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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은 책 기억하기
by ioi Nov 26. 2017

소문의 시대 / 마츠다 미시

소문을 알고 잘 대처하기 위하여

“이 편지는 영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스무 명에게 전달하지 않으면 나쁜 일이 생긴다는 행운의 편지를 받아보셨나요? ‘그런 게 어딨어’ 하면서도 어렵사리 스무 명에게 전달한 경험은요.
밤이면 학교운동장의 세종대왕이 책(아마도 훈민정음)을 넘긴다는 이야기는 모든 국민학생(!)이 아는 소문입니다. 망태 할아버지에서 홍콩할매까지 어릴 때는 주로 무서운 이야기가 소문의 테마였습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지키려는 의도가 반(모르는 사람을 따라가거나 밤에 돌아다니면 위험하니까), 놀리는 마음이 반 아니었을까 싶어요. 이승복 어린이와 이순신 장군이 운동장을 돌아다닌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밤에 학교 운동장에서 뛰놀 수 있는 어린이는 별로 없었을테니까요.

커서는 시체 닦는 아르바이트가 기억납니다. 보수가 쏠쏠하고, 꼭 밤에 해야한다지만 정작 직접 한 사람은 한번도 만나보지 못했습니다. 주로 사촌오빠나 아는 형님이 했지요.

비교적 최근을 돌아보자면, 세월호 침몰 원인과 고 김광석 씨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추측과 소문이 난무했습니다.


소문은 한시도 우리 곁을 떠나지 않습니다. 오늘 소개할 <소문의 시대>는 오래된 소문부터 SNS를 타고 시시각각 퍼지는 이야기까지 온갖 소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부제는 ‘세상이 수상해지면 출몰하는 오래된 미디어’인데요, 이 부제만으로도 책이 읽고 싶어졌어요.


부제 뿐 아니라 내용은 더 야무지고 매력적입니다. 여러 편의 논문을 엮은 듯이 인용도 다양하고 사례도 폭넓게 (통시적으로, 공시적으로) 제시하고 있거든요. 일례로 저자는 ‘세간의 평판으로 인한 피해’를 의미하는 ‘풍평피해’의 연원을 밝히는데 1985년 아사히 신문부터 최근의 빅데이터 분석결과까지 보여줍니다.

접근방식은 다소 학술적이지만 ‘소문’이라는 소재 자체가 워낙 매력있고, 일본과 우리나라가 비슷한 면이 많아서 술술 읽혔어요.
앞서 말한 여러 이야기들이 도시별로 조금씩 다르게 각색되어 퍼졌다는 사실도 흥미롭습니다. 미국의 민속학자 얀 해롤드 브룬번드는 이걸 ‘도시전설’로 명명했다고 합니다.


책의 순서와 관계없이 제 의식의 흐름(?)에 따라 인상적인 내용과 생각을 정리해봅니다.

소문은 왜 이렇게 끊임없이 생기고 퍼질까요?

소문은 자신의 발언으로 드러내기 어려운 것을 발화하는 수단입니다. 다시 말해, ‘책임을 지지 않아도 좋은 커뮤니케이션’이지요. ‘내’가 아닌 ‘모두’가 이야기하는만큼 익명의 숲으로 숨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체면, 책임, 안전은 지키면서 이야기를 통해 재미, 지지, 정보, 도움같은 욕구는 충족되니까요. 연애 이야기나 고민을 내놓을 때 ‘아는 언니’, ‘아는 사람’, ‘아는 형’의 이야기라고 말하지만 정작 본인의 이야기인 경우가 많은 것도 그런 이유겠지요.

사실과 다르고 심지어는 뻥같아도 우리는 ‘굳이 문제제기 하지 않’습니다.


소문은 관계에 기반한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피해가 가거나 본인에게 문제가 생기지 않는 한 웃으면서 넘기기 십상입니다. 그래서 소문과 사실의 간극은 점점 커지며 전파되기 마련이죠.

공포와 불안을 먹고 성장하는 소문


<소문의 심리학>이라는 책을 쓴 미국의 심리학자 고든 올포트와 레오 포스트맨은 소문의 공식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소문 = 중요함 * 애매함

이슈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제도적 채널이 신뢰감을 주지 못하고 점점 애매한 상황이 될 때, 소문은 증폭됩니다.

인터넷 환경에서는 ‘신체성의 결여’까지 배가되어 소문에 폭력의 날개가 달립니다.

저자는 인터넷 환경의 특수성을 ‘신체성의 결여’로 설명합니다. 대면하면 시각을 비롯한 오감을 통해 비언어적 단서를 발견하지만 전화는 청각만이 남고, 인터넷에서는 그조차 없지요.


