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흐리고 산뜻한 수요일
오백 자는 좀 애매한 분량이다. 억지로 쓰려면 많게 느껴지지만, 정신없이 갈기다보면 턱없이 모자란 정도다. 내 생각에, 일기에는 딱 이정도의 애매한 기준이 필요하다. ‘그딴 거 아무래도 상관없잖아’라고 생각할 만큼 별 볼 일 없지는 않은데, ‘그래 한 번 해볼까 후후’하고 거창한 마음가짐을 필요로 하지는 않은 정도다.
2021년을 다른 해보다 게을리 살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초점이 이곳저곳에 분산돼있었을 뿐이지, 내가 기울인 에너지의 총량이 줄진 않았다. 그렇지만 요즘 같은 시대에는, 뭐가 됐든 기록으로 남기지 않으면 ‘아무 것도 안 하는 인간’이 돼버리는 감이 있다. 엄밀히 생각해보면 블로그에 글을 쓰거나 SNS에 브이로그를 남기는 쪽이 더 한가로운 인간인 게 분명하지만. 어쨌든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인간이기는 하니까. 매일 오백 자의 기록을 남기는 일만으로 나의 게으름이 변호된다면 꽤 가치가 있다. 아무튼 29일은 가끔 흐리고 산뜻한 수요일이었고, 보다시피 오백자는 무지 짧