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새로울 겨를이 없다
러시아에서의 여정을 앞두고 나는 제대로된 준비를 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는 뭘 계획하든 망가지고 어그러질 테니까. 착오없이 완벽한 여행을 다녀오겠다는 의지도 없었다. 뭐가 있는지 모르는 곳(러시아)에, 뭘 해야할지 모르는 인간(나)을 가져다 놓으면 무슨 일이든지 일어나겠지. 무슨 일이 일어나면 또 어떻게든 살아가겠지. 모든 일들이 엉망으로 작동할 것이었다. 여기선 엉망이 아니라 작동에 방점을 찍는다.
나는 움직이는 것이 필요했다. 나라는 존재가 잡초나 돌멩이 같은 정체된 무언가가 아니라, 심장이 뛰고 피가 흐르며 처절한 생존의지와 자유로운 운동성을 지닌 유기체임을 확인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여정중에서조차 일부러 의식을 끊는 수면제에 의존했다. 해가 떠있을 때 눈을 뜨고 저물었을 때 눈을 감는다는, 최소한의 생활규칙을 유지하기 위해.
한편 나는 러시아에 오기 전에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대신 추상적인 추측을 몇 가지 했다. ‘말이 안 통해서 많이 힘들거야’ 라거나 ‘아무래도 엄청 춥겠지’ 같은 것들. 그런 추측들 중에는 ‘분명 중간에 약이 떨어진다’ 는 것도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러시아에서의 나는 어느 시점부터 눈앞이 캄캄해지리라는 것을. 다른 모든 사람들이 자기 자리에 누워 눈을 감고, 편히 숨쉬며 의식을 내려놓고 있을 때. 나 홀로 불꺼진 천장을 응시하며 밤을 지새워야 할 것을 알았다.
수면제는 이제 단 한 알하고 반 남았다. 난 그 하나 남은 약을 지금 먹지 않고, 더 중요한 시기를 위해 아껴두고 싶었다… 잠깐, 내가 ‘더 중요한 시기’라고 썼나? 아니다.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시기 자체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하등의 가치도 의미도 없어서, 어떤 방법으로든 그 시간을 피해 달아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니까… 나는 두렵다.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볼 수도 없는 그 시간이, 내 불우한 의식을 꽉 붙잡고서는 약으로마저 도망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두렵다! 불면증이야 말로 내 인생 최대의 적이다! 그 병이 내 젊음을 갉아먹고, 환하게 밝아 귀중한 시간을 기력없이 낭비하게 만든다…
그렇지만 이렇게 긴 밤에는 생각조차 나를 배신한다. 정말 그런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나?
사실은 그렇지 않을지도 몰라. 너는 그저, 네가 누릴 자격이 안 되는 인생을 꿈꾸고 있는 주제에.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는 자신을 위해 변명거리를 늘어놓는 것 뿐이야. 할 줄 아는 거라곤 바코드 찍는 것뿐인 편의점 알바생이, 잘나가는 연예인 인스타그램을 보면서 ‘나도 돈과 기회만 있었더라면 이렇게 될 수 있었을 텐데’ 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무의미한 착상들이 텅 빈 마을버스 정류장처럼 스쳐지나가고, 나는 해가 떠오르는 아침 무렵—아마도 일곱시에서 여덟시 사이였을 것이다—에나 정신을 잃을 수 있었다. 깨어났을 땐 아홉시였다. 충분히 자지 못해 눈빛은 퀭하고, 기름으로 떡진 머리에 몸 구석구석이 찝찝했다.
같은 역에 내리지만 각자 저들이 더 바쁘다고 생각하는 동승객들 때문에, 나는 겉옷을 꺼내 입는데만 십 분을 넘게 기다려야했다. 열차는 아홉시 삼십 분 정각에 노보시비르스크 역에 도착했다. 내가 캐리어 가방을 역내부 통로로 끌고 들어갔을 때는, 대부분의 승객들이 먼저 가고 없어 나 혼자 길을 찾아야 했다.
하기야 그 중에 내가 제일 바쁘지 않은 건 엄연한 사실이었다. 역에서 내려 숙소로 가는 택시를 잡아탔지만, 체크인은 오후 두 시부터 가능하도록 돼있어 무거운 짐만 맡겨둔 뒤 시내로 나왔다.
뜬 눈으로 밤 새는 일이 최악인 이유는 ‘누워 잠든 채로 체력을 회복해야하는 시간임에도 신진대사가 계속 움직이며 에너지를 소모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밤을 지샌 뒤 피로에 지쳐, 아예 안 자느니만 못한 새우잠을 깨면 완전히 다른 하루가 시작돼있다.
