그 좆되는 트로이목마도? 포세이돈이랑 삼지창, 거대오징어 다리도 다 구라고 뻥이다 이거냐?” 필라투스는 로마법정의 가장 높은 자리에 앉아있었지만, 곤란한 듯 땀을 뻘뻘 흘리는 것이 피고석에 선 예수보다 더 죄인 같아 보였다. “이봐,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아니, 예수, 유대교가 유일신 신앙인 건 알고 있는데…… 좀 너무 한 거 아닌가? 그냥 각자 좋아하는 거 믿고 살면 되는 거지. 믿는 방식이 좀 다르다고 해서 그렇게 심하게 말할 필요는 없잖아.”
“아, 난 너네 신한테는 딱히 감정 없어. 그건 니들끼리 알아서 할 문제고……” 예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엄밀히 말하면 이건 우리들끼리의 문제이기는 해. 지금의 율법이나 제사 같은 게 좆같다는 얘기지. 지금 애들은 복음에 나온 거 반대로만 하고 있다고. 얼마나 하는 짓들이 개판인지, 당신도 대충은 알 것 아닌가? 빌라도씨……”
“야! 빌라도씨가 뭐야, 빌라도씨가? 총독님이라고 해야지!” 재판장 한 쪽에 있던 병사가 나무라듯 소리쳤다. “여기 법정안은 로마다. 예수, 네가 갈릴리인이든 뭐든 상관없어. 너희 유대민족들이 네 신변을 로마에게 넘겼고, 따라서 넌 로마의 법에 따라 처벌받게 될 것이다. 네 생사는 순전히 총독님의 결정에 달려 있…….”
“아니, 아냐. 됐어! 빌라도씨 정도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 난 상관없어.” 필라투스는 손바닥을 내밀어 병사의 말을 가로막았다.
“하, 하지만, 총독님…….”
“됐다니까. 나는…… 그냥 궁금할 뿐이야.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몽키스패너 쓴 적 없는데.” 예수가 말허리를 자르고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그거 좀 불쾌하거든. 다른 호칭으로 불러줄 수 없을까? 내가 무슨 조직폭력단 두목은 아니잖아.”
“난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말은 똑바로 하자고. 내가 술을 좋아해서, 좀 취한 상태로 기행을 많이 하기는 했어. 근데 나를 조폭 두목으로 생각하고 잡아왔으면 그럴만한 증거가 있어야하는 거 아니냐? 너희 로마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라는 것도 없냐?”
“미안하지만, 증인이 있어. 네 따까리가 다 불었거든. 이미 현상금도 받아갔어. 이름이 뭐였더라, 그, 그…… 이스, 이스카리옷이었나……”
“유다.”
“아, 그래! 유다였어. 이스카리옷 유다.” 필라투스는 손가락을 딱 하고 튕겼다. 그 역겨운 배신자의 이름을 떠올려낸 일이, 정말로 기쁘다는 것처럼 그랬다. “걔가 너희 쪽에서 간부 같은 역할이었다지. 하여간 걔가 그랬어. 네가 반정부적인 비밀결사의 대장이라고. 가는 곳마다 깽판을 치고 다녔다던데. 이번에는 예루살렘에서 그러는 걸 현장에서 고발한 거고 말이야.”
“넌, 걔가 한 말을 믿냐? 진짜?” 예수는 별 같잖은 얘길 듣는다는 둥 기겁하는 얼굴로 되물었다. “제발. 그 새끼 이름을 봐봐. 유다라고. 로마 총독씩이나 돼서, 유다 같은 놈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거냐? 정말로?
“뭐, 유다는 흔한 이름이잖아. 여기 이름도 유대왕국이고…… 너희한테는 뭐랄까, ‘김한국’ 같은 이름 아니었어? 길가다 유다라고 부르면 열두 명은 뒤돌아볼 것 같은데.”
“그렇게 치면 예수도 흔하디흔한 이름이지…… 지금 갇혀있는 바랍바? 걔도 예수 아니었냐?”
“맞아. 걔도 ‘예수 바랍바’였지…… 내 생각엔 사람들이 너랑 바랍바를 혼동하는 것 같기도 해. 그러니까……”
“그래도 몽키스패너는 안 돼.” 예수는 근엄한 투로 잘라 말했다. “고증오류라고. 이런 사소한 것들이 나중에 글로 옮겨 쓸 때 얼마나 골치 아픈 줄 아냐?”
“네가 쓰는 것도 아니잖아.”
“내 사랑하는 제자 중 한 명이 쓰겠지. 아니, 몇 명은……” 예수가 멋쩍게 대꾸했다. 필라투스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사랑하는 제자라니! 그런데 어째 여기는 너 하나밖에 없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한 명 정도는 의리를 지켜야 하는 거 아닌가? 매정하기도 하지…… 그러고 보니 너도 참 자괴감이 많이 들겠어. 네가 걔네 발까지 씻겨주고 그랬었다며?”
