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콘텐츠 천재

by 이묵돌





*일러두기



이 단편소설은 제가 샘플로 썼던 원고 중 하나입니다. 샘플원고는 출판사에게 '이런 느낌으로 쓸 생각이에요'하고 전달할 용도로 쓰는 글인데, 책으로 낼 수 있을 정도의 기획을 비교적 짧은 시간안에 써냅니다. 물론 '출판기획서' 같은 걸 작성해서 드리는 방법도 있지만……. 저는 서류 한 장 작성하는 것 보다 대여섯장 되는 소설을 쓰는 게 더 편한 부류의 인간이라, 그냥 샘플원고를 먼저 보내드리는 편입니다. 기획서를 아무리 잘 써봤자 직접 쓴 걸 보느니만 못 하니까요. 개인적으론 새로운 샘플원고를 작업하는 일 자체를 좋아합니다.


한편 모든 샘플이 곧 출판계약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글일수록 통과될 확률이 높기야 하겠지만, 해당 출판사의 니즈나 편집자의 성향 등에 따라 반려될 가능성은 늘 존재합니다(저는 이걸 '글이 꺾였다'고 표현합니다). 이렇게 꺾인 원고들 중에는 '하긴 그건 너무 후딱 써버렸지' 하고 납득이 되는 게 있는가하면, '꼭 써보고 싶었는데'같이 아쉬움이 남는 것도 있기 마련입니다.


기획 상 <콘텐츠 천재>는 '자전적인 내용을 담은 장편소설'이었습니다. 글 자체는 좋다는 반응이었지만 아무래도 너무 헤비한 면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래도 쓴 글은 어쩔 수 없으니까. 언젠가 틈이 나면 공개할 생각이었는데, 다음 달 있을 전시회 준비로 인해 업로드가 뜸해진 지금이 적절하겠다 싶어 이렇게 글을 써올립니다. 퇴고를 전혀 하지 않아서 어설픈 부분이 많겠지만…… 그마저 샘플원고의 묘미라면 그대로 두는 게 좋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부디 즐겁게 읽으실 수 있길 희망하면서.


묵돌 올림.





이 모든 일들은 아주아주 사소한 사건 하나로부터 시작됐다. 사람이 크거나 작은 일을 하는데 꼭 거창한 첫 단추가 필요한 건 아니지만. 내 보잘 것 없는 삶이나 별 볼일 없는 글, 소중한 인연을 마주치고 영원히 헤어지는 일에 이르기까지 그런 ‘셀 수 없이 많은 사소함들’로 구성되고 좌우돼왔다는 사실은 좀처럼 와 닿지 않는 법이다.

한편 두렵기도 하다. 비극은 늘 내가 미처 신경 쓰지 못했던 요소로 인해 생겨난다. 그래서 몇 차례 큰 상처를 입고나면, 삶이란 깨어있는 시간 내내 보이지 않는 부비트랩 사이를 걸어 지나는 일처럼 돼버린다.

그럼에도 나는 계속 글을 쓸 수밖에 없다. 여태까지의 경험으로 미뤄봤을 때, 세상을 사는데 있어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거라곤 끽해야 글 쓰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었는데. 지금 와보니 정말 그렇다.


지금도 뚜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중간고사가 끝나던 날, 하교시간에 비어가던 중학교 교실이었다. 나는 교복 위에 얇은 체육복 재킷을 입고 있었다. 왼쪽 주머니에는 지갑이 있었지만, 별로 신경 쓰진 않았던 것 같다. 애써 챙길만한 땡전 한 푼 없었으니까. 휴대폰도 없었다. 하기야 마흔 명이 모인 반에서도 좀 사는 집 애들이나 색깔 있는 폴더폰 쯤을 들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내신이 무슨 뜻인지조차 몰랐다. 학교시험은 ‘평소보다 일찍 하교하는 날’ 정도로 여겼다. 다만 일찍 마친다고 해서 그만큼 일찍 집에 가는 경우는 드물었다. 엄마는 오후에 가든 오전에 가든 똑같은 자리 똑같은 자세로 잠들어 있었다. 집에 가든 밖에 있든 제대로 된 점심을 먹기 어려운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날만큼은 곧장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돈이 없었으니까. 끼리끼리 뭉쳐 PC방으로 향하는 친구들을 뒤로 한 채, 주섬주섬 가방을 챙기고 있던 그 때였다. 학기 절반이 지나는 동안 말 섞은 적이 거의 없었던, 실상 남과 다를 바 없던 친구의 목소리였다.