이건 록맨 같은 게임에서 체력을 아주 조금만 남기고 탄을 깼는데, 다음 스테이지가 시작되고보니 회복은커녕 있던 에너지마저 한 칸으로 줄어있는 듯한 기분이다. 차라리 게임이었다면 ‘어차피 끝까지 깰 가망이 없으니까’ 죽고나서 다시 시작하면 그만인데. 알다시피 인생에는 그런게 없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는 수밖에 없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기 때문이다. 삶이라는 이름의 이 광활한 게임. 스테이지를 우리는 단 한 번의 목숨과 기회로서 일체의 반복없이 클리어해야한다.
일주일만에 새로운 도시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 날의 대부분을 비몽사몽간에 지나보냈다. 날이 밝은 동안은 제대로 자려야 잘 수가 없다. 피로에 지쳐 누워도 ‘뭔가 해야할 것 같은 기분’을 이길 수 없기 때문이다.
일단은 밥이나 먹자는 느낌으로 시내에 있는 식당들을 뒤졌다. 지도를 보고 찾아가니 영업시간이 아니라서 문이 닫혀있고, 그래서 영업시간을 확인하고 가니까 가게가 사라져있는 등의 해프닝이 있었지만 어떻게 잘 찾아 들어가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아침때도 점심때도 아닌 애매한 시간이라서인지—아니면 그냥 장사가 안되는 곳인지—몰라도 손님은 나 하나밖에 없었다. 하기는 생긴 것부터 식당보다 호프집에 더 가깝게 느껴지는 곳이었다. 다행스럽게도 식사 메뉴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 나는 작은 사이즈의 파스타 하나와 샤슬릭—러시아식 꼬치구이—을 한 접시, 에델바이스 생맥주 한 잔을 주문해서 전부 먹어치웠다. 음식들은 어디 특출난 데없는 평범한 맛이었다. 먹을 땐 꽤 맛있어서 와구와구 먹어치우는데, 가게를 나가서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배가 찼다’는 느낌 빼고 다 잊히는 그런 맛… 이제는 가게 이름도 잊어버렸다.
맥주 한 잔이면 취기가 느껴지기보다는 오히려 힘이 좀 나는 주량이다. 그걸 연료삼아 향토박물관을, ‘시베리아 스토리’라는 이름의 카페에서 마신 라떼를 그다음 엔진으로 노보시비르스크 국립 미술관을 차례로 방문했다. 향토 박물관은 넓었고, 미술관에는 그림이 많았다.
미술관 초입부부터 뭔가 익숙한 화풍의 그림이 보였다. 러시아 이동파의 대가 일리야 레핀의 작품이었다.
‘레핀이면 러시아 화가들 중에서도 최상위 티어 아닌가? 그런데 왜 이런 곳에…’
전시의 수준이 아니라, 걸려있는 위치가 다소 의아했다. 그리 넓지도 않은 통로에,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그냥 휙 지나가버릴 것 같은 벽에다가 띡 갖다놓은 것이… 미술관을 쭉 둘러보는데 대체로 그런 느낌이었다. 그림 한 점 한 점은 훌륭하고, 개중엔 이름있는 화가들—바실리 페로프, 수리코프, 니콜라스 레리히, 드미트리 레비츠키—의 작품도 많이 있었는데, 그런 소장품이 너무 많아서 되는대로 마구 걸어놓았다는 인상이었다. 심지어 루벤스 그림까지 한 점 있었는데, 그런 거장의 작품이 뭐랄지 너무 뜬금없고 하찮기까지한 방식으로 튀어나와서 ‘이거 진짜가 아닐지도 몰라’ 같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한편 한국의 무슨 특별전, 기획전 같은 곳에 가보면, 걸려있는 작품은 별로 없고 벽면의 절반 이상이 그 몇 안 되는 작품이나 예술가에 대한 설명으로 채워진 경우가 많았다. 아무래도 해외 미술관들의 소장품들을 대여해오는 것이다보니, 절대적으로 많은 수의 작품을 수급하기가 어려웠던 탓이겠지.
그런데 이곳은 그런 전시관의 대척점이라고 할만한 미술관이다. 설명은 거의 없고, 보이는 방과 복도마다 그림으로 벽을 도배해놓다시피 해놨다. 덕분에 그림은 질리도록 많이 볼 수 있지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멋진 그림을 그려놓았는지는 관객들 스스로 찾아야한다. 레핀이 누구고 루벤스가 누군지 모르면 ‘서양의 흔한 화가 1’ 쯤으로 여기고 놓칠 공산이 크다. 어쩌면 이것도 러시아다운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 러시아에는 러시아다운 것들이 얼마나 있고 얼마나 없을까.
