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이나 균열은 완벽할 수 없다
세 번째 검사 결과에서 음성이 나왔더라면. 나는 이 도시를 후련한 마음으로 떠날 수 있었을 것이다. 일주일간의 격리는 권고사항일 뿐이다. 어디가서 ‘저는 확진판정을 받고 일주일간 자가격리를 한 다음 몸상태가 완전해진 상태로 복귀했어요’ 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는 ‘PCR 음성 나왔어요. 됐습니까?’ 하고 뻗댈 수 있는 쪽이 좋으니까.
어쨌든 나는 25일을 기해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떠날 작정이었다. 완치가 된 이후에도 1~2달간은 양성반응이 나올 수 있다’ 는 몇몇 보도가 거짓이길 바라며—격리 마지막 날짜에 결과가 나오게끔 코를 쑤셨지만, 결과적으로 ‘확실한 통행 증명서’ 없이 도시를 떠나야하는 상황이 됐다. 모스크바와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거쳐 무사히 귀국하려는 일정에 범죄적인 분위기가 도사리기 시작했으나, 어쩔 수 없다. 푹 쉬어 지나칠 정도로 건강해진 내 몸상태를 믿고 가는 수밖에.
러시아에서조차 도망치는 기분으로 떠나야하는 것이 참 ‘내 인생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사이 나탈리아에게 연락이 와있었다. 내일 근처에 장보러 갈건데 필요한 거 있으면 사다주겠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괜찮다고, 귀국 일정을 맞추기위해 오늘부로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떠날 작정이라고 답장했다. 그동안 정말 신세를 많이졌다, 는 말은 이미 많이 했지만 또 했다. 당신 덕분에 그나마 버틸 수 있었고, 이 도시도 나름대로 좋은 기억으로 남을 거라는 말과 함께. 이젠 정말 안녕이다.
핵심은 ‘최대한 접촉을 최소화하며’ 다른 도시로 옮겨가는 것이다. 처음에는 차로 이동하는 것을 생각했다. 가장 저렴한 옵션은 현대 솔라리스를 빌려 열 시간동안 달려 노보시비르츠크에 반환하는 것이었다. 눈길 운전이 만만찮겠지만 다른 차들을 잘 따라가다보면 큰 문제는 없지 않을까.노보시비르츠크는 크라스노야르스크보다 더 큰 도시이고(그쪽도 여전히 시베리아이긴 하지만) 여차하면 인천으로 가는 직항 비행기를 탈 수도 있었다. 일단은 거기 도착해서, 상황을 지켜보다 모스크바 방향으로 더 이동할지 아니면 이대로 여정을 끝낼지 결정하면 될 일이었다.
그렇게 큰 방향은 결정되었지만, 자동차를 빌려서 간다는 아이디어 자체는 현실적인 이유들로 인해 좌절되었다. ‘다른 도시에서 반납’ 옵션을 적용했을 시에는 자동차 대여비용에 무려 이만루블(!) 이 추가된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고, 무엇보다 영사관 직원이 내 얘기를 듣자마자 식겁하면서 점잖게 뜯어말렸기 때문이다.
‘겁주려고 하는 말은 아니고, 정말 러시아에서 운전하다가 강도 만나서 다 털렸다는 신고가 엄청 들어와요. 진짜 조심하셔야 해요…’
강도… 그러고보니 강도는 생각하지 못했다. 짧은 거리도 아니고 그렇게 긴 거리를 운전하는 중에 강도같은 걸 만났다가는… 꼼짝없이 시베리아 벌판에서 얼어죽을 운명에 처할 것이다.
역시 차를 빌리는 건 관두자, 라고 결정하고나니 남은 선택지는 하나밖에 없다. 이젠 횡단열차 뿐이다. 고속버스 같은 걸 알아볼 수도 있겠지만, 그건 어디로보나 ‘접촉을 최소화하며 움직이는 방법’은 아니다. 칸칸이 구분된 열차보다 못하면 못했지 더 나은 교통수단은 못되는 것이다.
나는 결국 노보시비르스크로 가는 당일 열차를 찾아 예매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렇게는 안 됐다.
그전까지만해도 잘만 작동되던 횡단열차 예약앱이 먹통이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시간대는 볼 수 있는데 결제가 되지 않았다. 여정도 확정하고, 여행자 정보도 입력하고, 카드번호 확인까지 전에 하던 그대로 했는데… 몇 번을 시도해도 ‘Payments was declined’ 라는 안내창이 떴다.
‘뭐지 이게… 설마 확진자는 철도편 예약도 못하게 막아놓은 건가? 아니면 전쟁 물자를 옮기느라 민간인 이동은 차단된 건가?’