“그건 내 술버릇이야.”
“이상한 술버릇도 다 있네. 아무리 그래도 제자들이 배신한 건 괘씸한데? 그렇지 않나?” 필라투스는 돌연 눈을 크게 떠 보이고, 새삼스럽다는 듯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솔직히 말해서, 내가 봐도 딱히 네가 반로마적인 인물처럼 보이진 않아. 가둬놓거나 죽여야 할 만큼의 죄를 저지르지도 않았고. 너희 성전, 너희 율법학자들이랑 생긴 일은 내 알바도 아니지. 난 그냥…… 내가 왜 이런 데에 시간을 낭비해야하는지 모르겠군. 너처럼 별 볼 일 없는 인간이 법정에 서 있는 거지? 네가 정말로 잘못한 게 있나? 내가 들은 바로는…… 너는 이웃끼리 사랑하면서 살라고 했지. 맞나?”
“그래.” 예수가 대답했다. “내가 그렇게 말했어.”
“좋아, 좋아! 그렇게 인정하는 자세…… 그런데 난 얼핏 듣기로는 괜찮은 말 같거든. 오히려 꽤 멋지다고까지 생각해. 뭐 생각없이 말할 순 있겠지. 좋게좋게 좀 지내라고. 그런데 요즘 같은 시대에, 너처럼 보잘 것 없는 태생으로 태어나서 그런 말을 하고 다니는 건, 솔직히 좀 대단하다고 느꼈어. 이건 진심이야. 난 그 미치광이 요한이 한 말도 들었었지만…… 거기에 딱히 공감이 가는 내용은 없었다고. 그 친구가 말하는 신은 정말 무섭지. 아무튼 너희는 죄를 지었으니까 회개를 해라, 안 그럼 뭐가 잘못돼도 분명히 잘못될 거다, 그런 얘기였으니까. 그 친구 말만 들어보면 너희 유대교의 신은 하루 종일 인간을 어떻게 벌줄지, 내일은 또 어떤 시련을 줄지 밖에 고민하지 않는 존재 같았어. 하지만 당신이 한 얘기는 꽤 마음에 와닿는 면이 있더군. 거기서 내 말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말해. 별 생각없으니까.” 예수는 진짜 하나도 신경 쓰지 않는 태도로 대꾸했다. 주변에 서있던 병사들도 그런 예수의 언행에 더는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정말이지 이 대화는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예의가 없거나 무례한 걸 따지기에는.
“당신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지만, 요한과는 전혀 다른 말과 행동을 했어. 아닌가? 당신은 가난하고 핍박받는 자들의 편이었어. 사람들이 화풀이로 창녀에게 돌을 던지는 걸 막았고, 눈멀고 병든 사람들과 거리낌 없이 지냈지. 그들을 정말로 치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선 그런 게 중요한 건 아니지. 물 위를 걸어 다녔다거나, 돌을 빵으로 만든다거나 하는 건 당신에게 아무런 일도 아니야. 내 말이 맞지?”
“……그래. 그런 건 전혀 중요하지 않아.”라고 말하는 예수는 보일 듯 말듯 아주 엷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러나 그 미소는 다소간의 기쁨이나 즐거움이 아니라, 가늠할 수 없는 깊이의 슬픔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이었다. 냉소도 조소도 아닌. 예수의 그 얼굴은 차라리 펑펑 우는 것보다도 슬퍼보였다. “이제 겨우 맞는 말 하나 했네.”
“……그렇지만 여기서 조롱당하는 인물은, 내가 아닌 당신이야. 여길 보라고. 여기, 이 법정에…… 당신이 아끼고 사랑했던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나?”
“난 모든 인간을 사랑해. 너네도 인간이니까 예외는 아니지. 난 널 포함해서 여기 있는 모든 인간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계속 그럴 거야…… 심지어 너네가 날 죽이더라도.”
“거짓말하지마.” 필라투스는 심히 불쾌해하며 말했다. “세상에 그럴 수 있는 사람은 없어.”
“진짠데.” 예수가 눈 한 번 깜빡하지 않고 받아쳤다. “뭐, 안 믿으면 어쩔 수 없고.”