관람을 마친뒤 숙소로 잠깐 복귀했다가, 입고있던 팬티 뒷 면이 보기 흉하게 찢어진 것을 뒤늦게 알아차렸다.
‘어째 불편하다 싶더라니’
생각해보니 이것도 오래 입기는 했다. 언제 샀는지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최소한 삼 년은 넘게 입었다.
팬티 같은 건 한 번 찢어지기 시작하면 다시 꿰매놓아도 금방 터져버린다. 맘편하게 버리고 적당히 새 것을 사는 게 낫겠다 싶어서, 밥도 먹을겸 가장 가까운 쇼핑몰에 갔다.
쇼핑몰은 우리나라랑 완전히 똑같이 돼있었다. 일층은 명품샵과 패스트 패션 옷가게, 이층은 가전제품과 전자기기, 삼층에는 생활용품과 장난감 가게가 있고 사층은 푸드코트다. 분위기나 구조나 눈에 보이는 러시아어들만 적당히 한글로 바꿔놓으면 해외에 있다는 것도 못 알아차릴 듯하다.
다만 옷 가격도 우리나라보다는 저렴한 편이고, 그 큰 쇼핑몰까지 가서 팬티 한 장만 덜렁 사오는 게 어딘지 변태같은느낌도 들어서, 갈아입을 셔츠 한 벌과 열차 안에서 입을 파자마 바지도 같이 샀다. 무더운 열차나 숙소건물 내부에서까지 두꺼운 바지를 입고 지내야한다는 것이 어지간히도 답답했던지라. 기왕이면 돌아가서도 입을 수 있는 물건들로 사고 싶었다. 응? 방금 뭐라고 생각했지? 돌아간다고?
세상에. 이런 내게 돌아갈 곳이 있다니. 이제보니 집에 돌아간 내 모습이란 게 상상이 안 된다.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고. 씻고 싶을 때 씻고. 갈아입고 싶을 때 옷을 갈아입고. 밖에 나갈 때는 무거운 노트북이나 캐리어 가방없이 외투만 걸치고 훌쩍 나갔다. 볼일이 있으면 차를 운전해서 갔다. 언어적 장벽을 느끼지 않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눴다. 그렇게 안온한 하루하루를 보냈다는 것이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이런 걸 집에 있을 땐 어떻게 했었더라’하는 느낌이 들면, 그땐 정말 멀리까지 떠나온 것이다.
숙소까지 돌아가는 택시를 잡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첫 번째 택시는 내가 서있는 곳을 지나서 사라져버렸고, 두 번째 택시는 호출한곳에서 너무 멀리 있었던 나머지 오는 데 십오 분이나 걸렸다. 아무튼 나는 돌아갔다. 돌아가기위해 돌아갔다. 떠나기위해 떠났던 것이 여행의 전반부였다면, 지금의 내 여정은 분명한 후반부에 접어들었다고 할 수 있었다.
이날 쇼핑몰에서 얻은 최고의 전리품은 새속옷도 셔츠도 아닌 컵라면이었다. 꽤 큰 쇼핑몰이었던만큼 이층인가 삼층인가에 세계각국의 잡화를 모아놓은 상점이 한 곳 있었는데, 거기서 무려 ‘김치면’과 ‘새우탕’ 그리고 ‘참깨라면’을 하나씩 구할 수 있었던 것이다. 이건 이동중에, 먼 길을 가는 열차 안에서 특히 귀중한 식량이 될 것이었다. 한국의 맛이 너무 그리웠던 나는 당장 하나를 까서 먹을까 생각했지만, 푸드코트의 쿵포Kung Pho라는—몹시 귀여운 몽골계 소녀가 한 명 주방에서 일하고 있던—식당에서 아시아식 저녁을 먹고 왔기 때문에 오늘은 참고 자기로 했다. 이젠 정말 한계까지 지치기도 했고… 그 상태에서 따뜻한 물에 몸을 씻고나니 곧장 기절할듯이 의식이 물렁물렁해졌다.
나는 안전을 위해, 최소한의 보장을 위해 쪼개진 수면제 반 알을 삼키고 침대에 누웠다. 그리고 ‘내일 아침 곧장 모스크바로 가는 열차를 타야겠다’고 생각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