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과 잡초

by 이인영

파릇파릇 새순이 올라오는 봄이다. 아이들 픽업 길에 만개한 벚꽃을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먼 길을 돌아갔다. 길 따라 늘어선 벚꽃은 언제 봐도 장관이다. 연분홍색 흐드러진 꽃잎들이 바람에 춤추는 모습은 마치 아이들이 뛰노는 것 같았다. 혼자, 그리고 가족들과 함께 몇 번을 드라이브 하며 감탄했다. 사춘기 큰 아이도 벚꽃에게는 마음이 열리는지 꽃 한 송이를 고르고 골라 따왔다. 식탁에 놓고 둘이 앉아 꽃잎이며 꽃술이며 너무 예쁘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주말에 날이 또 추워지고 비가 온다는데 아쉽다. 좀 더 아름다운 벚꽃을 즐기고 싶은데 추운 날씨에, 내리는 비에 조막만한 어여쁜 꽃잎이 다 떨어질까 걱정이다.


어릴 적 살던 동네에 오래된 벚꽃길이 있었다. 벚꽃이 만개할 땐 거의 모든 동네 사람이 마실 나와 꽃을 구경했다. 벚꽃 사진 한 장 없는 사람 찾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길이었다. 한 동네에서 자라 어린 시절 기억을 공유하는 남편과 가끔 그 때를 떠올린다. 아름다웠던 동네 벚꽃 아래서 데이트도 하고 싸우기도 했던 기억들. 우리 부부의 추억 한 켠에도 그 길은 자리한다. 하지만 몇 십 년 동안 한 자리에서 흐드러지게 피었던 벚꽃은 한 날 모두 사라졌다. 오래된 아파트가 재개발에 들어가면서다. 지금도 가끔 가는 그 동네는 봄마다 허전하다. 흐드러진 벚꽃 대신 높은 회색 아파트만 빽빽하니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봄의 추억을 무엇으로 간직할까 싶다. 아, 잘 꾸며진 아파트 화단에 더 예쁘고 정갈한 꽃들이 있으려나.


답답한 아파트에서 벗어나 자연을 느끼고자 들어온 전원주택. 우리 집 마당에도 봄이 왔다. 겨우내 잡초가 없어 참 편했는데 날이 풀리자마자 그것이 고개를 내밀었다. 날을 잡고 앉아 잡초를 뽑은 지 두 시간, 일어나 둘러보니 내가 뽑은 곳이 어디인지 티도 안 난다. 이사 올 때엔 맘에 들었던 넓은 마당이 이렇게 미울 수가 없다. 다음 번엔 꼭 마당 좁은 집으로 가리라. 씩씩대고 다시 앉아 토끼풀을 잡아 뜯기 시작했다. 줄줄이 뿌리를 내리는 토끼풀은 뽑다보면 쾌감이 느껴진다. 큰놈 하나 잡아 올리면 뿌리내렸던 긴 줄기가 쑤욱 하고 따라 올라오는데 그 손맛이 기가 막히다. 이리저리 호미질을 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뽑다보니 어느새 저녁 식사를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내일은 좀 더 일찍 시작해 잡초를 박멸하기로 마음먹었는데 웬 걸, 비가 내린다. 비가 오면 그동안 한 잡초 제거 작업은 도로 아미타불이다. 빗소리가 잡초 쑥쑥 자라는 소리로 들릴 만큼 비 그치고 나가보면 그새 한 뼘 자란 잡초와 인사를 한다. 오늘도 봄비는 그치지 않고 잡초는 한층 더 푸릇해졌다. 저 놈이 뿌리를 얼마나 더 내렸을라나, 쉬이 뽑기 힘들어졌을까 걱정이다. 잡초와 눈싸움을 하다 고개를 드니 문득 집 앞 벚꽃이 눈에 들어온다. 길가 벚꽃보다 개화 시기가 늦은 우리 집 앞 벚꽃은 아직 피지 않았다. 바람 불고 추운 날씨에 나오려던 꽃잎들이 도로 들어가 버린 걸까. 날씨를 이겨내고 만개하면 참 좋을 텐데.


그러다 흠칫 놀랐다. 무성한 잡초에 툴툴거리다 주춤한 벚꽃에겐 아쉬움을 보내는 간사스러운 마음이라니, 이게 차별이 아니고 뭘까. 이름 있는 사랑스러운 꽃이 베어진 것은 아쉬워 몇 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마음에 두고 남편과 이야기를 하면서 마당의 잡초는 가차 없이 뽑아버리는 이중적인 모습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렇다고 잡초를 품자니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내 마당이 깔끔하고 단정한 잔디 마당이었으면 좋겠다. 벚꽃이나 잡초나 봄을 알리는 것은 매한가지인데 마음의 쓰임이 이토록 다르다니 아이러니하다.




현 대법관이 판사일 때 그에 관한 기사가 생각난다. 800원을 횡령한 버스기사 판결에 대한 기사였다. 800원 횡령해 해고된 버스기사의 재판에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판결을 내린 그는, 그보다 몇 년 전 재판에서 향응을 수수한 혐의로 면직 받은 검사의 징계를 취소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사람은 모두 법 앞에 평등해야 하건만 판결이 이토록 다르다니 이 역시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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