그래서 상대방을 앞에 두고서는 말할 수 없는 것들까지 인터넷상에서는 맘껏 씁니다. 무슨 글을 써도 상대의 화나거나 곤혹스럽거나 슬픈 표정을 볼 수 없으니까요. 무엇보다 얻어맞을 걱정이 없습니다. 최근 유투브에서 본 영상이 떠올랐습니다.

https://m.youtube.com/watch?feature=youtu.be&v=EA8klLd-zdA

온라인에서 사람들이 단 악플을 배우들이 현실에서 대면으로 발화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너를 혐오해”
“샐러드나 먹어. 이 뚱뚱한 년아!”


그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을 듣고, 지켜보고, 때로는 도와주는 이들은 배우가 아닙니다.

이 영상을 보면 신체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입니다. 저런 말을 옆에서 듣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비록 연기자지만 험한 말을 듣는 이들은 이내 울음을 터뜨리거나 엄청나게 충격을 받습니다. 눈 앞에서 보면서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도와주는 일반인들에게서도 신체성이 두드러집니다. 그들은 어김없이 둘 사이를 가로막습니다. 물리적으로 막아서면 더이상 함부로 말하기 어려워지고 우리는 그걸 본능적으로 압니다.

잘못된 소문의 피해는 어떻게 막을 수 있을까요?

요즘 저의 관심사입니다. 소문에 대한 탐구와 분석도 즐겁지만, 이 모호하고 믿을 수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나 자신을 각종 소문의 피해로부터 지키고 또 나도 모르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살 수 있을까. 그러자면 소문을 잘 다룰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책이 거의 끝나갈 즈음(p.240) 저의 목마름이 채워졌습니다.


역설적으로 부각된 인터넷의 영향력에 속지 마라저자는 미디어 이용 실태를 분석하며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제안합니다. 인터넷의 영향력이 크긴 하지만 중년 이후 세대에는 고전적 대중미디어의 힘이 여전히 살아있다고 분석합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연계성도 주의깊게 살펴보라고 말합니다.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제도적 채널의 문제
말해 무엇합니까. 공영방송이 바로 서야 합니다.


풍평피해를 막기 위한 대항 신화의 가능성
프랑스 오를레앙 지방에서 여성 유괴 소문이 돌았습니다. 에드가 모랭은 이 사건을 조사하다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유괴가 사실이 아니라는 공표를 아무리 해도 소문이 잦아들지 않다가, ‘그 소문은 반 유대적이다’라는 대항신화가 퍼지자 급속히 수습되었기 때문입니다.


애매함에 대한 내성
우리 마음 속에는 ‘이도저도 아닌 채로 있는 것보다 흑과 백을 나누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소문이 효력을 발휘합니다. 현실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문제는 전문가가 조사해도 알 수 없는 상황, 혹은 전문가 사이에서도 판단이 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사능 문제나 식품안전과 질병, 의료에 관한 문제 등 사례는 끝도 없지요. 인과관계를 밝히고 해결책을 찾는데는 폭넓은 조사와 시간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장’ 뭐가 좋고 나쁜지, 그래서 뭘 버리고 뭘 사야하는지, 누굴 욕하고 누굴 칭송해야하는지 알고 싶어합니다. 저자는 사실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감당해야하는 시간과 애매함에 대한 내성을 기르길 권합니다. 앞서 등장한 소문의 공식에서 하나의 변수를 줄이게 되는 셈이죠.


여기에 저는 요즘 계속 공부 중인 ‘비폭력대화(NonViolent Communication)의 한 과정인 ‘관찰’을 덧붙이고 싶습니다. 말하자면 ‘보거나 들은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연습’입니다. 소문을 들었을 때, 그 내용을 믿거나 판단을 내리거나 심지어는 소문의 주인공인 사람에 대해 평가하기 전에 소문 자체를 그 자체로만 받아들이는 거죠. 다소 거칠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A가 어찌저찌 했다고 B라는 사람이 말했다.”

이렇게 B의 말을 ‘그저 관찰’하는 겁니다. 그러면 마음 속에서 걱정이나 분노 같은 감정이 덜 올라옵니다. 섣불리 평가하거나 판단해서 생기는 실수도 줄일 수 있겠죠.

무엇보다 저자는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우연히 말려든 것일 뿐, 피해를 입은 게 곧 나였을지도 모른다는 상상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소문을 내는 것도 나, 소문에 대한 피해자도 나일 수 있다는 거죠. 소문에 대한 대처법 뿐 아니라 공감의 첫걸음이 아닐까 싶어 이 대목을 인용하며 마무리 할까 합니다.


풍평피해는 있지도 않는 것에 혹해 발생하거나 차별의식을 가진 사람이 불확실한 정보에 놀아나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자기 손 안에 있는 정보를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한 결과 생기는 현상이라는 점을 이해하고 풍평피해가 자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여기는 게 중요하다 (p.249-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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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oi
소속 직업프로듀서
오래된, 오래될 것을 사랑하는 라디오PD. 도시에서 건강하게 사는 법을 고민합니다. 클래식, 독서, 여행, 비폭력대화, (어쩌다보니) 디지털과 어우러져 살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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