“빈이!” 정말이지 그 친구에 대해선 아는 게 거의 없었다. 이름도 헷갈렸다. 인중 왼쪽에 두꺼비 같은 반점만 없었어도 알아볼 수 없었을 것이다. 나는 다들 PC방이나 가는 상황에 말을 걸어온 것 자체가 생경해서, 눈을 동그랗게 뜨며 ‘방금 나 부른 거야?’라는 표정을 해보였다. “삼 대 삼으로 스타 할 건데 지금 딱 한 명 부족해. 우리랑 같이 갈래? PC방비는 내가 대줄테니까”

“대준다고?” 나는 순간 어안이 벙벙해져서 대꾸했다. ‘PC방 요금 대주기’란 정말 친한 친구 사이에서도 아주 가끔이나 있는 일이었다. 잘 알지도 못하는 녀석이 대관절 무슨 이유로 내게 돈을 거저 준단 말인가?

“그래” 두꺼비가 대답했다.

“언제 가는데?” 내가 재차 물었다.

“지금 당장. 빨리 결정해”

돌이켜보면 항상 그런 식이었다. 선택해야 하는 상황은 늘 생각지 못한 타이밍에 들이닥쳐서, 준비도 없던 나로 하여금 ‘지금 당장’의 결정을 내리게 만들었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택한 선택지는 터무니없는 형태로 돌고 돌아 나중의 시간을 만든다.

나는 평소 잘 알지도 못하던 친구 다섯 명을 따라 학교 본관을 나섰다. 하나도 빠짐없이 생소한 얼굴들이었다. 몇 명은 같은 학교 같은 학년이 맞는지조차 미심쩍었다. 하긴,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운 좋게도 나는 공짜로 게임을 하러 가는 것이고, 일행 중에 누가 컵라면이라도 사먹으면 한두 입쯤 얻어먹을 수도 있었다. 어디로 보나 손해 볼 것이라곤 없어보였다.

“야, 빈이. 어디로 가?” 두꺼비가 날 쳐다보며 손짓했다. “교문으로 가려고?”

“아?” 나는 당황스러웠다. 학교를 교문으로 나가지 어디로 나간다는 거지.

“이쪽으로 와. 이쪽 담 넘어가면 훨씬 가까우니까”

“……그런가?” 내가 멍청한 목소리로 대꾸하기 무섭게, 두꺼비를 포함한 다섯 명은 교문 반대쪽 담으로 향해 걸어갔다. 확실히 맞는 말이었다. 교문으로 나가면 꽤 긴 길을 두 번이나 돌아야 PC방 방향이었다. 그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그래도,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고민할 새도 없이 발이 먼저 움직였다. 내 뒤쪽 멀리 있는 교문에서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돌연 아무도 없는 운동장 반대편으로 바람이 불었다.

머잖아 나는 ‘그래, 괜히 돌아서 갔다가 PC방에 자리가 없으면 곤란하니까’라고 생각하면서, 앞뒤로 가방과 실내화주머니를 흔들거리며 일행을 따라 뛰었다. 망설이고 있는 동안 놈들은 벌써 담벼락 가까이까지 나아가 있었다.