그게 사실이라면 러시아 정부는 정말 무시무시하다고밖에 할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번역앱과 철도청앱을 수십번 왔다갔다하면서 온라인 고객센터에 문의해보았고, 그 결과 철도예약에서 ‘우리는 그렇게까지는 안 하며’ ‘예매앱 자체가 자주 먹통이 되니까 전화나 현장에서 예매하면 될 것 같다’는 답변을 받았다. 러시아말을 못하니 전화예약은 논외이고, 결국은 직접 가서 승부를 보는 수밖에 없다…
역까지 갔는데 표를 못 사서 다시 돌아올 여지도 없지 않지만, 그래도 일단은 짐을 꼼꼼히 싸고, 방과 부엌에 있는 잡동사니들을 한데 모아 쓰레기 봉투에 집어넣었다. 지금보니 며칠이나 지낸 것치곤 꽤 깔끔하게 산 것 같다. 소파는 원래부터 터져 있었다.
라파엘의 집과 작별하는 것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다. 괜한 감상에 빠져 쓸쓸해지는 순간도 없었다. 오갈데없는 나를 재워준 고마운 집이기는 하지만 숙박용이 아니라 말그대로 짐을 빼놓은 빈 아파트라—이건 진작에 전해들은 이야기였다—침대도 수건도 인터넷도 책상도 없었다. 격리 생활에 이골이 난 건 그 공간이 주는 암담함 때문이기도 했다. 공짜로 쓰는 처지니 불평하기도 뭣했고. 하여간 무조건적인 호의에는 그런 빈틈이 있다. 철판을 깔지 않는 이상 꼭 필요한 것조차 요구하기가 쑥스러워진다. 나는 그런 교착상태에 매우 취약했다.
크라스노야르스크 철도역까지 택시를 타고 이십분간 이동했다. 이곳이 지긋지긋해지지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도시 자체는 나쁘지 않았고, 만난 사람들 역시 좋았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발이 묶이고 말았으니까. 다행히 지금의 나는 어떤 시간을 가져다가 ‘좋은 기억’ 아니면 ‘나쁜 기억’ 으로 이분해 생각하는 버릇은 없다. 좋은 건 좋았고 싫은 건 싫었다. 나탈리아와 라파엘, 수리코프와 포비에트는 좋았지만 코로나와 PCR검사는 싫었다. 그 뿐이다.
철도역에 도착했지만 표를 예매하는데는 애를 먹었다. 매표 창구 직원 중에는 영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구글 번역앱을 사용해 어찌저찌 ‘오늘 밤에 떠나는 노보시비르스크행 기차표를 사려고 한다’는 의사를 전달하는데만 이십분이 걸렸다. 그마저도 철도경찰 한 명이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훨씬 곤란한 상황이 됐을 것이다. 말귀를 못알아먹어 얼타고 있던 낯선 외국인의 매표를 도와주고, 역 건물 안에 있는 식당까지 안내해준 이름모를 여경분에게 감사의 인사를 적어두기로 한다.
짐보관소에 캐리어 가방을 맡긴 뒤, 건물을 빠져나가서 조금 걷다가 밤 아홉시쯤 돌아왔다. 이십육분에 출발하는 열차는 삼번 플랫폼에서 대기중이었다. 나는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검표원이 내 여권을 체크하고 열차에 들여보내줄 때까지도 긴장을 풀지 못했다. 뭐가 언제 들통이 나서 ‘당신은 열차같은 거 못 타니까 돌아가세요’ 라고 말해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내 돈 주고 타는 열차에서 쫓겨날까봐 무서워하다니. 무슨 베를린 탈출을 기도하는 유태인이냐. 쉰들러리스트냐고….
다행히도 열차는 정해진 시간에 역을 출발했고, 나는 아랫침대에 걸터앉아서 노트북을 펴놓고 이 글을 쓰고 있다. 똑같은 여권에 똑같은 전화번호로, 현장에서 현금으로 결제하는데는 문제가 없었던 걸로 미루어보면, 카드 결제가 안 된 것은 확진 경험이나 전쟁 발발 여부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다면 대체 뭐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루블화 가격이 폭락한 것이 영향이 미쳤을지도 모른다. 환율이 급변한 나머지 해외카드 결제가 먹통이 된 것일지도. 그게 사실이라면 나는 최악의 타이밍을 찾는데 초월적인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크라스노야르스크를 떠났다. 이 긴 여정 중에서도 유달리 길었던, 정말이지 길고 긴 여정이었다. 나는 다시 도망치기 시작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