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그리로 갈게요.
어릴 적, 책상에 줄 긋고 넘어오면 다 내꺼 한 적이 있다. 그땐 장난처럼 연필로 그었던 선이 지금은 마음 깊이 패여 누군가 그것을 밟으면 상처가 날까 두렵다. 언제부터였을까. 내 마음에 죽죽 선을 그어버렸을 때가.
내 어둡고 추악한 면을 누가 알까 두려워 깊숙이 숨겼을 때부터, 관계 맺음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 예의를 지키고 나의 시간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 남을 존중한다는 허울 좋은 말을 할 때부터였나 보다. 겉보기엔 그럴 듯하지만 사실은 차갑고 냉정하기 그지없는 선들을 그어 놓고 예의 바르고 경우 있는 사람으로 보이길 원했다. 그것을 선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얼마 전 글쓰기 선생님께 물었다. '나는 좋은 사람인데 왜 사람들은 나를 어려워할까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난 참 인기가 많은 사람인데 왜 그들은 나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하지 않을까요?' 선생님께서 되물으셨다. '왜 당신은 그들에게 먼저 다가지 않나요?' 머리를 맞은 듯 했다. 그들의 시간을 존중하니까, 그들이 부담스러울 수 있으니까. 아니 사실은 거절당할까 두려워서. 스스로 선을 그어 놓고 마음에 드는 사람에게 특별히 허락했다. 너는 '넘어'와도 된다고. 내가 그에게 넘어가는 대신 강 건너에서 손짓만 하고 있었다. 배 한 척 없는 깊은 강을 용기내서 건너오라고. 선생님께서는 주인공 병이라고 하셨다. 사실이다. 손 하나 까딱 않고 주위에서 다 해주기를 바라는 참으로 수동적인 주인공이었다. 선생님께서 말씀해 주시기 전까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다.
이야기를 다 들으신 선생님께서 미션을 주셨다. 주위 사람들에게 '함부로 친절하기' 나는 그 말씀을 함부로 선 넘기로 받아들였다. 나의 선을 무작정 함부로 넘어보기. 요즘 나는 그동안 가만히 않아 받기를 기다렸던 친절들을 선 넘어 건네주는 중이다. 그것이 익숙해지면 내 안에 선들을 하나씩 지워버릴 수 있겠지. 언젠가 내 안의 선들이 무의미해지길 기대하며 오늘도 함부로 친절을 실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