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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녁 Apr 11. 2022

시간의 역사

빨리빨리 문화와 근대화

“안절부절”

(부사) 마음이 초조하고 불안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모양.


새로운 것을 만난 사람은 십중팔구 그럴 것이다. 초조하고, 불안할 것이다. 아주 먼 옛날, 혹은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기차라는 것이 처음 들어왔던 시절 그 개화기 사람들도 그랬을 것이다. 사람들은 근대적 시공감각을 ‘시간표’를 가진 기계들에 의해 길들면서 느끼게 됐다.


기차를 타려면 정해진 시간 안에 맞춰 역에 나가야 한다. 역에 나가보니 기차는 떠나고 없다. 시간 개념이 없어서다. 차츰 강박적 시간관념에 길든다. 직선이 바탕인 철로는 쭉 뻗어 나가기만 하는 시선과 시감각을, 두 시간으로 단축되어버린 거리는 급박한 공감각을 심어놓기에 충분했다.


철도는 근대화를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이젠 ‘고요한 아침의 나라’ 혹은 ‘선비의 나라’란 없다. 느긋하던 걸음이 잰걸음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정해진 시각에 맞춰야 하는 강박과 빠르게 직진하며 움직이는 시·공감각으로 바뀌어야만 했다. 이 모든 게 한 공간에 응축된 철도역에서 스스로 근대형 인간으로 개조되어야 함을, 그 당시 철도를 타 본 사람이라면 다 느꼈을 것이다. 근대는 검은 연기 내뿜는 기차와 함께 참으로 잔망스럽게 찾아들었다.


대한민국은 '빨리빨리' 사회로 세계에 널리 알려져있다. 하지만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이리도 바삐 살았던 것은 아니다. '동방예의지국', '선비의 나라', '고요한 아침의 나라'로써, 예의범절을 지키며 조용하고도 느긋하게 살아왔다.


그래서였을까? 우린 가난했고, 세계화의 흐름을 따라잡지 못했으며, 가장 가난하고도 뒤쳐져있는 나라였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보단 우리 옛 것을 지키길 좋아했고, '이양선'이라 불리는 서양 이방인들에게 총과 칼을 먼저 겨누었다.(물론 처음 찾아왔던 이방인이 양아치였다는 점은 참작할만 하다.)


그들은 기차와 증기선을 타며 우리와는 달리 빠른 삶을 살았다. 같은 거리를 더 빨리 갈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을 갖고 있었던 게다.


경복궁에 내걸린 일장기.

결국 나라를 빼앗기고 말았다. 일본은 우리보다 한 발짝 앞서 나가 우리를 사방에서 포위했고, 그렇게 우리는 자연스럽게 '먹히고' 말았다.


일본은 한반도를 빠르게 바꾸었다. 경인선 철도를 시작으로 전 국토에 철도를 깔았고, 한반도 사람들보다 '더 빠르게' 쌀을 수탈해갔다. 녹그릇, 숟가락, 사람까지도 빼앗았다. 너무나도 빨랐던 그들로부터 우리의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빨라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우린 일본보다 더 빨리 중국에 나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수립 해야했고, 일본보다 더 빨리 행사장에 도착해 도시락 폭탄을 던져야 했으며, 일본보다 더 빨리 군대를 창설해 대항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때 우리가 속도를 통해 저항하던 방식은 지금까지 전해내려와, 해방 후 대한민국의 '빨리빨리' 문화가 된 것이다.


어릴 적을 생각해보면 참 느긋했던 것 같다. 삐약삐약 소리 나는 신발을 신고, 느릿느릿 지나가는 낙엽들과 인사하면서 걷곤 했다. 우린 언제부턴가 걸음이 참 빨라졌다. 숨이 가빠올 만큼 빠르게, 발걸음을 재촉하는 게 너무 당연시되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걸음이 이리도 빨라진 것은. 뒤에 칼 든 강도라도 쫓아오듯, 가쁜 숨을 몰아쉬며 목적지를 향해 걷는다.


이제 알겠다. 뒤에 쫓아오는 것은 칼 든 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시간”이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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