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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이녁 Jun 21. 2022

검찰청에는 간판이 없다

국민을 대하는 검찰과 경찰의 그 미세한 태도 차이

좌측부터 서울고등검찰청, 서울중앙지방검찰청, 경찰청 청사. 사진 | legalinsight(좌), 더팩트(우)

갈색과 검은색 사이 오묘한 직육면체 건물. TV 뉴스를 자주 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은 익히 보았을 건물이다. 이곳은 ‘서울중앙지방검찰청’으로, 종로구, 중구, 서초구, 강남구, 동작구, 관악구를 관할하는 지방 검찰청이기 때문에 정치, 경제적으로 중요한 사건들은 대부분 서울중앙지검의 관할이고,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해체되면서 특수 수사 또한 서울중앙지검이 관할하게 되면서 이곳은 ‘검찰의 중심’이라 불리고 있다.


이곳 중앙지검이 위치한 서초구에는 이곳 말고도 서울고등검찰청과 대검찰청이 위치한다. 그런데, 세 건물에는 특이한 공통점이 있다. 건물에 간판이 없다. 보통 관공서는 아래와 같이 간판을 달고 있다. 최소한 로고나 휘장, 깃발이라도 달아놓는 것이 일반적이다.

좌측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서울중앙지방법원 및 서울고등법원, 정부세종청사 14동 교육부, 대통령 집무실 시절 청와대, 정부서울청사 별관 외교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곳 서초동 법조타운의 검찰청 건물에는 그 어떤 간판, 휘장, 로고, 표식, 깃발도 없다. 차량이 진입하는 출입구에 중앙지검과 서울고검, 대검을 구분할 수 있도록 작은 패찰을 달아 놓았을 뿐이다. 언론에 자주 노출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한 서울중앙지검은 그렇다 쳐도, 서울고검과 대검에 간판이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또한, 익숙한 건물이라 하더라도 간판을 달고 있는 청와대나 외교부, 서울중앙지방법원 및 서울고등법원과 분명한 차이가 있다.


나는 이것이 검찰이 시민을 대하는 태도를 단적으로 드러낸다고 생각한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의 민원실은 지하실에 있다. 햇빛은 들지 않고, 어두컴컴하다. 게다가 민원을 전담하는 검사가 없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은 민원담당 검사제도가 없고, 각 부서의 과장들이 3개월에 한 번씩 순환 보직으로 민원 전담관을 맡는다. 민원에 대한 전문성과 민원 접수에 대한 적극성이 떨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지하 민원실. 사진 | 오마이뉴스

경찰서에 찾아가 민원을 넣는 일은 익숙하고 또 해볼만한 일이지만, 검찰청에 민원실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또한, 검찰청에 민원을 넣기 위해서는 경찰과 달리 구두로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복잡한 법적 서류를 작성해야 한다. 이 시점부터 변호사를 대동하지 않으면 어려운 과정이다.


형사소송법 제237조 (고소·고발의 방식)
1. 고소 또는 고발은 서면 또는 구술로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에게 하여야 한다.
2.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이 구술에 의한 고소 또는 고발을 받은 때에는 조서를 작성하여야 한다.


사실 형사소송법상 고소는 구술로도 가능하고, 그런 구술 고소에 대해서 검사 또는 사법 경찰관은 조서를 작성하도록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사실을 아무도 얘기해주지 않고, 구술로 고소하려는 사람들을 검찰은 그리 친절하지는 않게 서류 작성으로 유도한다. 남녀노소, ‘공정’하게.


오마이뉴스의 ‘[주장] 검찰개혁은 ‘검찰청 민원실’부터 되어야 한다’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47/0002294196?sid=102 )에는 이러한 사례가 나온다. 몇 년에 걸쳐 이웃주민들에게 여러 피해를 본 할머니 한 분이 자기가 겪은 피해를 빼곡히 적은 고소장을 들고 가까운 검찰청에 갔더니 "이런 작은 지청에선 해결할 수 없다"며 "대검찰청에 가보라"고 했단다. 새벽부터 보따리를 싸서 서울로 가는 첫 버스를 타고 대검찰청에 갔는데, 여긴 수사를 직접 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니 길 건너 서울 중앙지방검찰청에 가보라고 했단다. 그렇게 길 건너 서울중앙지방검찰청에 와서 고소장 접수 순서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리 친절하진 않다.

서울경찰청 민원봉사실. 사진 | 뉴시스

그렇다면 경찰은 어떨까? 서울경찰청은 민원을 넣기 위해 경찰청 사무 건물에 들어갈 필요조차 없다. 물론 신분증을 내고 출입증을 발급하는 과정도 필요 없다. 정문 앞에 민원실 건물이 따로 있다. 그곳에서 민원을 접수하면 된다. 물론 청사 내에 들어가 경찰을 직접 만나고 싶다면 출입증을 받아 들어갈 수도 있고. 게다가 서울경찰청에는 청장 직속의 청문감사인권담당관실, 그리고 민원봉사실 조직이 있어 민원에 전문적인 대응이 가능하다.


자, 경찰과 검찰이 시민과 민원인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보이는가? 물론 경찰은 수사(수사경찰)와 더불어 치안을 유지(자치경찰)하고 국가 단위의 사건을 도맡아 해결(국가경찰)하는 임무를 맡고 있고, 검찰은 수사와 법 집행을 담당하므로 두 기관의 역할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검찰이 민원인을 무시해도 되는 것은 아니다. 수사와 법 집행 과정에서도 분명 민원을 하고 싶은사람이 많을 것이고, 고발장도 검찰이 접수해야 한다. 그러나 지하 민원실과 형사소송법을 무시한 서면 고발 원칙 고수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이젠 검찰청에도 간판이 달리길 기대해본다. 사람들이 이 건물이 검찰청 건물이구나 알 수 있도록, 그래서 억울한 일이 생기거나 검찰에 의견을 표출하고 싶을 때 누구나 검찰청으로 와서 민원을 제기하고 고소를 할 수 있도록 해야할 것이다.


검찰의 개혁은 ‘조직의 개편’이나 ‘수사권의 조정’보다, 이런 것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사람들이 ‘검찰’에 대해 알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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