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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훤칠문집

보이지 않는 손

by 투오아










단상 위로 온화한 미소를 띤 콜룸바가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그의 부드러운 눈빛은 주변의 모든 무리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았지만, 발걸음에서는 확고한 의지와 위엄이 느껴졌습니다. 콜룸바가 단상 중앙에 서자, 여기저기에서 존경의 시선이 쏟아졌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귀 기울일 준비가 된 듯, 무리들은 조용히 그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콜룸바의 곁에는 아이렌이 침착한 표정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녀의 시선은 단상 아래 웅크리고 앉아 고통스러워하는 수많은 부상자들에게 향했습니다. 어젯밤의 끔찍한 충돌로 인해 상처 입은 동족들의 모습에 아이렌의 마음속에서는 격렬한 분노가 일렁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깊은 숨을 쉬며 감정을 억눌렀습니다. 공동의 번영이라는 더 큰 목표를 위해서는 지금 당장의 분노를 다스리고 이성적인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이렌은 굳게 다문 입술과 애써 침착함을 유지하려는 눈빛으로 콜룸바를 보좌하며 주변을 주의 깊게 살폈습니다.

콜룸바가 입을 열자, 부드럽지만 힘 있는 목소리가 조용한 회의장을 가득 채웠습니다.

콜룸바: "어제 저녁 사냥에서 우리 비둘기파의 많은 구성원들이 다쳤소. 사냥을 하다가 다친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동지들에게 공격받아 다친 것이오. 분명 지난 협상 때 먼저 도착한 무리가 있으면 다른 곳을 찾기로 하였는데 또 당신들 매파는 우리가 먼저 선점한 곳에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고 말았더군요, 팔코."

콜룸바의 말이 끝나자, 팔코는 차가운 눈빛으로 콜룸바를 쏘아보며 날카롭게 응수했습니다.

팔코: "콜룸바, 유감스러운 일이 있었던 건 사실이오. 하지만 어제저녁 사냥터에 누가 먼저 도착했는지 정확히 확인했소? 당신들의 주장은 늘 감정적이고 주관적이란 말이오. 게다가 지난 협상에서 우리는 '특정한 사냥터'에 대해 먼저 도착한 무리가 우선권을 갖는 것으로 합의했을 뿐, '모든 사냥터'에 대해 그런 약속을 한 적은 없소. 당신들이 어제 간 곳은 새롭게 발견된 풍족한 사냥터였지. 묵시적인 동의가 있었다고 주장할 수는 있겠지만, 명백한 합의 사항은 아니었단 말이오."

팔코는 잠시 멈춰 숨을 고르더니, 더욱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습니다.

팔코: "결국 자연의 섭리는 약육강식 아니겠소? 강한 자가 더 많은 먹이를 차지하고 번성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요. 우리 매파는 당신들보다 더 강하고 효율적으로 사냥을 할 수 있소. 우리가 더 많은 영역을 확보하고 그 풍요를 누리는 것이 어찌 부당하다고 할 수 있겠소? 당신들은 늘 '공평'이라는 이상적인 단어 뒤에 숨어 현실을 외면하고 있소. 진정으로 무리를 위한다면, 더 강해질 생각은 않고 나약한 감성에만 호소할 것이 아니라, 우리처럼 효율적인 사냥 기술을 배우고 더 넓은 영역을 확보할 능력을 키워야 할 것이오."

그러자 아이렌이 참지 못하고 논쟁에 참여 하였습니다.

아이렌: 팔코님. 무슨 앞뒤가 맞지 않는 말씀을 하는 것입니까. 이 지역의 사냥터는 모두 우리 비둘기파가 직접 일군 것이고 그곳에서의 사냥법과 생존법은 모두 콜룸바님이 창시하고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팔코 당신이 이끄는 매파는 처음에 이곳에 왔을때에 사냥을 할 줄 몰라서 팔코님이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게다가 약육강식이라니요. 진짜 더 사냥을 잘하는 무리가 어딘지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지금도 사냥물이 남으면 우리는 우리의 합의에 따라서 매파에게도 공평하게 나누어 주고 있소. 오로지 매파 당신들만 같은 동족인 우리를 공격하는 것에서만 강한 모습을 보일뿐 우리 모두의 번영에는 신경을 쓰고 있지 않고 있소

아이렌의 날카로운 지적에 제나는 비웃듯이 코웃음을 쳤습니다.

