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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묵돌 Apr 27. 2022

여로에서 (完)

모두들 돌아서 간다

 

 가장 중요한 날의 나는… 의외로 아주 늦게 일어나버리는 일은 없다. 대신 ‘대충 이정도 시간에 일어나서 여유롭게 가야지’하고 알람을 맞춰놓은 시간에 일어나지는 못한다. 꼭 그것보다는 늦은 시간에, 아주 포기할 정도로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잠깐이라도 여유를 부려서도 안 될 그런 때에 맞춰 눈이 떠지는 경우가 많다.

 이 날 내가 일어난 오전 열시반이라는 시간. 전날 계획으로는 ‘이미 공항에 도착해서 탑승수속을 마친 뒤 탑승장 근처 카페에서 커피나 홀짝일 예정이었던’ 시간이었다. 다행히 숙소에서 반타공항까지는 차로 삼십분 남짓한 거리로, 서울-인천만큼이나 멀리 있지는 않았다. 그렇다쳐도 늦은 건 늦은 거라서, 당장에 샤워를 하거나 머리를 감는 건 생략할 수밖에 없었다.

 ‘비행기 타는 내내 머리가 가려울텐데’ 라는 생각도 짐주머니에 구겨넣고, 재빨리 짐을 챙기고 옷을 입은 뒤에 체크아웃 수속을 밟았다. 앱으로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호출해놓은 다음, 카운터 직원의 도움을 받아 PCR 음성 증명서를 출력해 챙겼다. 다만 문서 프린트에는 비용이 들었다. 두 장에 1유로였다.



 택시는 생각보다 금방 도착했다. 검은색 도요타 코롤라에 매우 친절한 흑인 운전사가 내려 짐 싣는 걸 도와줬다. 나는 택시 뒷좌석에 몸을 기대고, 공항 도착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숨을 돌렸다. 그래도 택시가 빨리 잡혀서 다행이야… 그런데 내가 택시를 어떻게 부른거지?

 나는 러시아에서 즐겨썼던 얀덱스 택시앱을 그대로 썼다. 나라가 바뀌었으니 보통은 다른 앱을 써야 했을 텐데. 한 달 간의 습관으로 인해 아무 생각없이 똑같은 앱으로 택시를 부른 것이었다. 근데 그게 핀란드에서도 곧잘 쓰이는 앱이었다, 뭐 그래서 자연스럽게 공항까지 가는 택시를 불러 탈 수 있었다는 것인데. 이 기막힌 우연을 감지하고 나자 또 한 번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다. 택시앱이 호환이 되지 않았더라면, 또 다른 앱을 깔고 자시고 하면서 적당한 택시에 올라타는데만 수십분이 더 소요됐을지 모른다.

‘어쨌든 집에 갈 운명이기는 한가 보구나’

 아슬아슬하게 PCR 양성이 나온 것도, 알람을 놓치긴 했지만 그리 늦은 시간에 깨진 않은 것도, 우연히 다른 나라에서 똑같은 앱으로 택시를 부를 수 있었던 것도. 나를 집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하나의 목적으로 수렴했다. 때때로 우연이란 너무 기묘해서 원래 그렇게 되게끔 짜여졌다는 인상을 주곤 한다. 그리고 그런 우연성과 필연성이 맞닿아있음을 느끼는 순간. 나는 이미 일정한 속도를 지닌 채 선로에 놓여있는 열차에 탑승해있는 것 같다. 그러니까, 어쩌면, 나는 집을 떠난 그 순간부터 되돌아가는 길위에 있었던 것이다.

 집을 나와  근처 공원을 산책하고 돌아가는 것과, 광활한 유라시아 대륙을 횡단해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는 것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그건 덤으로 주어진 길이, 남아있는 길이 얼마나 있느냐에 달려있을  모른다. 내게 있어 여로란 단순히 여행하는 길旅路이면서, 노서아를 통과하는 길露路이었지만, 동시에 돌아가기까지 남은 길餘路이기도 했다. 그렇게 보면 나는 항상, 지금  순간까지도  ‘여로에서글을 쓰고 있었던 셈이다. 우연한 말장난 같기도 하지만, 무의식이 유발하는 우연에 기막힌 창조성이 깃들어있는 것은 어제오늘 일만이 아니다.



