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좋은 사람들은 그리도 빨리 가야만 하는 걸까
좋아하던 희극인이 있다. 그렇다고 막 열정적으로 좋아하던 건 아니었지만, 늘 마음속으로 응원하던 사람이었다. 말을 참 예쁘게 하고, TV에서 볼 때마다 그 사람이 얼마나 마음이 따뜻하고 선하고, 생각이 깊으며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항상 희망적인 이야기를 전해주고, 웃음을 주려고 노력하는 그 사람이 나는 참 멋져 보였다.
자기 일을 잘하고, 열심히 하고, 책임감 있게 하는 사람만큼 멋진 사람이 있을까. 그는 자신의 일을 너무나 좋아하는 것처럼 보여서 더 멋있었다.
며칠 전, 친한 동료 선생님과 통화를 하다가 인스타그램에서 믿을 수 없는 글을 보았다. 내가 좋아하던 그 희극인을 추모하는 내용이었다. 쉽사리 믿을 수가 없어서 나는 각종 포털 사이트 기사와 SNS를 살펴보았고, 여전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사실이라는 것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어린 시절에는 나의 세상이 작아서, 내 눈 앞에 보이는 곳이 내 세상의 전부라, 누군가의 죽음을 마주할 일이 흔치 않았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연예인의 죽음도 바로 접하기 어려운 때였다. 아침 신문에 누구누구가 사고가 났다, 그렇게 소식을 접하던 날이었다. 점점 나이를 먹고, 내가 있는 세상이 자꾸 넓어지고, 이렇게 저렇게 아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인터넷을 통해 소식은 너무 빠르게 전달되어 누군가의 죽음도 이렇게 바로 알게 되어버린다.
왜 항상 좋은 사람들은 더 빨리 가야만 할까. 왜 늘 이렇게 아쉬운 헤어짐이 많을까. 어떤 죽음이 반갑겠느냐만은, 이번에도 역시 먹먹하고 슬프고, 기사를 접할 때마다 조금 울기도 했다.
죽음은 삶을 살아가는 동안 언제든 한 번은 만나게 되는 당연한 것이겠지만, 준비되지 못한 죽음은 늘 황망하고 차갑다.
종종 그런 상상을 해볼 때가 있다. 만약 내 내담자가 죽게 된다면. 상담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만나게 되는 일이라고, 그런 일을 만나지 않은 상담자는 정말 행운인 거라고,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그 행운이 나에게도 꼭 오기를 바라보기도 한다.
어딘가에서도 따뜻하고 행복하기를. 아프지 않고 건강하기를.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