하나둘씩 능숙하게 담을 넘기 시작했다. 중학교 담장은 내 키보다 조금 더 높았다. 흔들리지도 않는데다 발 디딜 곳도 많아 넘기 어려운 곳은 아니었다. 꽤 무거운 체형의 두꺼비도 시간이 좀 걸릴 뿐 별 탈 없이 넘어갔다. 이제는 내 차례였다.

나는 오른손에 들고 있던 실내화 주머니를 담 너머 쪽 길로 던져 놓은 뒤 양 손으로 담 위쪽 부분을 꽉 붙들었다. 그런 다음 오른발을 올려서, 그대로 밟아 점프하듯 넘어가면 끝이었다. 십 초만, 아니, 오 초만 더 빨랐더라면 틀림없이 그렇게 됐을 것이다.

“야! 거기 담!” 굵직한 고함소리가 귀를 울렸다. 나는 깜짝 놀라 미끄러질 뻔했다. 익숙한 목소리였다. 뒤돌아볼 필요도 없었다. 다른 놈들은 소리를 듣기 무섭게 뛰어 도망쳤다. 홀로 남은 나는 등골이 오싹하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잡히면 죽는다’는 심정으로, 간신히 몸을 담 너머로 재껴 갈 무렵이었다.

“아~ 아쉽다. 그치?” 3학년 국어를 담당하는 젊은 남자선생님이었다. 짧게 친 머리에 키가 컸고, 옆으로 납작한 모양의 은테 안경을 쓴 분이었다. 한 손에는 국어 교과서와 참고서가, 다른 한 손에는 내 싸구려 백팩이 들려 있었다…… 내 가방이 왜 저기 있지? “가방을 잘 챙겨야지. 딱 걸려버렸네. 보는 내가 다 안타깝더라”

“……” 나는 넋 나간 표정으로 담 안쪽을 응시했다. 잠깐 꿈인가 싶었지만, 거기에는 틀림없는 ‘삼국’ 선생이 서있었다.

지지난해인가 학교에 부임했다는 교사였다. 초임교사라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력과 카리스마 덕분에 동료 교사들로부터 빠르게 신뢰를 쌓은 한편, 학생들에게는 압도적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담을 넘든, 담장 너머에서 담배를 피든, 숙제를 안 해오든, 수업시간에 늦게 들어오든. 하여튼 뭐라도 하나 걸리면 누구든 선 굵은 나무 몽둥이로 엉덩이를 작살내놓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불빨래 할 때나 쓸 것 같은 그 무시무시한 몽둥이에는 ‘정의봉’이라는 애칭까지 붙어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담 안쪽에 떨어트리고 온 게 가방이 아니라 신발주머니였다면, 그대로 도망쳐 목숨을 부지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가방에는 학교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들어 있었다. 현장에서 발각됐으니 변명의 여지도 없었다.

“자자. 다시 넘어올래? 이번에는 신발주머니 챙겨서……” 삼국 선생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나는 별 말 없이 담을 다시 넘었다. “잘 넘는구나. 이제 교무실 가야겠다”

“……네” 나는 황망히 대답했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볼래? 차에서 꺼낼 물건이 있어서” 삼국이 뚜벅뚜벅 걸어 하얀색 승용차에 다가가 문을 열였다.

우리 중학교는 상대적으로 좁은 학교부지 때문에 교사들이 차를 세워놓을 만한 공간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늦게 출근한 교사들은 어쩔 수 없이 운동장 구석진 곳이나 농구코트와 담벼락 사이에 있는 공간에 주차를 해두곤 했는데, 하필 그날의 주인공이 삼국이었던 것이다.

삼국은 1층 교무실에 도착하자마자 교사용 캐비넷 옆에 무릎을 꿇고 있으라고 말하곤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나는 이 상황이 겨우 꿇어앉아 있는 정도로 끝나지 않으리란 걸 잘 알고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속셈이지? 차라리 빨리 때리기라도 하면 좋았을 텐데.