제나: "흥, 옛날 이야기나 늘어놓는군, 아이렌. 과거에 잠시 도움을 받았다고 해서 영원히 빚이라도 져야 한다는 말이오? 그때는 우리도 상황이 여의치 않았을 뿐, 시간이 지나 우리의 힘으로 이만큼 성장한 것을 인정해야 할 거요! 그리고 '우리가 공들여 관리해 온 영역'이라고? 웃기지 마시오! 당신들은 그저 콜룸바라는 지도자 아래 옹기종기 모여 기존의 방식만 고수할 뿐, 새로운 사냥터를 개척하거나 효율적인 방법을 찾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소! 우리가 더 넓은 영역을 탐색하고 새로운 풍요를 발견했으니, 그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뭐가 잘못이란 말이오?"

제나는 목소리를 높이며 주변을 둘러보았습니다.

제나: "그리고 사냥 실력이라고 했소? 지금껏 우리 매파가 잡아온 사냥물의 양과 질을 한번 비교해 보시오! 당신들은 늘 부족한 식량에 허덕이지만, 우리는 풍족함을 누리고 있소. 이것이 바로 실력의 차이가 아니고 무엇이겠소? 약육강식은 자연의 순리요! 강한 우리가 더 많은 것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며, 그것이 결국 전체 무리의 발전을 이끄는 길이란 것을 왜 깨닫지 못하는 거요? 감상적인 동맹보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하시오!"

그러자 분노로 얼굴이 붉어진 아이렌이 소리치려 하자, 콜룸바가 차분하게 고개를 저으며 그녀를 막아섰습니다.

콜룸바: 제나. 자네의 뛰어난 사냥실력은 나도 인정하네. 그리고 위기 상황에서 위험을 회피하는 기술 또한 우리 동족 중 1등이라 할만하지.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라도, 함께 사냥에 참여하는 동료들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는 것도 사실이지. 게다가 자네도 알다시피, 하루의 사냥 결과는 우리의 노력이나 훈련보다는 그날 사냥터의 상황, 즉 우연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지 않나.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저 서로 협력하여 동족을 다치게 하지 않고,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겠나.

그러자 팔콘은 콜룸바를 쏘아보며 눈을 가늘게 뜨고 음흉한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팔콘: 콜룸바, 당신이 오늘 회의를 요청한 이유가 결국 우리 매파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우려는 속셈이었소? 감히 우리 매파의 영웅인 제나를 그렇게 몰아붙이다니! 우리는 어제 최선을 다해 사냥을 했고 그 과정에서 걸리적 거리는 놈들을 약간 혼내 준 것 뿐이외다. 그저 남은 찌꺼기나 얻어먹으려는 당신네 비둘기파 녀석들이 훈련 부족으로 다친 것을, 어째서 우리 매파의 책임으로 몰아가는 것이오? 용납할 수 없소!

그러자 아이렌이 매우 흥분하며 맞써 외쳤습니다.

아이렌: 그저 남은 찌꺼기라고요?! 팔콘, 당신 정말 해도해도 너무하는군요! 그 제도가 단순히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사냥터의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모두가 함께 살아남기 위한 약속이라는 것을 당신도 잘 알 텐데요! 왜 이미 약속하고 서로 이해하고 있는 우리의 규칙을 그저 남은 찌거기라고 표현할 수가 있습니까!

그러자 제나 또한 지지 않고 소리칩니다.

제나: 그야 항상 얻어먹는 쪽이 그쪽이라서 그런건 아니오! 노력하지 않고 얻어 먹기만 하는 잉여물들!

제나의 격한 발언에 토론 장에 참여한 모든 구성원들이 서로 소리를 치고 서로 삿대질을 하며 잔뜩 노려보고 분위기가 매우 험학해 졌습니다. 그때 콜룸바가 다시 위엄있는 목소리로 헛기침을 합니다. 그러자 모든 구성원들이 다툼을 멈추고 콜룸바를 바라봅니다. 팔콘마저 콜룸바의 위엄에 눌려 숨을 죽입니다.

콜룸바: 제나, 그동안 팔콘을 우리 동족으로 받아들이고 머물 자리를 내어주고 또 사냥터에 가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우리 무리에서 가장 사냥 실력이 좋은 자들을 지원해 왔기 때문에 매파는 우리 종족의 첨병 부대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던 것이 아닌가. 소수 정예의 젊고 뛰어난 사냥꾼들을 지원했기에 매파의 사냥 성과가 좋았던 것이 아니겠나. 찌거기라는 표현은 너무 지나친 표현일세.