 헬싱키-반타 공항의 터미널은 인천국제공항처럼 터미널 1과 2로 구분돼 있었다. 루프트한자는 터미널 1에 있었다. 창구에는 줄이 없었다. 독일 항공사라서 구텐탁Guten Tag이라고 인사해야하나 걱정했는데, 직원 쪽에서 먼저 헬로우, 하길래 웃으면서 여권을 꺼냈다. 코로나 관련 서류가 있냐고 묻기에 같이 꺼내줬다. 한국에서 뽑아온 백신접종증명서, 그리고 어제 오후에 받은 PCR 음성증명서였다. 수속은 금방 끝났다. 곧바로 수화물을 맡기고 탑승장 쪽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물론 독일의 뮌헨을 경유해 가는 것이라 완전히 안심할 수는 없었지만.

 탑승 게이트 주변에는 역시 면세점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금을 뗐다고 해도 비싼 물건들 뿐이고, 사봤자 가방에 넣을 공간도 마땅찮았기 때문에 그냥 지나쳤다. 걷다보니 카페도 두 군데 있었다. 한 쪽 카페는 꽤 식사다운 식사를 내오는 푸드코트 같은 곳이었고, 맞은편 카페는 커피와 간단한 빵을 파는 곳이었다.

 나는 맞은편 카페에 가서 따뜻한 카페라떼를 한 잔, 손바닥 크기의 크루아상 하나를 시켰는데, 주문 도중에 아기가 크게 우는 소리가 들려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정말 대단한 울음소리였다. “으앙”이나 “응애~” 로는 옮겨적을 수 없는, 구태여 쓰자면 “크와아아아악—!!”에 가까운 포효였다.

 나는 왠지 웃음이 터져서, 주문을 받던 아저씨에게 “대단한 락커가 될 것 같네요”하고 농을 던졌다.

 “그러게요아저씨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기타랑 드럼만 있으면 완벽할 겁니다



 게이트 앞 카페에서 삼십분 정도 커피를 마시고 빵을 뜯어 먹었다. 혹시 몰라서 화장실도 다녀왔다.

 탑승시간은 금방 다가왔다. 나는 으레 하던 것처럼,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하자 그 뒤에 적당히 따라 붙었다. 하지만 루프트한자의 경우 탑승자 그룹을 A, B, C, D… 로 나눠서 태우는 모양이었다. 입구까지 가서 표를 보여줬는데 “지금은 차례가 아니니 좀있다 당신이 속한 그룹이 불리면 다시 와라”는 말을 듣고 기다렸다가 탔다.

 ‘어째 이것도 독일인들 다운데’ 라고 생각했다. 태어나서 독일 근처도 가본 적 없는 주제에.

 내 자리는 통로와 창문 사이에 있는 중간 자리였다. 비행기는 막힘없이 금방 이륙했다.

 독일 뮌헨까지는 두시간 사십분이 걸렸다. 그곳에서 한시간 십오분을 대기, 곧바로 인천행 비행기로 갈아타야 했다. 잠을 자기는 애매하고 그래서 대충 노트북을 꺼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시간이 촉박할수록 집중력이 높아지는 것 같다. 사는데 큰 도움은 되지 않는다.

 기내식으로는 초콜렛  조각을 받았다. 루프트한자 로고가 새겨져 있는 것이었다. 아무래도 밥때도 아니고 비행시간도 짧은데 아무 것도  주면  그러니까 구색만 차리는 느낌이 강했다. 초콜렛 자체는 좋아하기도 하고 맛도 나쁘지 않아서 좋았다. 마침 당이 부족하던 시기에  됐다 싶었다.



 뮌헨은 금방 도착했다. 비행기 창문으로 내려다본 독일의 풍경은, 뭐랄까 영화 같은 데서 자주 본 느낌의 농장이 보였던 것 같다. 그것말고는 딱히 ‘독일에 왔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아주 짧은 시간동안 공항을 경유할 뿐이기도 하고. 변화가 있다면 시간상 한국과 한 시간의 시차가 더 생겼다는 것 뿐이었다. 과연 유럽과 아시아는 연결돼있는 게 맞았다.