“……당신은 위선자야. 하기야 위선자로서도 실패했지. 유대인들은 예수 당신이 메시아라고 생각했어. 신의 아들이자 자신들의 진정한 왕이라고 생각했다고. 아마도 당신이 일으켰다는 기적들을 보면서 희망을 품었겠지. 유월절에 맞춰서 대규모 봉기를 이끌어줄 거라고 믿었을 거야. 그건 제자들도 마찬가지였겠지. 내가 보기에도 당신에게는 힘이 있어. 근본을 알 수 없는 카리스마 같은 것이……” 문득 분노에 휩싸인 필라투스는, 느닷없이 죄인이 있는 곳까지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그리고 비쩍 마른 예수의 얼굴에 삿대질을 하며 고함쳤다. “그런데도! 당신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어! 아무 것도! 당신들 유대인들이 뭘 원하고 있는지 빤히 알고 있었던 주제에, 그럴만한 힘과 명성도 있었던 주제에…… 넌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단 말이다! 그 대신 같잖은 소리나 지껄여댔지. 사마리아인을 두둔하질 않나, 가난한 이들 더러 너희가 진정 행복하다질 않나…… 이것 봐, 이것 보라고! 네 제자들은 모두 널 배신하거나 떠났고, 너랑 같은 민족이라는 놈들은 널 십자가에 매달라면서 나한테 떠맡겼지. 네 사랑의 결과는 겨우 이거야…… 네가 왜 여기에 있지? 사형 당해야할 것은 네가 아니라 바랍바야! 죄를 지은 건 널 팔아넘긴 유대인들이고……! 예수! 나사렛 예수!! 당신은 어째서 여기 있지? 당신은 무슨 죄로 여기에 목을 드리우고 있어? 자신의 죄가 뭔지 알고는 있나? 진심으로 죄가 있다고 생각하나? 이렇게 죽는 데에 아무런 억울함도 없나? 정말? 정말로 그런가? 진정 아무도 원망하지 않나? 저 추악한 민족, 부패한 유대왕국, 널 팔아넘긴 유다, 비겁한 겁쟁이인 너희 제자들, 모두 원망스럽지 않나?”
“그래.”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 같이 애달픈 동시에, 망설임의 티끌조차 느껴지지 않는 눈. 예수는 그 두 눈으로 갑옷차림의 필라투스를 똑바로 응시했다. “원망하지 않아. 그러니까 날 죽여라. 치욕스럽고 고통스럽게 죽여.”
“……하! 하하, 하하하하!!!” 필라투스는 웃었다. 로마식 법정은 물론이고, 온 예루살렘에 울려퍼질 것같이 크게 웃었다. 그러자 주위에 있던 병사들도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만일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그 때 그 장면을 봤다면, 예수가 아주 유명한 스탠드업 코미디언인 줄 알았을 것이다. “하하, 하하하…… 이거 정말…… 그래! 내 죽여주지. 보아하니 그게 내가 너에게 베풀어줄 수 있는 유일한 자비 같으니까…… 이봐, 재판은 끝났다. 바랍바는 풀어주고, 이 자는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매달아 죽여라. 해가 환할 때 십자가를 끌고 가게 해. 그렇게 사랑하는 인간들이 마음껏 침을 뱉고 야유할 수 있게 말이야. 자, 나사렛 예수! 이 처분에 이의 있나?”
“아니.” 예수가 대답했다.
“아니, 아니야. 아니가 아니야. 뭔가 허전한데…… 아. 그래, 네 십자가에 이름표를 붙여주겠어. 단순 강도들 따위와는 다르니까. 아무 죄도 짓지 않은 잘못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는 거야. 최소한 구분할 수 있게 명패쯤은 달아줘야겠지. 뭐라고 적을까? 나사렛의 몽키스패너?”
“……제발.” 끝내 예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난 그런 거 쓴 적 없다니까.”
“흠, 그래, 좋아! 그럼 그것만 아니면 되는 거지?”
“그래. 그것만 아니면 돼.”
“‘똥 된장 구분 못하는 등신들 때문에 억울하게 죽은 등신’ 같은 건 어때?”
“그러시든가.”
“……됐어. 내 맘대로 써서 붙여야지” 하고 필라투스는 발길을 돌렸다. “너희들은 가서 십자가형을 준비해. 난 이 놈의 명패에 뭐라고 쓸지 고민 좀 해봐야겠거든.”
그렇게 필라투스는 집무실로 돌아가서, 방 안에 있던 병사들을 모두 물러나도록 명령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진지한 고민을 시작했다…… 나사렛의 예수. 이 바보 같은 자에게 어떤 별명을 지어주면 좋을까? 그는 알고 있었다. 이 어처구니없는 개죽음이 역사에 분명히 기록되리라는 것을. 어쩌면 아주 길이길이 회자되리라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나아가 자신의 존재가 그저 이 순간, 이 결정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느꼈다.
그에겐 그 희대의 멍텅구리, 실로 시대초월적인 또라이인 나사렛 예수에게 최대한 정확한 별칭을 붙여줄 의무가 있었다. 하지만 이런 자를 뭐라고 표현하면 좋단 말인가. 힘없고, 나약하고, 야비하다못해 추악하기 짝이 없는 민족, 유대인. 그 유대인들이 침을 뱉고, 모욕하며, 가장 증오하고 저주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사랑한다는 인간. 그 미친 작자의 명패에……
필라투스는 「유대인의 진정한 왕, 나사렛 사람 예수」 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