죽음을 눈앞에 둔 사형수가 그런 기분일까? 그야 실제로 돼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가장 사형수 같았던 순간’을 꼽아보라면, 그때 그 상황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거라는 사실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십 분 쯤 지났을까? 어딘가 다녀온 것 같은 표정의 삼국이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말했다.

“너도 참 운이 나쁘구나…… 자, 일단 이거 받아볼래?” 선생님이 내게 A4사이즈의 갱지 한 장을 건넸다. “여기에다가 네가 뭘 잘못했는지, 지금 어떤 마음인지,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학교생활을 할지에 대해 써서 저기 내 책상위에 두고 가…… 아. 이름이랑 반 번호도 맨 위에 적어주고”

“……네, 그런데 선생님”

“왜?”

“이거 다 쓰고 집에 가나요?” 내가 물었다.

“그래. 가” 삼국은 담백하게 대답했다. 그리고 또 다시 걸어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나는 너무 긴장한 나머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등에 식은땀이 흐르고 눈이 그렁그렁했다. 이게 정말 끝인가? ‘삼국에게 걸렸는데 매 한 번 안 맞고 벗어났다’는 얘기는 일찍이 들어본 적 없었다. 그런데 반성문 한 장으로 벗어날 수 있다면, 정말이지 놀라운 역사가 될 것이었다. 벗어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겠지. 그렇게 생각하며 가방에서 낡은 연필을 하나 꺼내서, 종이 맨 위쪽 중앙에다 이렇게 썼다.

‘ 반 성 문 ’

솔직히 말해 그 때 그 반성문에 어떤 내용을 썼는지, 지금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그저 잔뜩 겁먹은 상태로…… 교무실 바닥에다 대고 연필을 꾹꾹 눌러가며 종이를 채웠을 뿐이다. 몸에도 힘이 엄청 들어가서 다 쓸 때까지 몇 번이나 팔이 저려오는가 하면 꼴딱꼴딱 마른 침까지 삼켰다.

‘다 써서 냈는데 맘에 안 들면 도로 두들겨 맞을지 몰라’라는 생각이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럴 수 있을까 싶지만, ‘삼국’의 악명을 미뤄봤을 때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양반 같았다. 나는 자그마한 글씨로, 빡빡하게, 갱지 양면을 가득 채우고 나서도 몇 번이나 잘못된 내용이 없는지 확인한 뒤에야 삼국의 책상에 반성문을 올려놓고 나왔다. 뒤늦게 집에 돌아가 보니 엄마는 자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조회를 마치고 1교시인지 2교시인지가 끝난 어느 쉬는 시간이었다. 때마침 담임을 따라 교무실에 갔던 반장이 돌아오기 무섭게 내게 말을 전했다.

“야, 삼국이 너 교무실 오라는데”

“아, 어……” 내가 대답했다. 한 번 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머릿속에서 자꾸 최악의 시나리오가 재생되고 있었다. 난 억울한 마음에 두꺼비가 있던 방향을 쏘아봤다. 두꺼비는 애써 내 눈을 피했다. 원래부터 날 전혀 모르던 사람인 것처럼. 복도에서 늘 함께 다니던 자기 친구들과 게임인지 뭔지 바쁘게 대화를 나눌 뿐이었다.


“오, 빈이 왔구나” 교무실 안쪽 자리에 앉아있던 삼국은 날 보자마자 알은 체를 하며 말했다. “너 지나가면서 나랑 몇 번 봤었지?”

“네” 나는 비교적 침착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그 ‘삼국’이 3학년도 아닌 내 얼굴을 기억하고 있다는 점은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예전에 교내백일장에서 상 받는 거 봤거든, 내가”

“아, 네”

“너도 담배 피냐?”

“아, 아뇨?” 나는 당황해서 대답했다. 담배라니. 중학생 때만해도, 담배는 학교 전체를 통틀어 제일 잘 논다는 애들 몇 명이나 손대던 것이다. 살만한 돈도 배짱도 없었거니와 나 같은 찌질이에겐 언감생심이었다.