 그렇게 뮌헨 공항에 하차한 나는 수화물을 찾으려고 이곳저곳 돌아다니다가, 끝내는 ‘이건 양심적으로 너무 멀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식적으로 말이 안되는 동선이었다. 수화물 찾기Baggage claim라는 안내판을 따라 죽 걸었는데, 가는 길에 인적이 점점 뜸해지더니 급기야 텅 비어있는 길을 혼자 걷고 있었던 것이다.

 뒤늦게 인터넷을 찾아보니, 공항 경유 시에는 수화물이 자동으로 옮겨지는 것이었다.

 ‘아니 씨발’

 수화물이고 나발이고 그냥 환승구로 갔으면 됐는데, 괜히 탑승장에서 빠져나오는 바람에 입국심사며 보안검색까지 다시 받느라 한바탕 곤혹을 치렀다. 뜻밖에도 여권에 독일 뮌헨 공항 도장이 추가로 찍히게 됐다.



 인천으로 가는 H02 게이트는 또 탑승장 맨 끝자리 후미진 곳에 있었다. 출발시간에 늦지 않게끔 죽어라 뛰었다. 뛰던 도중에 가방끈이 뚝 끊기는 통에 중간부터는 허리춤에 끼고 달렸다.

 내가 탑승게이트에 도착했을 때는, 탑승까지 겨우 십 분밖에 남지 않은 시점이었다. 맨 앞줄 의자에 앉아 땀을 닦고 숨을 돌리고나니, 주변 사람들의 행색 같은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한국사람들이었다. 한국말로 대화를 하는 소리가 들렸고, 보고 있는 스마트폰 화면들에도 한국어가 떠있는 것이 보였다. 이젠 정말로 한국에 돌아가는 것이다.

 화장실에 다녀와보니, 못보던 줄이 생기고 게이트에서 탑승권을 검표하고 있었다. 나는 헬싱키 공항에서 했던 것처럼 차례를 기다렸다가, 내가 속한 그룹이 불렸을 때 여권과 가방을 챙겨 게이트 입구로 걸어갔다.

내 앞의 한국인 승객 한 명이 승무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코로나 관련 증명서가 확인되지 않아 탑승을 거부당한 모양이었다. 키가 큰 그 남자는 화도 내고, 애원도 하는듯 하다가, 현지 관계자처럼 보이는 옆 사람과 뭐라 대화를 하더니 어디론가 통화를 하는 등 척 보기에도 예삿일 같지가 않았다.

 그동안 승무원은 가만히 서서 기다리고 있던 내게 손짓을 했다. 나는 미리 꺼내뒀던 여권과 증명서 따위를 건네줬고, 승무원은 “퍼펙트”라는 말과 함께 비행기로 가는 문을 열어줬다.

 비행기로 들어가는 통로 앞에서, 나는 잠깐 고개를 돌려 뒤를 바라봤다. 아직 상황이 해결되지 않은 듯한 남자가 두손으로—요즘 시대에 두 손으로 통화하는 일은 흔치 않다—전화기를 붙잡고 애를 쓰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그건 얼마든지 내 모습이 될 수 있었던 장면이다. 나는 슬퍼해야 할지, 안도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따지고 보면 나도 준비를 잘 했다기보다는 그냥 과정에 맞게 적당히 운이 따라준 것뿐이었다.



 역시 인천행 비행기다보니 기내에는 같은 한국인이 많았다. 아무렴 러시아에서 온 사람은 나 뿐인 것 같았지만. 한국인 승무원도 있었다. 짧은 가르마에 키가 크고, 멋진 제복을 입은 남자였다. 기내에 있는 동안 한국말 방송을 도맡았다. 나이는 삼십대 초중반 정도로 매우 젊어보였는데, 보기드물게 침착한 말투가 과연 승무원이나 파일럿에 어울린다는 느낌이었다.

