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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방지기 이올 Dec 07. 2022

김동열씨는 내 생애 첫 손님


 그는 책방 앞을 지나가던 행인이었다. 여기가 뭐 하는 곳이냐 묻던 그에게 "책 파는 곳이에요." 대답했다. 텅 빈 책장들이 들어와 있던 터라 공간을 기웃거리다 가는 사람들이 종종 있었고, 그도 짧은 호기심에 묻는 말이겠거니 생각했다. 그런데 그는 지나가지 않고, 더욱 진지한 얼굴로 찾고 싶은 책도 찾아주냐 물었다. 여기저기 이사 다니며 잃어버린 책이 수두룩하지만 <부동지신묘록>만큼은 꼭 다시 읽고 싶다고 했다. 

지금보니 우리 둘 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는 입고 가능하다는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럼 한 권 갖다 놓아줘요." 했다. 책이 도착하면 결제하시라 했더니, 그런 게 어디 있냐며 현금부터 내미셨다. 얼떨결에 손에 돈을 쥐었고, 찰나를 붙잡고 싶어 문밖을 나선 그를 불러 세워 같이 사진 한 장을 찍었다. 내가 진짜 책을 파는구나 싶어서 그가 떠난 자리에서 한참이나 멍하니 서 있었다. 잘 되라고 현금으로 결제한다던 멋쟁이 신사. 그렇게 김동열씨는 내 생애 첫 손님이 되었다.


 책이 도착했다는 문자를 보낸 지 며칠이 지나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그는 한 권을 받아 가면서 또 한 권을 주문했고, 그렇게 한 달에 두 번 정도 여전히 책을 산다. 분명 처음 책을 살 때, 김동렬씨라고 성함을 적어주셨는데, 문자 답장을 하실 때는 -김동열-로 마무리하신다. 아직도 그가 김동렬인지, 김동열인지 알지 못한다. 그냥 어떤 때는 김동열씨, 어떤 때는 김동렬 씨하고 같은 음성으로 부를 뿐이다. 우선 문자 답장을 처음 받았던 날, 당황한 나머지 독서 기록카드에 적어두었던 ㄹ위에 검은 매직으로 덧칠해 ㅇ으로 수정해두었기에, 김동열씨라고 하겠다.


 언젠가 김동열씨가 당황스러운 얼굴빛으로 책방 문을 여신 적이 있었다. 무슨 일이라도 있나 싶어 놀란 마음 붙잡고 다가갔더니 휴대폰을 내미셨다.

“이거 왜 자꾸 소리가 안 나는 걸까? 내가 오래돼서 그래.. 지금까지 잘 들리다가.. 이거 이어폰 꽂으면 소리 나는데! 이거 빼면 왜 안 들리는 걸까.. 내가 책을 사긴 할 건데, 이거 유튜브 보는 거 먼저 좀 어떻게 안 될까.”

우리가 처음으로 나눈 사적인 대화였다. 살펴보니 휴대폰에 무음 기능이 켜있었다. 내가 오래돼서라니.. 사람에게 오래되었다는 표현을 들어본 건 처음이었다.

“그거 김동열씨가 나이 많아서 그런 거 아니에요! 저도 가끔 휴대폰 뭐 안되면 왜 그러는지도 모르겠고 답답할 때 많아요. 다행히 오늘은 제가 알아차렸네요!”하고 하하 웃어버렸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친구가 되었다. 그는 내게 "반야심경 알아?" 하고는 줄줄 읊어주거나, 이름만 들어도  어려운 고전 이야기를 술술 풀어준다. 사랑 이야기를 들려주는 날도 있었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사실 사랑과 마음은 하나다. 결국 그게 다 하나라서 사랑이 힘들다는 거다. 사랑을 너무 잘 알아서 자꾸만 미뤄두게 된다는 그는 대화가 잘 통하는 여자친구를 만나고 싶다고 했다. 길 가다 어여쁜 할머니가 책 읽고 계시면 김동열씨 소개하면 되겠다고 농담을 던지며 한참을 떠들었다. 

김동열씨가 주문한 <시민의 불복종>과 직접 구워주신 군고구마

 김동열씨는 여자친구는 없지만, 군고구마 굽기 실력만큼은 있다. 겨울이 되자 직접 군고구마를 해서 가져다주시길래, "어우! 집에서 이런 것도 해다 드세요?" 하고 물으니 "반찬은 사다 먹어도 이런건 다 해먹어. 집에 없는게 없어." 하고는 호탕하게 웃으셨다. 그는 감탄하는 나를 두고 "다음에는 밤 꾸바다 주께"하고 떠났다. 어떤 날엔 돈 벌어서 여기 다 가져다주고 싶다는 말을 불쑥하셨다. "일단은 저도 열심히 벌어볼게요!" 대답했지만, 그런 따뜻한 마음은 어디서부터 오는 걸까. 


 며칠 전에는 휴대폰 키보드 크기가 갑자기 작아졌다며 오셨다. 사실 나도 기계에 능한 젊은이에 속하진 않아서 휴대폰을 받아 한참이나 뚝딱거려야 했다. 키보드 크기를 원래대로 돌려두긴 했는데, 원래 하얀색이던 키보드 색이 검은색이라 잘 안 보인다고 하셨다. 어떻게 다시 하얗게 돌리는지 모르겠어서 고대비 설정으로 배경을 노란색으로 만들어버렸다. 오히려 더 보기 좋아졌다며 흥겹게 나가시더니, 얼마 안 돼 그가 다시 돌아왔다. 그사이 다른 손님이 들어오셔서 눈빛으로 무슨 일이냐고 여쭤보니, 노래를 흥얼거리며 몰티져스 초콜릿 한 봉지를 내 책상에 툭 던져두고는 어떠한 말도 없이 다시 나가셨다. 아니! 몰티져스 맛있는 거 어떻게 아셨나요. 김동열씨. 


초콜릿을 툭! 던져두고 가신 모양이 참 다정해서 남겨뒀던 사진

야금야금 초콜릿을 먹으며 그와 나는 서로에게 척척박사라는 생각을 했다. 내게 김동열씨는 어려운 책도 달달 외우는 멋진 도서관이고, 그에게 나는 휴대폰에 앱이 사라지거나 알 수 없는 문제가 생기면 해결해주는 수리센터다. 여든이 다 되어가는 김동열씨와 서른을 앞둔 내가 친구가 될 수 있었던 건, 우리가 다른 시대에 태어나 얻게 된 차이 덕분이다. 앞으로도 서로에게 없는 걸 마음 편히 털어두고, 각자가 가진 것을 나누는 시간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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