그러자 팔콘이 다시 말합니다.

팔콘: 콜룸바. 방금전까지 사냥물의 양과 질은 그날 그날 사냥터의 상황에 따라서 크게 달라진다더니 바로 말을 바꾸어 우리에게 엘리트 사냥꾼이 있어서라고 하는군요. 계속 이렇게 앞뒤가 다른 거짓말만 늘어놓고 있으니 도저히 참을 수가 없소! 당신들이야 말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파렴치한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소. 나는 오늘 여기서 선언하겠소. 이제 매파는 비둘기파와의 동조를 마무리 하고 오늘부터는 독립하겠소. 그리고 그동안 개발한 사냥터는 우리가 사용하겠으니 비둘기파 당신들은 이곳을 떠나시오!

팔콘의 선동에 매파 무리 전체가 험악한 고함을 지르며 당장이라도 비둘기파를 공격할 듯 험악한 분위기가 조성되었습니다. 이 모두의 스승인 콜룸바는 이러한 상황에 큰 고통을 느끼면서 눈을 감습니다. 그 모습을 본 아이렌이 다시 말합니다.

아이렌: 이 땅은 우리가 일군 것이오. 어떻게 당신들이 우리보고 나가라는 말을 할 수가 있습니까! 팔콘! 떠나려거든 당신들이 떠나십시오! 늙고 병든 이들과 어린 아이들이 대부분인 우리에게 이 땅과 사냥터마저 내놓으라니, 당신은 동족으로서 어떻게 그런 말을 쉽게 내뱉을 수 있소!

아이렌이 말하는 도중에 콜룸바가 손짓으로 아이렌을 진정 시키고 다시 말을 합니다.

콜룸바: 팔콘, 어리석은 나의 오랜 동지여. 매파에서 다치거나 힘이 약해진 이들이 생길 때마다, 우리 비둘기파는 그들을 따뜻하게 받아들이고 함께 살아오지 않았던가. 강함을 추구하고 효율성만 추구하면 결국 강한자 속의 더 강한자가 다시 다른 이들을 구분하고 쫒아내게 되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무리에 충분한 수의 사냥꾼이 남지 않아서 결국 사냥이 불가능해지고 결국 가장 강한 자조차 홀로서는 멸망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네. 내가 그렇게 가르쳤거늘 어찌 이런단 말인가.

그러자 팔콘이 말합니다.

팔콘: 콜룸바, 당신이 나를 가르쳤다고 해서 내 인생을 지배할 수는 없소! 당신의 신기루 같은 말에 속아 우리 매파는 그 동안 너무 많은 사냥물을 비둘기파에 뺐겨 왔소. 더이상은 그런 손해를 보지 않겠소. 얼른 이 곳을 당신을 따르는 무리를 데리고 떠나시오. 내가 당신에게 가진 마지막 예의로 떠나는 비둘기파 무리를 공격하지는 않겠소

팔콘의 손짓에 모든 매파들은 비둘기파를 향해 공격하려는 듯이 위협적인 자세를 취합니다. 갑작스럽게 위협을 받는 비둘기파 구성원들은 몸을 움추리며 콜룸바를 바라봅니다. 아이렌이 다시 따지려고 하자 콜룸바가 제지합니다.

콜룸바: 매파 동지들 그리고 나의 제자들. 나의 가르침이 너희들에게 남아 있으리라 믿는다. 쓸모있는 존재와 없는 존재란 세상에 없으며 당장 내일의 사냥에서도 부상자가 나올 수 있고, 우리 없이 홀로 남게 된다면 매파 역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결국 서로에게 의지해야 할 순간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너희도 알게 될 것이다. 모두들 어떤 것이 옳은 방향인지는 알것이라고 믿는다.

마지막 말을 마치고 콜룸바는 뒤로 돌아 비둘기파를 돌아봅니다.

콜룸바: 우리 동지들이여 나를 믿고 따라오십시오. 사냥터는 새로 일구면 될 뿐입니다. 갑시다.

그 말을 남기고 비둘기파는 그동안 살아온 서식지를 떠났습니다. 매파가 잉여 사냥물을 독차지할 생각에 환호하는 바로 그 순간, 하늘에서 커다란 환풍구 덮개가 열리더니 긴 대롱이 내려와 하얀 액체를 뿜어냈습니다.

사람: 어제 우리 아기가 모기에 너무 많이 물려서 걱정했는데, 여기 모기들이 엄청 많았나 보네. 지금 약을 뿌렸으니 오늘 저녁에는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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