 “승객여러분, 환영합니다. 우리 루프트한자 항공은… 러시아 영공을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평소와 다른 우회항로로 인천공항까지 간다는 점 양해바랍니다. 예상 소요시간은 약 열 시간 십오 분이며…”

 뮌헨에서 인천까지는 비행거리만 일만킬로미터가 넘었다. 평소처럼 잠만 잘 잔다면 눈 깜짝할 새에 도착했다고 느끼겠지만. 나는 왜인지 내가 그럴 수 없으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가능하다면 톰 행크스가 출연하는 영화를 한 편 받아놓고 싶었는데, 인터넷 속도가 어지간하게 느려서 이륙할 때까지도 절반도 받지 못했다. 그만 포기하고 잠이 안 오면 하던대로 글이나 쓰기로 했다.

 마침내 한국행 비행기가 이륙하는 순간. 나는 끝끝내 한국에 돌아가게 됐다는 생각에 조금 울컥했다. 비행기가 공중에 뜬 이상. 나의 귀국을 막을 수 있는 것은 항공기 납치테러나 기내 서비스에 불만을 가진 재벌가 자제밖에 없을 것이었다. 어쨌거나 나는 높은 확률로 한국에 돌아가게 됐다. 전날 새벽만 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버스터미널에서 핀란드로 넘어가는 버스를 무사히 탈 수 있을지 노심초사했다는 사실이, 이제와선 오래된 동화 같이 멀게 느껴졌다.

 이륙으로부터 한 시간 쯤 지났다. 승무원들은 기내식을 주기에 앞서서 마실 것을 나눠줬다. 나는 몹시 배가 고픈 상태였다. 결국 식사가 나오기 전까지 와인을 세 잔이나 마셨다.

 기내식은 만족스러웠다. 라자냐는 웬만해서 맛이 없기 힘든 음식이고, 허기도 심해서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배도 부르고 취기도 오르니 기분이  떴다. 실제로 비행기는 상공 일만미터 부근을 날고 있었다.



 잠깐 졸았다. 승무원이 어깨를 툭툭 치더니 입국신고서를 건넸다.

 ‘아. 이런 건 미리미리 작성해두는 게 좋지’

 발 밑에 놔둔 가방에 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가 않았다. 마침 복도 건너편 자리에 앉은 분이 한국인이었다. 자기 것으로 보이는 펜으로 한참 뭔가를 쓰고 있길래 “저기, 죄송하지만 그거 다 쓰시면 잠깐만 빌려쓸 수 있을까요. 볼펜을 어디 뒀는지 모르겠어서.” 하고 물었다.

 “아, 방금 다 썼어요. 편하게 쓰세요” 상대방은 흔쾌히 펜을 빌려줬다.

 마스크를 쓴 모습이나 말투로 볼때 서울경기권에 사는 이십대 중후반의 여성 같았다. 옆에 앉아있다가 사람이 없는 통로 좌석으로 옮겨 앉은 중년 여자는 어머니이고… 추측컨대 모녀가 함께 유럽여행을 떠났다가 돌아가는 모양새였다. 뮌헨 공항에서 출발했으니 독일이나 그 근처 여행이었을까?

 다 쓴 펜을 돌려주면서 어쩌다 말을 텄다. 어머니와 같이 여행을 하다 돌아온 게 맞았지만, 나처럼 독일은 경유지로 들렀을 뿐 여행 자체는 스페인만 둘러보고 왔다는 모양이었다.

 “저도 뮌헨은 경유지이기는 했어요” 내가 말했다.

 “어디서 출발하셨는데요?” 여자분이 물었다.

 “음, 그게. 핀란드이기는 했는데요”

 “아하, 북유럽 여행을 하신 건가요?”

 “아, 아뇨. 러시아에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왔어요”

 “러시아요?” 여자분은 적잖이 놀란 눈치였다. “지금까지 러시아에 계셨던 거에요?”

 “네. 이틀전까지만해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었어요. 비행기가 취소되는 바람에, 거기서 버스를 타고 핀란드로 가서… 뭐 그랬어요.”

 “어쩌다 러시아를 다 가셨대요? 이런 시기에.”

 “전쟁이 일어날 줄 몰랐거든요. 제가 블라디보스토크에 갔을 땐… 거기서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로 가던 도중에 전쟁이 일어난 거에요. 그래서 비행기가 취소됐고… 그래도 여기 잘 탔으니까요.”