“그래. 냄새는 안 나네. 근데 왜 그런 놈들이랑 같이 다녀?”

“저, 그게……”

“의리 없이 도망이나 치고 말이야. 그런 애들은 한 대씩 때려줘야 되는데. 그치”

“……네”

“아, 왜 이렇게 기죽어있어? 무서워 하지마…… 선생님은 좋은 사람이란다?” 정말 그렇게 말했다. 내가 ‘이 인간이 뭐라는 거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즈음, 삼국이 다시 말을 이었다. “반성문 쓴 거 잘 봤어. 무슨 반성문계의 노벨문학상감이던데”

“……네?” 나는 아연실색해서 되물었다.

“이렇게 반성문 열심히 쓰는 애 처음 봤다니까. 내용도 잘 썼고. 그거 칭찬하려고 불렀어”

“아……”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건 내가 태어나서 처음 받았던 칭찬이었다. 가끔 있는 백일장에서 받던 상장이나 문화상품권 따위가 아니라. 내가 쓴 글을 보고 ‘잘 썼다’는 말은 그때가 난생 처음이었다.

“자, 이제 가 봐” 삼국은 의자를 책상 컴퓨터 방향으로 천천히 틀었다. “전학 갈 거 아니면 학교생활 잘 해야겠다. 너도 내년이면 날 만날 거 아냐?”


그게 정 선생님과 나의 첫 만남이었다. 그리고 그 말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반성문 쓴 거 잘 봤어……”

한동안 머릿속에서 그 말이 떠나지 않았다. 집에 돌아가니 여전히 엄마가 자고 있었다. 난 책가방을 내려놓고, 문득 낡은 책상선반을 쳐다봤다. 책장이랄 게 없어 집에 있는 책이란 책은 모두 그 선반에 올려두고 있었다. 그래봤자 오래된 책들, 내가 몇 년도 전에 다 읽어버렸던 책들, 또 반의반쯤 쓰다 버려둔 공책들이 전부였다.

괜한 기분에 ‘세계단편문학모음집’을 꺼내 집었다. 외할아버지 집에 갔을 때 훔쳐오다시피 가져와서, 몇 번이고 반복해 읽었던 책이었다. 단어의 뜻도 몰랐고(옛날에 나온 책이라 많은 단어가 한자로 돼 있었다) 줄거리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지만.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에 나는 왕따를 당하고 있었다. 친구도 없었고, 나가서도 할 일이 없었다. 뭔가 읽고 싶었지만 집에 읽을 만한 거라곤 고작해야 그 책 한 권이었다. 그때 난 오랜만에 책을 펼쳐들면서, 헤밍웨이의 이름이 새삼 웃기다고 생각했다.


이듬해 정 선생님은 막 3학년이 된 나를 교무실로 불렀다. 그리고 ‘국어 도우미’라는 직책인지 벌칙인지를 내게 붙이곤 1년 내내 부려먹었다. 학생 굴리기로는 워낙 정평이 나있는 선생님이었지만, 그중에서도 유난히 나를 더 괴롭혔다. 나는 국어수업을 앞두고 매 쉬는 시간마다 교무실에 가서 서류를 날랐고, 일기를 써서 매주 검사를 받았고, 학교내외에서 진행되는 백일장에 반강제적으로 참가해야했고, 뭘 쓰는 숙제가 있던 다음 날이면 꼭 내가 쓴 글을 가져다 수업시간에 예시로 들었다.

다만 나는 정 선생님의 특별한 관심이 싫지 않았다. 전혀 힘들거나 부끄럽지 않았다면 거짓말이지만, 오히려 즐거울 때가 훨씬 많았다. 그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선생님으로부터 ‘애가 왜 이렇게 산만하냐’ ‘니 상황이면 남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겠냐’ ‘아무 것도 없으면서 왜 공부도 안 하냐’ 같은 말은 많이 들었지만, 내가 가진 어떤 것으로 격려하고 칭찬해주신 분은 정 선생님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넌 볼 때마다 참 글을 잘 쓰는구나”나 “나보다 잘 쓰는 것 같은데. 청출어람이구만” 같은 말도 이따금 하시곤 했다.

