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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녁 Apr 08. 2022

지하철 시위를 멈추라는 너에게 묻는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지하철 시위 고찰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요즘 정치권에서 가장 뜨거운 화두를 묻는다면 ‘지하철 시위’일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는 2021년 12월부터 전국 도시철도 7개 노선(수도권 전철 1~5호선, 공항철도, 대구 도시철도 1호선)과 일부 도시철도 역사를 무단 점거, 기습 불법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도시철도 전동차 내 불법 선전물 부착, 왕십리역 스크린도어 파손, 혜화역 승강장 벽면 훼손 등 시설물 피해와 도시철도의 최대 160분에 달하는 지연 사태가 발생했다.


이 시위로 전장연은 피해를 본 시민들과 도시철도 운영사로부터 비판을 받았고, 정치권은 이에 합세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박원순 시장에서 장애인 이동권을 위해 했던 약속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이유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뒤에 지속적으로 시위를 하는 것은 의아한 부분”이라며 “윤석열 당선인이 이미 몇 달 전부터 해당 단체 간부 등에게 협의를 약속했다.”, “아무리 정당한 주장도 타인의 권리를 과도히 침해하면서 하는 경우에는 좋은 평가를받지 못할 수 있다." 하면서 "장애인의 일상적인 생활을 위한 이동권 투쟁이 수백만 서울시민의 아침을 볼모로 잡는 부조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라는 의견을 밝혔다.


이에 같은 당 소속인 김예지 의원은 이준석 대표의 발언에 대해 “섣부른 판단과 언어 사용을 통해 오해와 혐오를 조장하는 것은 성숙한 반응은 아니다”라고 지적했고, 전장연 측은 “객관적 사실도 무시하고 갈라치기에 앞장서고 있다”라며 이대표의 말을 비판했다.


계속되는 공방전에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다. 당장 이준석 대표만 해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열 개가 넘는 관련 게시물을게시했다. 각 측의 입장과 그 근거를 명료하게 정리해서 보도하는 언론은 도무지 찾을 수 없다. 그들은 대체 왜 지하철을점거하며 시위하는 것이고, 정치권은 왜 이들을 이리도 맹렬히 비난하는 것일까?

1. 약속


약속은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그건 시끄럽게 짖어대는 길 건너 빌라 주인집 똥개도 알 것이다. 특히 국민을 대표하며 국민의 신뢰를 두텁게 쌓아야 할 정치인이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만 할 것이다. (물론 뉴스를 조금만 봐도, 그건 환상에불과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약 20년 전, 오이도역 지하철 리프트 사망사고는 장애인의 이동권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불러모았다. 이에 2002년 당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은 “2004년까지 서울 모든 지하철 역사에 엘리베이터를 설치하겠다.”라고 밝혔고,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또한 재임 시절 ‘2022년까지 서울 시내 지하철역 엘리베이터 100% 설치’를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2022년 3월 현재 서울시 지하철 전체 역사 278개 가운데 16개 역은 여전히 ‘1역사 1동선(출구에서 승강장까지 연결된 통로)’에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있지 않다. 서울시가 내년도 예산안에 12개 역사 공사비는책정하고 4개 역사(고속터미널·까치산·복정·상일동)에 대해선 엘리베이터 설치 예산을 반영하지 않아, ‘2022년 엘리베이터 100% 설치’도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정치권이 약속을 어긴 것이다.


이에 대해 서울시는 반론한다. 서울시 쪽은 “엘리베이터를 설치하려면 인근 빌딩을 매입해야 하기 때문에 예비타당성조사에서 경제성이 부족하다고 나온 까치산역과 아직 설계가 완료되지 않은 역에 대해선 예산 편성을 하지 못했다”며 “관련 주무부서에서 승강 편의시설 설치 계획을 수립하면서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목표 시점을 2024년 12월로 수정했다”고 말했다. 다르게 말하면, 과거 2004년으로 약속했던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 약속이 2024년으로 20년이나 후퇴한 것이다. 심지어 3개 역은 아직 설계도 시작되지 않아 그땐 과연 약속이 지켜질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오로지 공익을위한 사업에 ‘예비타당성조사’라는 말도 안 되는 조건을 꺼내며, 약속을 어기고 만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공약한 바를 왜 오세훈 시장이 들어선 지금에서야 시위하냐는 것이다. 이 말에는 세 가지 오점이 있다. 첫째, 서울시 전 역사 엘리베이터 설치를 처음 약속한 사람은 한나라당(국민의힘의 전신) 소속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다. 둘째, 시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약속 이행 주체, 책임 주체가 바뀌는 것은 아니다. 게다가 고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임기 도중 사망으로 궐위되었다. 셋째, 서울만 대한민국은 아니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서울 시내지하철역 엘리베이터 100% 설치가 아니라, 대한민국 어디에서든 장애인의 이동권이 비장애인과 같은 수준에서 보장되는 것이다. 이준석 대표는 이번 문제를 오로지 ‘정치’, ‘정권’, ‘선거’의 개념에 매몰되어 단편적으로 바라본 것이다.