 “…많은 일이 있었네요?”

 “음, 그렇죠. 많은 일이 있었어요.” 나는 앉아있던 좌석의 각도를 조절하고, 머리를 뒤로 깊게 누이면서 말했다. “누구나 그렇긴 하지만”

 그 여자분과는 많은 얘기를 했다. 나이는 나랑 비슷한 이십대 후반이었는데, 어머니와 해외여행을 간 건 처음이라고 했다. 직업은 상담사였다. 나는 내담자로서 상담사와 자주 대화를 해보았는데, 사석이라서 그런지 자기 의견을 명확하게 이야기하기보다는 상대방 이야기를 더 들어주는 느낌은 덜했다.

 모녀 여행이 으레 그렇듯 해외에서 몇 번 크게 싸우기도 했다는 모양이었다.

 “상담사가 부모님과 싸우는 게 잘 상상이 안 되는데요” 내가 말했다.

 “뭐, 비슷해요. 남들이 겪는 문제에 조언을 해준다고 해서, 상담사가 똑같은 문제를 겪지 않는다는 건 아니니까요”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 이야기할 때—완전히 지쳤거나 자존심을 세우는데 급급한 표정 대신—반짝이는 눈빛으로 허공에 있는 이미지에 몰입한 채 말을 이어가는 사람이 있다. 나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한다. 모르긴 몰라도 본인이 하는 일에 깊은 애정이며 탐구정신이 있어보이는 그런 모습. 내가 글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그렇게 보여지고 있을까.

  이후의 대화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술상담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가 미술사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직업에 대해  말하다가 기회가 닿으면 책을 보내주겠다고 말을 했던  같다. 대화를 마친 나는 다시 피곤해져서 의자에 머리를 기댔다. 비행기는 사우디아라비아 주위를 날고 있었다. 기내의 불빛은 화장실과 비상탈출구 표시등을 제외하고 모두 꺼졌다.



 —내가 그대로 밤을 지새게 된 경위를 설명하자니 다소 부끄럽다. 노트북을 꺼내고 처음 한두 시간 정도는 성실하게 글을 썼던 것 같은데, 뇌도 식힐겸 깔려있던 <문명6>를 시작한 것이 문제였다.

 “석기시대의 커다란 짐승들과, 처음으로 직립보행하는 인류의 시초까지, 먼 여정을 거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내 뇌는 물론 노트북의 불쌍한 CPU도 식기는커녕 불타기 직전까지 달아올랐다. 악질적인 불멸자 난이도의 문명 세계에서, 내 수도를 죽어라 괴롭히던 야만인 캠프 세 곳을 불태우고, 이웃 나라의 군사적 위협에 맞서 성벽을 올리며, 뒤늦게 르네상스 시대에 합류해 종교 불가사의인 바실리 대성당을 건축할 즈음… 나는 보았다. 한국인 승무원이 천천히, 소리없이 착륙준비를 마쳐가는 모습을. 굳게 닫힌 차광막 너머에서, 실눈처럼 저며드는 눈부신 햇살.

 나는 그렇게 한국에 도착했다.

 공항에 도착해서, 나는 오랫동안 해외에 있다가 돌아온 사람들이 으레 겪는 과정을 거치며 입국절차를 마쳤다. 해외에서의 확진경험 때문에 검역소 인터뷰를  오래 해야하긴 했지만. 나는 한국말은  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지장없이 흘러갔다. 뮌헨에 놔두고   알았던 수화물도 무사히 되찾았다. 이래저래 고생은 했어도 한국에 도착한 것이 감격스러웠다. 집에 도착하면 혼자 축배나  생각으로 면세점에서 가장 저렴한 위스키를   샀다.