날 불러다 ‘빈이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니?’ ‘커서도 계속 글을 쓸 거니?’하고 물어보신 것도 정 선생님이 처음이었다. 난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다가 “저는 커서 글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라고 대답했다. 정 선생님은 말없이 웃어 보이셨다.

집에 가서 그 말을 그대로 엄마에게 전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조금 들떠 있었던 걸까. 그래서 내가 처한 상황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걸까.

“엄마. 국어선생님이 나보고 글에 재능이 있대. 계속 글 열심히 써서 나중에 기자 같은 거 해보려고 하는데”

엄마는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뻐끔뻐끔 담배를 들이마시고 내쉴 뿐이었다. 점심시간 교무실을 찾아가 정 선생님에게 ‘왜 우리 아들한테 이상한 바람을 집어넣느냐’는 말을 할 줄이야 꿈에도 몰랐다. 조금씩 용돈을 모아 샀던 윤동주 시집은 갈기갈기 찢겨 쓰레기통에 처박혔다. 그럼에도 정 선생님은 아무 내색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엄마가 정 선생님에게 따지며 소리쳤다는 사실을, 술 취한 엄마의 입을 통해 나중에서야 알았다.

나는 초등학교 졸업 이후 줄곧 소심한 학생이었지만, 정 선생님의 편애를 받으며 조금씩 표현이 늘기 시작했다. 어느덧 친한 친구도 몇 명 생겼고, 글 쓰는 취미도 갖게 됐다. 그 덕에 중학생으로의 마지막 한 해는 즐거운 기억으로 남게 됐다.

어느덧 졸업식을 앞두고 있던 어느 날 이었다. 나는 마지막 국어시간을 준비하기 위해 교무실로 향했다. 정 선생님은 날 보자마자 양 어깨에 손을 올리고, “마지막이구나!” 하고 너스레를 떨었다.

“빈이 너도 지난 1년 동안 나 때문에 고생 많았다. 고등학생 돼서도 계속 글 쓸 거니?”

“……아마 그렇겠죠?”

“안 쓰더라도 괜찮아” 정 선생님이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 즐겁게 살렴. 글을 쓰든, 뭘 하든……”

“네” 그게 내 마지막 대답이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글쓰기는 오랫동안 내 삶을 지탱해왔다. 고등학생이 돼서 이유없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때에도, 대학생이 돼서 서울 한 가운데 혼자 남겨졌을 때도, 회사를 세워 매일 매일의 일에 치이며 살면서도, 사람에게 버림받고 낙오됐을 때도, 아무도 날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도, 이렇게 살 바에야 죽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확신으로 바뀔 무렵에도, 나는 계속해서 글을 썼다. 날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사람, 모든 게 바뀔 때조차 글만큼은 곁에 그대로 있었다. 한때는 글쓰기 위해 사는 게 아니라 살기 위해 글을 쓰기도 했다. 아무도 그러라고 시키지 않았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는데도.


어쩔 땐 너무 외롭고 슬퍼서 뭐라도 쓰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았다. 스무 살에 찾아온 서울은 그런 도시였다. 내가 먼저 말을 꺼내지 않으면 아무도 내개 말을 걸지 않았다.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새벽에 일을 나가 저녁 늦게 돌아올 때마다, 약속이나 한 듯 컴퓨터를 켜서 글을 썼다. 그렇게 쓴 글들이 계속, 계속, 계속 이어져서―정신차려보니 지금까지도 계속 글을 쓰고 있었다.