2. 무능한 정치권


누군가 국회에 테러한다면 우리 국민은 오히려 좋아할 것이라는, 농담 삼아 하는 이야기가 있다. 사실 완전한 빈말은 아니고, 국회의 무능함이 투영된 결과일 것이다. 장애인 이동권 관련 법안을 처리하는 데도 국회는 무능했다. 현재 국회에는 버스 대·폐차(차령이 만료된 버스를 다른 버스로 교체하는 것) 때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천준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안),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 안) 법안이 계류 중이고, 그 외에도 장애인 단체는 교통약자의 이동권을 포괄적으로 다룬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 개정안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그런 법안들에 딱히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이번 전장연 시위 사태에서 이러한 법안들은 단 한 번도언급된 적이 없다. 시위 현장을 찾은 단 두 명의 국회의원들도 이러한 법안들에 관한 내용은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국회는 오는 22일 국토교통위원회 교통법안심사소위에서 교통약자법 개정안을 ‘논의’(=의논, 대화, 토론…)할 예정이다.

3. 이익 추구 집단이 된 도시철도 운영사


요즘 지하철을 탈 때면 ‘지하철 운행이 멈출지도 모릅니다’라는 섬뜩한 포스터가 눈에 띈다. 골자는 만 65세 이상 노인무임승차에 대해 국가가 보전해주지 않아 적자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나는 이 포스터의 내용에 극히 공감한다.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그 어마어마한  적자를 혼자서 다 감당할 의무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 다르게 생각해보자. 제아무리 기업이라도 정부의 재정지원을 받고 시민의 이용으로 이익을 얻는 도시철도운영사는 공익성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회사 입장에서 득이 될 일에만 그렇게 포스터를 붙이고, 실이 될 일에는 ‘장애인은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라는 내부 자료를 만들어 직원 교육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게다가 서울교통공사는 2020년 1조 원대 순손실에도 불구하고 1,750억대 성과급 잔치를 벌였다. 돈이 없으니 엘리베이터를 설치할 수 없다는 말에 설득력을 갖추려면 그 엄청난 성과급을 포기할 용기라도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대한민국서울 지방 공기업이 이 지경이라니. 어이가 털릴 지경이다.

4. 혐오가 자연스러운 대중


저 ‘높으신 분들’의 무능하기 짝이 없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문제는 우리에게 있다. 대한민국은 얼마 전 역대 가장혐오스러운 네거티브 선거라는 제20대 대선을 치렀고, 이에 대중들은 혐오 표현에 익숙해졌다. 일베충, 대깨문, 김치년, 찢빠, 이번남과 같은 혐오 표현들에 이어 이젠 장애인을 향한 혐오가 시작되었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는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에서 “언더도그마(약자는 무조건 선하고, 강자는 무조건 악하다고 인식하는 현상) 담론으로 묻으려 한다.”라고 표현했다. 약자도 악한 행위를 했고 강자도 악한 행위를 한 이번 상황에서, 강자의 악한 행위로 인해 약자는 악해볼 밖에 없었던 이번 상황에서 과연 언더도그마는 어울리는 단어일까? 인류는 최소한 혐오를 혐오스러워할 줄 알았던 과거보다 더 퇴화한 듯싶다.

의견이 관철되지 않는다면 기자회견부터 공보물 배부, 국회 파행,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를 하며 노발대발할 높으신 분들과는 다르게, 이들에겐 그럴만한 힘이 없다. 서울시장과 같이 힘 있고 권력 있는 정치인이 약속을 안 지켜줬다는 사실을 보도해줄 언론사는 없었다. 그들은 목구멍이 포도청이었던 셈이다.


국민의 세금으로 만들어진 엄연한 공공재인 지하철의 운행을 막고, 시설물을 파손하는 이번 시위를 옹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관종’, ‘적군’, ‘싸워서 이겨야 할 상대’라고 표현하고 있는 정치권이 과연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가 의심스럽다.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 나무라는 격이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그럼 나는 어이없는 오묘한 기분으로 글을 마치며 지하철 시위를 당장 멈추라는 너에게 묻는다.


지하철 시위 함부로 말하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귀 기울인 적 있는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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