 터미널 밖으로 나왔다. 한국에는 벌써부터 봄 냄새가 났다. 내가 러시아로 출국한 것이 2월 초, 꽃샘추위다 뭐다해서 새벽바람이 쌩쌩거리던 시기였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서, 공항이 아니었다면 내가 입고있던 두꺼운 코트나 겨울 부츠를 해명하기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짐도 무겁고 해서 집까지는 택시를 탔다. 한 시간이 안 돼 집 근처에 도착했다. 택시 치고는 차가 커서—아이오닉이었다— 너무 좁은 골목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기사분이 곤혹스러워하는 눈치길래 나는 “여기까면 됩니다. 나머지는 걸어갈게요”라고 하고 차에서 내렸다. 날씨가 좋아 조금은 힘을 들여서 걷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내가   동안 떠나있던 동네를 찬찬히 걸어서 집으로 향했다. 건물 너머로 새소리가,  점심시간이  근처 유치원에서 아이들 웃음소리가 들렸다. 러시아에서는 맡을  없었던 산뜻한 공기의 냄새와, 전날 눈이 내린 흔적 같은  온데간데 없이 깨끗한 보도블럭을 확인했다.



 마침내 집에 도착했다.

 나는 떠나기 전에 집 청소를 꽤 꼼꼼히 해놓았다는 것에 만족했다. 짐을 풀지도 않고 소파에 풀썩 앉아보고, 외투를 벗지도 않은 채 침대에 누워 고요를 만끽하다 스르르 잠이 들—

 —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실업급여!’

 그 네 음절짜리 단어 하나가 뇌리에 떠오르자마자, 온 몸에 전율이 일고 아드레날린이 분비되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밤을 새서 피곤한 와중에, 부랴부랴 차키를 챙겨 지역 고용복지센터로 황급히 달렸다. 한 달이나 자리를 비워서인지, 안 그래도 낡은 차는 먼지 투성이가 돼있었고, 시동을 걸었는데도 영 앞으로 가는 힘이 시원찮았다. 그래도 음악은 잘 나왔다. 러시아에서 들었던 노래가 그대로 이어져 나왔다. 비틀즈의 <A Day in the life>였다.


…I saw a film today, oh boy

The English Army had just won the war

A crowd of people turned away

But I just had to look

Having read the book

I'd love to turn you on…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관악에서 구로디지털단지로 이어지는 길은 무던히도 막혔다.



 고용복지플러스센터. 타닥, 탁, 타다닥…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복사용지 냄새, 하얀 형광등으로 도배된 천장. 그 밑으로 무수한 책장과 고통받는 공무원들의 업무소리가 겹쳐 관공서라는 공간을 이룩하고 있는 곳이었다.

 “이게, 실업인정일로부터 14일이 지나면 변경 신청을 못하게 되어있거든요?” 고용노동센터의 담당 주무관은 컴퓨터 화면을 보며 말했다.

 “네… 알고 있어요.” 나는 말하는 도중에도 헉, 헉, 하며 숨찬 소리를 냈다. “오늘이 딱 14일째 아닌가요?”

 “…맞아요. 정말 아슬아슬하게 오셨네요. 몇 시간만 더 지났으면…”

 “알아요.” 라고 대답했다. 당연히 알고 있었다.    분량의 실업급여가 그대로 증발해버렸을 것이다. 집에 도착해서 그대로 잠들었더라면.  열한시쯤에 일어나서 창밖으로 몸을 던졌겠지.

 “아무튼 절차상 문제는 없는 것 같고…” 주무관은 창구 앞으로 내가 건넨 신분증을 되돌려주며 말을 이었다. “일자 변경은 한 번 밖에 안 되니까요. 다음에는 이렇게 늦으시면 안 돼요. 알겠죠?”

 “네. 명심할게요…”

 “근데 왜 이렇게 늦으신 거에요? 14일째에 딱 맞춰오는 사람은 처음 봐서요.”

 “그으게… 그동안 일이 좀 있었거든요. 어우…”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그대로 서서, “아. 무슨 큰 일이라도 있으셨어요?” 하고 물어오는 주무관의 걱정어린 표정을 몇 초 쯤 바라봤다… 그리고 대답했다.

 “아뇨. 별 일 아니었어요.”

 해는 아직 중천에  있었다.

 나는 근처에서 밥이나 먹을까 하다가,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어 곧장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집에 오자마자 선반의 화분에 물을 주었다. 넘쳐흐를만큼 흠뻑 주었다.

  보던 사이에 잎이 하나 늘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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