지난 7년 동안 나는 대학생이었다가, 자퇴한 백수였다가, 현장을 전전하는 하루살이였다가, 온라인 커뮤니티의 네임드였다가, 웃긴 페이스북 페이지 관리자였다가, 떠오르는 콘텐츠 유망주였다가, 너무 젊은 콘텐츠 천재였다가, 나락으로 고꾸라진 벌레였다가, 프리랜서 기획자였다가, 꿈 많은 청년 창업자였다가, 무능한 대표였다가, 빚더미에 깔린 실패자였다가, 일에 중독된 채무자였다가, 소일거리로 연명하는 텍스트 노동자였다가, 죽기 직전의 혼수상태였다가, 돌아온 탕아였다가, 과거의 유명세로 겨우 버티는, 단물 다 빠진 과거의 영광이었다가, 집에 틀어박혀 글이나 쓰는 놈팽이였다가…… 마침내 희한한 필명을 한 햇병아리 작가가 됐다. 그렇게 첫 책과 두 번째 책이 퍽 괜찮은 성적을 거두면서, 대형서점에서 수십 명의 독자들을 앞에 두고 북콘서트란 걸 하기도 했다.


“……지금도 저는 신기해요. 제가 글로 밥을 벌어먹고 산다는 게요” 내가 말했다. 행사와 별개로 서점을 찾아온 사람들이, 저 사람이 유명한 작가인가 봐, 하고 뒤에서 수근거렸다. “더 질문 있나요? 없으면 이제……”

“아! 저 질문 있어요!” 객석 중간쯤에 앉아있던 남자 분 한 명이 번쩍 손을 들고 말했다. 제법 어린애 같은 티가 남아있는 얼굴이며 나름대로 차려입은 옷차림을 보니 새내기 대학생 정도 돼 보이는 청년이었다.

“어우 깜짝이야. 네, 무슨 질문인가요?”

“저는 콘텐츠 대행사에서 일을 하는 사람인데요. 회의 때 작가님에 대한 얘기를 정말 많이 했어요. 한 번도 아니고 자기 콘텐츠로 몇 번이나 다르게 성공한다는 케이스가 거의 없으니까. 아무튼, 전 어떤 종류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것도 그렇지만 기획하는 건 정말 재능이 없으면 안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말인데, 작가님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생각이라면, 어떤 것을요?”

“작가님 같은 천재가 아니라 보통 사람이라면 어떻게 해야 글을 잘 쓸 수 있을까요? 후천적으로 콘텐츠에 대한 감각 같은 게 키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그걸 여쭤보고 싶었습니다. 저도 나중에 작가님처럼 제가 쓴 글로 돈을 벌고 싶다는 꿈이 있어서요”

“아하” 나는 행사가 끝나기 전에 가장 어려운 질문을 받았다는 걸 깨달았다. “음, 좋은 질문이네요. 그런데 전 제가 엄청나게 재능이 있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서요. 어떤 대답을 해야 할지……”

“에이, 작가님은 천재시죠. 객관적으로 그렇잖아요. 천재가 아니면 그렇게 못 하지 않을까요? 스무 살 때 자기가 만든 콘텐츠로 인정받는다든가 하는 건요. 본인이 천재가 아니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남자는 의아하지만 대체로 선망에 가득 찬 눈빛으로 다시 물었다.

“제가 천재라고요”

“그럼요” 남자는 조금도 망설이는 기색 없이 말했다. “콘텐츠의 천재시죠”

“아, 그런가요?” 나는 더 대답할 수 없었다.

그땐 아무 말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인정하면 오만, 부정하면 겸양, 모른 체하면 이기주의자가 될 것 같았다. 그 세 가지 중 어느 하나가 제대로 된 대답도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쓰기로 했다. 늘 하던 대로. 내가 과연 사람들이 말하는 것 같은 ‘콘텐츠 천재’인지는 독자의 판단에 맡기기로 하고, 내 나름의 대답을 여기 남겨놓는다.



<끝>






작가의 이전글[단편] 페미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